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 2007-08-28/ 허연기자




"꽃 지면 열매 있고 / 달 지면 흔적 없어라 / 이 꽃의 있음을 들어 / 저 달의 없음을 증명하리 / 있으면서도 없음인 그 무렵의 / 그것이 실제 그 사람의 모습인데 / 탐욕과 미망 속에 허덕이는 자는 / 자취에만 집착하네."
조선 말기의 천재 예술가이자 정치가였던 추사 김정희가 금강산 여행 중에 쓴 시다. "있으면서도 없다"는 초월의 경지가 느껴진다.

작가 한승원이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형상화한 소설 '추사'(전 2권ㆍ열림원 펴냄)를 냈다.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 칩거 중인 그는 2년 동안의 산고 끝에 추사의 발걸음을 소설로 완성했다. 예술가로 70평생을 살아온 그는 왜 추사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을까.

"마음 가는 대로 살지라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는 나이 일흔을 앞두고, 일흔 한 살에 '있으면서도 없는' 세계로 날아간 추사 김정희의 드라마틱한 삶과 예술을 소설로 쓰고 싶었다"는 게 그의 변이다.

추사 김정희의 삶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크게 다르다. 추사의 젊은날은 부귀영화로 요약된다. 영조의 외증손주였던 그는 24세에 중국 연경에 다녀왔을 정도로 특혜를 누렸고 재주 또한 뛰어나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젊은날의 추사만을 보면 '오만한 천재'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추사의 후반생은 그렇지 못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할 무렵 추사는 개혁세력인 북학파의 선구자였다. 안동김씨 세력에게 추사는 눈엣가시였다. 결국 추사는 55세 때 윤상도의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오랜 친구인 우의정 조인영의 상소로 간신히 죽음만은 면한 채 제주도로 9년간의 유배생활을 떠난다. 추사는 제주도에서 초서 해서 행서 예서 전서 등 모든 글씨체를 통합하고 극복한 추사체를 완성했고, 문인화의 최고봉이라는 '세한도'를 그려냈다. 추사의 후반생은 '시대와 불화한 자유인'의 모습이다. 작가는 추사가 "오만한 천재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추사는 실사구시의 경학을 일으킨 학자이자, 고졸하고 현묘한 추사체의 창시자였고, 그림으로도 특출한 세계를 성취해낸 인물이기는 했지만 천재보다는 오히려 조선말기라는 혼란스럽고 광기에 가득찬 시대의 희생자였습니다."

소설은 말년의 삶을 축으로 추사의 모습을 그려낸다. 천재 예술가와 북학파의 선구자로서의 모습은 물론, 세도정치에 당당히 맞선 지고지순한 정치가로서의 추사, 양자와 서얼자식을 둔 한스러운 아비로서의 추사도 그려내고 있다. 작가와 추사는 소설 속에서 동일시됐다. 작가 스스로 "잠자리에 들면서도 추사 생각, 산책을 하면서도 여행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추사 생각을 했더니 내가 추사가 된 꿈을 꾸었다"고 말할 정도다.

작가는 추사가 유배지에서 보냈던 세월에서 단서를 찾는다. 50대 후반부터 제주도 유배 9년, 북청 유배 2년 등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추사에게 그 시간은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고독과의 싸움터였던 유배지 생활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버리며 글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일에 전념했던 인간 추사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욕망을 넘어선 나이에 이른 한 작가가 그려낸 예인 추사의 삶은 감동적이다.


<시대와 불화한 자유인 추사 김정희>
한승원 신작 장편 '추사' 출간
연합뉴스/2007년 8월 28일 (화)06:30/이준삼기자


"잠자리에 들면서도 추사 생각, 산책을 하면서도 여행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추사 생각을 했다…추사의 귀로 들으면서, 추사의 머리로 사유했다. 그러다가 추사가 된 꿈을 꾸었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불의 땅', '포구', '아제아제 바라아제', '아버지와 아들', '해일', '시인의 잠', '동학제', '초의', '흑산도 가는 길' 등 굵직굵직한 장편들을 발표해온 중진작가 한승원(68)씨가 새 장편 '추사'를 냈다.

오래 전부터 고향인 전라도 장흥의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을 지어놓고 소설과 차, 연꽃에 빠져 살고 있다는 작가가 "추사가 된 꿈"까지 꿔가며 집필한 역작이다. 작가는 근 2년 동안 "추사에 관한 모든 연구논문과 자료들을" 읽었다고 한다.

'추사체'(秋史體)로 유명한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순조 19년 문과에 급제해 이조참판까지 역임했던 인물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상을 주도했던 북학파(北學派)의 대가이기도 했던 그는 한편으로는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10년 넘게 객지를 떠돌았던 시대의 풍운아였다.

작가는 그런 추사의 말년 삶을 중심으로 천재 예술가, 북학파의 선구자, 세도정치와 당당히 맞선 용기있는 정치가, 양자와 서얼 자식을 둔 한스런 아버지로서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유배지에서 완성된 그의 "허화(虛華)로운" 예술적 경지를 그려내기 위해 무척 공을 들였다.

50대 후반부터 제주도 유배 9년, 북청 유배 2년 등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야했던 추사. 작가는 자신과의, 고독과의 싸움터였던 유배지 생활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버리며 글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일에 전념했던" 추사 모습을 섬세하게 조명하며 '세한도(歲寒圖)' 같은 희대의 명작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가를 탐색했다.

"마침내 '글씨가 시이고, 시가 그림'인 경지, '전서가 해서를 꾀하고, 해서가 예서를 꾀하고, 예서가 행서를 꾀하고, 행서가 초서를 꾀하고, 초서가 다시 행서, 예서, 해서, 전서를 모두 꾀함으로써 새로이 만들어진, 어지러운 헝클어짐 속에서 찾아지는 정돈된 질서"의 경지에 이른다"(제1권 7쪽)

소설가 김훈씨는 이 소설에 대해 "추사의 예술을 이 오탁악세의 수렁에서 피어난 해탈과 자유의 꽃으로 그려낸다. '세한도'와 '판전'(板殿)이 보여주는 정신의 오뚝함이 얼마나 큰 좌절과 외로움을 뚫고 나온 것이지, 그 신필의 바탕에 얼마나 두터운 시대의 암흑이 깔려있는 것인지를 이 소설은 그려낸다"고 평가했다. 전2권.
열림원. 각권 304-336쪽. 각권 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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