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나를 살린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물속의 불> 등의 시집을 펴낸 바 있던 이대흠시인이 이번에는 장편소설 장편 <청앵(靑櫻)>을 펴냈다. 장흥 장동면 만손리 출신인 이 시인에게 소설은 첫 작품이다.

1990년대 가장 독특한 시법을 가진 시인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아와 작가의 이번 장편소설 <청앵(靑櫻)>은 지금은 수몰되어 사라진 전라남도 장흥지방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저마다 삶의 터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주민들이 댐 건설로 어떻게 고향을 잃게 됐는가를 애잔하면서도 활달한 남도 사투리와 섬세한 시적 문체로 풀어놓은 작품이다.

소설 <청앵>은 댐 건설로 수몰된 처지에 놓인 ‘자응 유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은 댐 건설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첨예한 갈등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사실과 허구의 역학을 잘 조율함으로써 사뭇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시한다. 특히 삶의 터전을 잃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한 주민들 간에 빚어지는 갈등의 골을 봉합하고 삶의 전망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인 이들의 이야기가 어떠한 양상으로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흥미진진한 서사의 흐름은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결말부분으로 채택된 진혼굿은 지난 백여년간 공권력의 횡포 속에 수난 당해온 지역민들의 소통과 갈등 해소의 장으로서 마련되고, 여기서 넋두리가 서로 어우러져 사회적 별신굿 마당으로 확장되는 미학 원리를 구현한 결과로 마무리 된다. 이것이 이 소설의 본질이며, 역사의 맥을 타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승되어오면서 얽히고 설켜 옹이로 가슴에 박혀버린 한을 이처럼 사회적 차원에서 푸는 이야기로 맺어지는 결말은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시인으로서 문명을 얻은 바 있는 작가의 시적 문제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표현, 세심한 응시와 섬세한 묘파로 일구어낸 남도 사투리의 대향연은 이 소설을 더욱 무게있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의 무대가 되고 있는 장흥군 유치지역은 "산 좋고 물 좋고 들이 넓어 사람 사는 장소로는 최고의 땅"이었던 유치지역은 "1894년 일어난 갑오농민

전쟁 당시, 자응군 일대는 농민군의 최후 격전지"였고 "한국전쟁 당시 군경 및 빨치산들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이기도 했던 땅이다.

이곳에 댐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나자 주민 대부분은 소 키우고 농사 지으며 일상생활을 계속했지만 "서울 놈들"은 "눈이 삘개갖고 산 사고 논 사고", 어떤 이웃주민은 보상을 더 받기 위해서인지 난데없이 논을 갈아 꽃 모종을 심었다.
많은 주민들은 "암만, 기래도 글제. 내 땅 내가 안 폴고, 내 집서 내가 안 나가겄다먼 우짜 껏이요"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민 공청회가 열리자 댐 건설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의 대립이 격화됐고 주민 동의서를 받으러 다닌 사람이 "수자원공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돈푼깨나 얻어쓴다"는 말이 도는 등 민심이 흉흉해졌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보상비를 받아 하나둘 고향을 떠나고, 몇몇 뜻있는 젊은이들이 진혼굿을 여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푸른 앵두’란 뜻의 ‘청앵’은 중국에서 결혼 못 한 처녀의 한을 풀어주는 중국의 풍습을 가리킨다.

소설가 한승원은 “투박하면서도 유려한 감수성을 씨줄로 하고 다정다감하고 의뭉스러운 전라도 장흥 지방 사투리를 날줄로 하여 직조한 무명베 같은 이대흠의 서사는 처절했던 6.25한국전쟁으로 인해 깊이 각인된 슬픈 암각화들을 혈맥속에 간직한 채, 수자원공사의 댐 공사로 말미암아 수장되는 땅과 하늘의 한을 열두 바탕의 판소리와 시나위 살풀이 춤사위로 굽이굽이 곡진하게 풀어내고 있다.”고 평했다.

또 평론가 장일구씨는 “과연 ‘청앵’은 푸는 이야기다. 고향을 잃은 이들의 한을 푸는 이야기이며 역사의 비극 속에서 대물림된 갈등을 푸는 이야기다. 개인의 한과 갈등을 푸는 이야기이자, 사회적 차원의 한과 갈등을 푸는 이야기다. 거대한 진혼의 굿판이거나 문화적 해한의 마당이다. 이러한 마당에서 어우러짐의 미학이 구현된 결정이 곧 ‘청앵’인 것이다.”고 평했다.


-1967년 전남 장흥 만손리 출생. 서울예술전문대학,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활동 시작,
-1999년 <작가세계> 소설 등단.
-시집 <상처가 나를 살린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물속의 불>
-사진에세이집 <그리운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온다>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 수상.
-<시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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