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시오?”
“아버님, 저예요 영지 엄마요”
“누구? 서구 영 숙이라고?”
“아, 저에요 막둥이 며느리”
“난, 모르겠소. 이따 다시 전화 하시오”
인생을 팔십 여섯 세월 화폭에 그려 넣어서 인지 귀가 심하게 어두운 시아버지와 다섯 며느리 중에 막내인 나의 통화는 늘 이렇게 끝이 나고 만다. 잡음이 많은 보청기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서랍 속에 넣어 둔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은 상대의 입 모양을 보고 대충 해결하시곤 하는 안쓰러운 아버님.
동문서답식의 답답한 대화 끝엔 간혹 큰소리의 부부 싸움이 벌어지곤 하는데 오늘도 아버님과 다투고 토라진 어머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 모양이다.
태평양 전쟁의 희생양이신 시아버지는 일본의 다른 지명은 다 잃어버렸어도 꽃 같던 청춘을 갉아먹었던 일본인들의 야만적인 행태와 당신의 뼈와 살이 녹아있던 나고야 미 씨 바 씨 비행기 공장이름은 절대 잊지 못한다고 넋두리처럼 말씀하시곤 한다.
가난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보리쌀 한 말로 분가를 하여 지금 이 다복한 가족의 근원을 만드신 시아버지는 힘든 농사 그만 접고 편히 쉬시라는 자식들 성화에도 아랑 곳 없이 농사만이 자신의 살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여덟 마지기 논을 지금까지 직접 경작하고 계신다.
알토란같은 손 주 녀석 들 입 속에 밥 숱 갈 들어가는 재미로 사신다.
그리 많지 않은 농토에서 수확한 적은 양의 쌀이라 여덟 명이나 되는 자식들에게 돌아갈 양이 많지 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그 길만이 당신의 희망이요 행복 이다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시곤 한다. 여섯 살 연하의 시어머니는 요즘 불평이 늘었다.
이 나이까지 농사짓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무 부지런한 사람과 사는 것도 때론 고통이다 라며 황혼이혼 이라도 불사하겠다고 투덜대신다.
그래도 내 덕에 이만큼 편하게 사는 줄 알라며 몸 고생은 시켰을망정 평생 마음고생 한번 시킨 적 없지 않느냐며 신랑 잘 만나 호강한 줄 알고 살라는 시아버지와 눈 흘기며 반격을 하는 시어머니의 사랑싸움이 그래도 정겹다.
자식 농사도 아주 잘 지으셨다.
오남 삼녀를 두셨는데 앞세운 자식 없고 홀로 된 자식 없으니 이 또 한 큰 축복이지 않은가. 세배 받는 설날이면 당신이 일궈놓은 자식 농사의 뿌듯함에 눈가엔 언제나 눈물이 흥건하신데 여덟명의 아들딸이 일가를 이뤄 열일곱이란 손주를 덤으로 얻었으니 왜 아니 기쁘시겠는가.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자식 잘되는 일만을 보라므로 느끼고 살아오신 이세상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자식 욕심이 유난히 많았던 시아버지는 손주 사랑도 끔찍하신 분이다.
싸리 빗자루를 들고 여느 날 처럼 마당을 쓸고 계시던 아버님은 툇마루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점심식사 때 곁들인 반주에 취기가 올랐는지 흐느끼며 흘리시던 십오년 전의 넋두리 하나가 떠오른다.
“큰 아들이 아들이 없는데 이렇게 마당을 쓴들 무슨 재미가 있겠으며 곳간에 곡식을 가득 쌓아놓은들 허허로운 이 가슴을 어찌 채울 수 있겠느냐”
당신은 다섯이나 되는 아들을 낳으셨건만 고추 달린 손자는 고작 네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더욱이 큰 아들이 아들을 낳지 못함을 못내 섭섭해 하셨다.
비록 큰아들은 아들을 낳지 못했어도 나머지 네 아들한테 얻은 손자들이 넷이나 있는데 굳이 큰 손자 없음을 한탄 하시는 시아버님을 당시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또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시 딸만 셋 낳고 큰아들 임무를 다하지 못해 늘 죄송스럽게 생각하던 큰형님 내외는 약주만 드시면 큰손자 타령을 하는 아버님 때문에 꽤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여러해의 마음고생 끝에 큰 형님은 마흔 두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아버님 품에 떡두꺼비 같은 큰 손자를 안겨 드리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큰손자를 안고 이제야 조상님 볼 낯이 생겼다며 웃으시던 아버님에게는 장남이 낳은 큰손자는 어쩌면 아버님의 살아가는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연례행사로 가시는 광주 아들네 집 나들이 길도 하루밤 이상은 묵지 못하고 그저 집 걱정 논 걱정이신데 당신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나락이 잘 자고 잘 자란다며 농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한결 같으신 분이다.
농한기 때면 걸어서 오분 거리의 우리집에 가끔 오시곤 하는데 노인정에 가봐야 화투만 치고 귀가 어두워 의사소통이 잘 안된 다시며 심심해서 왔노라고 며느리 눈치를 살피신다.
가까이에 살고 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 전화도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한 내가 한없이 부끄럽다.
오늘은 작정하고 시아버지를 위해 오후에 시간을 내었다.
자판기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시는 당신을 위해 커피도 뽑아오고 제육볶음에 소주 한잔도 권해 드린다. 늙으면 아기 된다고 며느리의 곰 살 맞은 배려에 기분 좋으신 모양이다. 마당귀퉁이 시멘트가 금가 오전 내내 보수 공사하셨다는 얘기, 요즘은 소일거리로 어머니와 봄나물 캐서 새벽시장에 내다파신다는 얘기, 옆집 금순이 아버지가 금연 실패했다는 얘기를 쉴 새 없이 이야기 단지에서 껴내 놓으신다.
막내며느리가 커다란 손 스피커를 만들어가며 종달새처럼 지저귀니 아기 같은 시아버지는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이렇데 마음 선하신 시아버지한테 오늘밤 다급한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아가, 큰 일 났다 내 틀니가 없어졌다.”
양치를 한 이후 장독대에 틀니를 잠깐 빼놓으셧다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단다.
작년 가을 자식을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마련해 드린 것이니 시아버지의 놀란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어딘가에 꼭 있을 거라고 걱정마시고 어디다 두셨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라는 며느리의 위안에 굳어있던 회색 빛 안색을 살며시 풀며 하시는 말씀이 아루매도 생쥐 녀석의 소행같다고 말씀하신다.
낡은 가옥에 빈번한 생쥐의 출몰로 골머리를 앓고 계시던 어머니의 푸념을 요즘 자주 들었던 터라 아버님의 예측은 어쩌면 정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온 집안 식구가 총 동원되는 해프닝을 뒤란 후미진 곳에 떨어져 있는 틀니를 찾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사색이 되셨던 시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안부전화를 자주 드려야겠다. 당시는 생쥐한테 틀니 뺏기지 않게 간수 잘하시라도 그리고 봄나물 캐서 돈 많이 벌면 막내며느리 맛있는 것 좀 사주시라고 말씀 드려본다.

<프로필>
월간 한비문학 수필등단
한국 한비문학 작가협회 호남지부장
시인과 사색 동인
한국 한비문학 작가협회 수필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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