2007년 5월 9일 (수) 18:55 경향신문

최근 원로작가 이청준씨(68)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두 편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인 ‘천년학’과 이창동 감독이 문화관광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처음 내놓은 영화 ‘밀양’이다. 이전에 임감독이 만들었던 영화 ‘서편제’와 ‘축제’까지 합치면 이씨의 소설이 영화화된 것은 네 차례나 된다.

이청준 소설은 정치적 견해나 지역, 계층을 떠나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녔다. 당대현실에 대한 예리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삶의 모습으로 끌어안는 정신성, 여기에 한의 정서에 기반한 남도문화의 풍취가 더해진 그의 문학은 많은 지식인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원작의 영화화와 함께 발표한 지 20~30년이 지난 소설 ‘천년학’과 ‘벌레이야기’(열림원)도 새 장정으로 나왔다. ‘선학동 나그네’ ‘소리의 빛’ ‘서편제’ 등 3개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 ‘천년학’은 소리꾼 아버지와 의붓남매의 예술과 사랑에 얽힌 이야기다. ‘벌레이야기’는 어린 아들을 유괴범의 손에 잃은 엄마가 기독교에 의존해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려 하지만 정작 용서를 결심하고 찾아간 죄인의 얼굴에서 이미 평화와 구원을 발견하고 절망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이다. 임권택 감독과 가깝게 지내는 그는 지난 한해 동안 전남 장흥의 촬영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만큼 ‘천년학’이 대중들의 외면을 받은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영화 ‘밀양’은 9일 저녁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열린 문인들을 위한 특별시사회에서 봤다. 박완서 서영은 신경숙 은희경 등 문인들과 함께였다.

-두 영화를 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천년학’은 임감독의 100번째 영화이니까 자신의 성취로부터 한발이라도 더 나아가려 했을 테고 작품성은 양보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상업성을 부러 배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벌써 개봉관에서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깝고 조심스럽습니다. 영화의 정석을 밟은 영상예술이고 영화사의 규범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밀양’은 큰 틀에서는 내 소설의 느낌이 있지만 세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주인공을 자살이란 극단으로 몰아간 데 비해 영화에서는 감정적으로 고조시켰다가 희망적으로 끝을 맺더군요. 소설은 막막한데 영화는 숨통을 틔워주고 피로한 가운데서도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다는 느낌, 삶의 페이소스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소설보다 더욱 삶에 가까웠습니다.”

-원작을 쓰실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천년학’의 단편들을 쓰던 1970년대말은 워낙 말이 막혀있던 시대라서 그런 억압을 벗어버리는 방편으로 판소리 쪽으로 도망갔습니다. 아무리 억압해도 무너지지 않는 존엄성 같은 게 있다는 생각도 했고, 모든 것이 정치화돼 나 자신 정서가 굉장히 메말랐다는 생각 때문에 정(情)의 씨앗자루를 남긴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벌레이야기’는 광주사태 직후였는데 당시 정치상황이 너무 폭압적이어서 폭력 앞에서 인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피해자는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이야기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럴 때 피해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런 절망감을 그린 것입니다.”

-선생님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영화를 위해 소설을 쓴 건 아닙니다. 영화감독은 소재를 해석하고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 못지 않게 치열하고 강하고 깊은 작업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는 그들은 고급의 취미를 가진 독자의 한 명입니다. 그들이 내 작품으로 또 다른 작품을 만든다면 그들보다 앞서 좋은 영화가 나오도록 기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인으로서 작가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삶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미래의 전망을 마련하는 건 창작의 바탕이라고 봅니다. 창작행위 속에 이미 그 역할이 들어있는 거지요.”

-요즘 하고 계신 작업은 무엇입니까.

“가을쯤 소설집이 나옵니다. 나라가 없을 때 이민 가서 삶을 꾸린 사람들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는 우리한테 여러가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을 그린 소설들입니다.”

〈한윤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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