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출신의 한국화가 이승대씨(33)가 지난 5월 25일부터 5월 30일까지 광주 금남로 대동갤러리에서 작품전을 가졌다. 이번이 세번째 개인전.


이씨는 이번 전시에서 집과 나무를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승대는 새로운 한국화를 모색하는 젊은 作家群에 속하는 작가이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무렵 연진회에 입문해서전통 문인화를 익혔다. 그후 광주 예고와 우석대애서 한국화의 기량을 닦아왔다.

97년 24세의 나이에 한국화대전 최우수상(시립미술관·광주), 전국대학미전 특선(호남대 미술관·광주), 99년·2000년·2001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3회 연속 입상, 2003년 제19회 무등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대상을 수상했던 이승대(사진)씨. 아직 30대 초반의 작가이지만 젊은 작가 중 왕선하게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지난 2005년 5월(2-10)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화이트 박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져, 한국의 젊은 화가로서 좋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구사하는 화풍은 사실적 실정의 자연 정취와 함께 현대적 감각의 산수라고 할 수 있다. 선염기법으로 처리된 운무 공간과 함께 정밀히 묘사된 산자락, 나무, 시골 농가, 뾰죽하게 솟은 암벽 등, 가시적 대상물을 표현해낸다. 추상적 관념보다는 눈앞의 구체적 사물이 갖는 존재 가치를 의식케 한다. 그러므로 幽玄하다든가, 동양적 道라는 정신적 면모보다는 현실 공간 속에서의 抒惰性과 秘境, 美感등이감각적으로 중시된다. 그는 나무를 잘 그린다. 아름드리 나무로 가득 찬 화면 구성을 보고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그림에서처럼 그는 대범하게 자리잡는 구도로서 생동감 있는 감각을 구사한다. 필요치 않은 부분을 과감히 덜어낸 듯 한 화면, 관심 있는 대상에 매우 가까이 접근한 듯한 느낌이다.


먹빛과 대비를 이루는 노란색 단품, 물기 있는 암벽의 금강산, 긴 용의 꼬리처럼 이어진 장백폭포..., 그가 보여주는 자연경은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의미하는 손짓을 보인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과거와는 다른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자연에 대한 살랑은 적극적인 대응을 뜻한다. 무위자연식 관심과는 다른 감각이 그의 화면 가득히 담겨 있는 것이다. 눈이 시원하게 크고 말이 없는 화가 이승대는 전통 기법이 우선하는 남도의 山水流에 다른 빛깔을 선사하게될 것으로 본다. 근대화된 ‥‥ 도시적 감각의 눈으로 다루는 山水랄까, 그의 눈과 손이 젊기에 그것은 사실이상으로 실감해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미술평론가 장원식씨의 이승대에 대한 평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유화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화선지 위에 먹칠을 거듭하고 다시 그 위에 채색을 덧칠해 색감을 자아내는 화풍을 선보였다. 특히 보랏빛 파스텔톤은 그동안 수묵에서 보기 힘든 그만의 성과물로 평가받았다.


다음은 호남대 교수며 화가인 김옥조씨의 이승대 그림에 대한 평이다.



봄 00-21. 한지에 수묵채색


봄 07-34 한지에 수묵채색


가을 07-20. 한지에 수묵채색


겨울 06-35. 한지에 수묵채색


겨울 06-48. 한지에 수묵채색


삼각산 06-03. 한지에 수묵채색

직조적 공간에 일군 수묵의 변용

-한국화단의 신예작가로 두각을 나타낸 이승대는 한국화대전을 비롯한 주요 공모전을 휩쓸며 일찍이 주목받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실험적 태도 역시 찬사를 받아온 터이다.-

그는 상당히 지적인 그림에 심취한 듯 싶다. 면과 선의 교차로 화면을 구획한다.

한 화면 속에 다면․ 다공간을 시도한 의도에는 분명 유기적 근거를 설정해 놓았을 것이다. 구상과 비구상이 혼재되고 이것을 연결하는 접점의 요소들이 나열되거나 중복되어 나타난다. 현대인의 감수성을 물씬 풍기면서도 전통적 묵향의 깊이도 동시에 스며 있어서다.

한국화가 이승대의 근작 소감이다. 그의 근작 첫 인상은 우선 일부분 목판(화) 느낌이 난다. 평면의 찍힘과 소멸법에 의한 틈새의 흔적들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중학교 때 연진회에 입문, 지난 20여년동안 붓과 씨름해 왔다. 한국화단의 신예작가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한국화대전을 비롯한 주요 공모전을 휩쓸며 일찍이 주목받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실험적 태도 역시 찬사를 받아온 터이다.

이번에 마련한 그의 개인전은 사실상 3번째다. 이번에도 한층 더 비상하는 붓질과 그로 인해 낳은 노작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대의 작업을 기억하고 기대해온 화단 안팎에 잔잔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신작들을 쏟아낸 것이다. 그의 작업은 초가부터 개성 강한 화음을 들려주었다. 습작기를 거쳐 온 ‘회색도시-공존’ 시리즈의 진화과정 선상에 있다. 가시적 이미지나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대상과 소재를 크게 바꾸거나 색감의 변주를 도모하기 보다 내밀하고 근접한 시각의 성찰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만큼 참신함으로 무장했다. 이 대목에서 그가 화판 앞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 일면을 감지할 수 있다. 정적 흐르는 화면 속에 숨소리를 불어 넣듯 수평적 무게감과 수직적 속도감을 버무렸다.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작품들도 ‘집’과 ‘나무’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이전 작품에서도 꾸준히 등장한 대상이자 소재이다. 나무는 정지된 화면 속, 즉 삼라만상의 공간에서 서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소생, 성장하는 생명체로 통한다.

또한 화면 분할에 능숙한 그의 그림 속에서 시선을 이끌어 주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근경에 부각하여 세우거나 화면 한가운데 샛노란 웃음을 뿜어내며 자리잡고 있으면서 수직적 상승감을 주며 면분할의 기준선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앞세운 나무들 아래 낮게 엎드린 ‘집’은 사람의 온기가 전해진다. 그는 집을 유기체로 해석하고 있다. 집이란 곧 사람의 흔적으로 다가오기 때문. 집과 집이 서로 어깨를 걸고 이어져 공동체를 이루는 따뜻한 인간의 마을을 연상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작가 자신의 이상과 현실이 내재된 공간일 것이다.

또 이들 나무와 집은 이승대 그림의 구도나 구성을 읽어내는 재미를 북돋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는 화면 구성에 있어서 수직과 수평의 직조적 연출력을 지녔다. 이는 수묵과 채색을 막론하고 정형화된 틀 속에서 이뤄지던 한국화 작업의 바탕이 규격에서부터 변형으로의 진화를 시도한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여기에 수직 면부할과 수평적 공간개념을 혼합시켜 면과 면, 공간과 공간의 조합을 이루고 있다.

나무와 집들로 채워진 공간은 달랑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고 그 공간들을 이어가는 도 다른 지대는 전혀 다른 비구상의 세계를 철저히 지켜나가는 독창적 화법을 일구어 간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를 복잡하게 풀거나 욕심을 밀어넣은 것 같지도 않다. 가능한 한 기존의 정형을 깨뜨려 형식과 이미지뿐만 아니라 느낌의 전복을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수묵의 현대적 변용으로 요약된다. 먼저 배접된 화선지 위에 먹칠을 거듭하고 다시 그 위에 채색을 덧칠해 색감을 자아낸다. 특히 보랏빛 파스텔톤은 그동안 수묵에서 보기 힘든 그만의 성과물이다.

이처럼 기존의 기법과 구도, 형식을 극복하려는 실험성이 그만의 것은 아니다. 이미 앞서간 선배들과 뒤따르는 후배들에게도 과제로 남은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형식의 전복은 물론 개념적 화면의 실체를 실증적 화풍으로 확산시켜가면서도 지켜야할 것은 꼭 지키는 고집을 보여준다. 수직과 수평, 직선과 사선의 반복은 각각의 작품 모두에서 확인됨으로 하여 일견 이승대 그림의 공식화된 구성으로 식상함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화면 하단에 여백을 충분히 살려 놓았다. 좌측에 수직사면의 분할된 비구상 화면과 남은 면의 상단에 지보가 나무, 숲이 존재하고 그 아래에 여백을 두었다. 회화에서 여백은 흔이 없는 것(無)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지만 채워질 것(有)으로 이해된다. 그 역시 표현되지 않은 공간에 작가의 생각을 담았을 터이다. 이 공간은 곧 사색의 공간이요, 시선을 모아주는 시점인 셈이다.

언뜻 보면 극도로 단출하고 상징화한 기호들이허공에 떠도는 듯 보인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빈 화면을 마주하고 많은 시간 생각을 다듬어 내뿜듯 먹색의 깊이를 탐닉한 뒷모습을 살짝 보는 듯하다. 물론 눈 덮힌 노송숲의 고적한 이미지는 매우 서정적 멜로디로 가득하다. 운치와 재기 발랄한 소품들도 눈에 뛴다. 하지만 이승대의 열정이 흐르는 화필은 대작에서 더욱 뜨겁다. 이런 힘은 또한 그가 멀리 길게 남길 예술족적을 내다보는 가늠자여서 더욱 반갑다.

/김옥조-미술평론, 호남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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