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어느 놈한테 맡기든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도록 정치를 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여."

작가 한승원이 최근 어느 일간지에 기고한 '대선을 한심해 하는 사람들'이라는 칼럼에서 어느 화자의 입을 통해 내뱉은 말이다. 작가의 현실정치 인식을 가늠케 하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시대는 작가에겐 분명 난세일 법하다. 장흥의 바닷가 해산토굴에 스스로 자신를 가두고 작품 쓰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노(老) 작가 한승원이, 최근 이 ‘난세(?)’에 화두로서 조선의 혁명을 꿈꾸었던 비운의 정치개혁가 ‘추사 김정희’를 세상에 던져놓았다.

소설 <추사1,2>(열림원간)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파장이 만만찮다. 벌써부터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권에 진입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뒤이을 열풍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이다. 문단 안팎에서도 단연 화두다. 평자들로부터, ‘이 소설은 여타의 역사소설과 격이 다르다’는 상찬이 줄을 잇는다.


■이 난세에 추사를 화두로 내놓다

영웅은 인간의 영원한 꿈이다. 그리고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 지금 우리 시대가 난세인가. 정의(正義)․정도(正道) 실현을 추구하는 작가로선 지금 세상은, 가치관이 전도되고 윤리가 무너지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있는 난세에 비할 만하다. 이번 대선에서도 누가 대통령이 돼도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세상이 될 터이므로 더욱 난세일 법하다. 이 '난세'에 김훈이 영웅 이미지에 감춰져 있던 인간 이순신을 끌어냈듯, 한승원은 '오만한 천재' 추사를 개혁적 지식인 추사, 범속한 인간 추사로 재탄생시켰다.



천재 예술가로, 화려하지만 비운했던 정치가로 조선 후기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실학을 낳은 북학의 선구자였고, 시·서화를 넘나든 삼절(三絶)의 대가였으며, 세도정치에 온몸으로 맞선 신념의 개혁적 정치가였던 추사 김정희의 전모와 실체가 한승원 작가에 의해 명쾌하게 복원돼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좌절과 오랜 유배가 타협할 줄 모르는 오만함에 있다는, ‘명문가 출신으로 시․서화 삼절에서 현묘한 경지에 이른 오만한 천재’라는 통념을 불식시키면서, 추사 말년의 삶을 중심으로 고독과 좌절, 분투 속에서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로서 추사, 서얼자식을 둔 한스런 아비와 범속한 인간으로서 추사의 면모를 거의 완벽히 그려냈다.

이 시대에 <추사>가 크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까닭도, 우리를 매료시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소설을 쓰는 동안 난 추사가 되었다”

“<초의>를 쓸 때부터 초의 스님의 지기였던 추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작가가 이번 소설을 위해 읽은 자료는 연구서, 논문, 학술잡지, 도록 등 60여 편에 이른다.

“이 소설의 형상화 과정에서 추사가 내 속으로 들어왔고, 내가 추사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추사인지 추사가 나인지 분별이 안 될 때가 많았다.”(작가의 후기에서)

“잠자리에 들면서도 추사 생각, 산책을 하면서도 여행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추사 생각을 했다. (…) 추사의 귀로 들으면서, 추사의 머리로 사유했다. 그러다가 추사가 된 꿈을 꾸었다. (…)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꿈을 꾸고, 집 주위의 밭 언덕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수선화를 농부들이 김매듯 뜯어 죽이는 꿈도 꾸고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해서 추사의 불꽃 같은 삶이 ‘한승원의 문학’으로 되살아났다.


■ "이 세상에 천재는 없다"

소설은, 함경도 북청 유배에서 풀려나 과천 초당에 은거하던 추사 말년의 삶을 엿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하늘과 당이 감응하도록 써야 한다"는 이 '판전((板殿.경판각을 저장하는 전각)'이란 두 글자,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일생에서 가장 소박하고 향기로운 보석 하나”를 만들려는 일이 일흔 한 살의 예술가를 몹시 괴롭힌다. "이러다가는 이 글씨를 쓰지도 못하고 죽게 될 듯싶다.”(1권 21쪽).

그는 결국 숱한 파지를 만들며 고뇌 끝에 최후의 명작을 남긴다.(소설 종결부분)

소설은 추사의 이처럼 빼어나고 아름다운 글씨와 그림과 간찰과 시들…. 그리고 신선이 남긴 것과도 같은 영험한 그의 작품들이 그의 천재적 소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유배지의 절대고독과 고뇌, 좌절과 절망, 분투를 통해 완성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소설에서 추사도 이 세상에 천재는 없다고 갈파한다.

“이 세상에 천재라는 것은 없다.”(2권 169쪽) 제주도 유배시절, 자신을 찾아와 서얼 신분의 운명을 원망하며 절망하는 아들 상우에게 추사는 천재가 부단한 노력과 신성이 작용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로 희망을 준다.

“명필이나 신필은 하늘에서 점지해주지 않는다. 명필로서의 완성이 백 칸이라 한다면, 아흔아홉 칸까지는 그 사람의 부단한 분투와 도전 같은 정진과 공력으로 이룰 수 있지만, 단 한 칸은 신성이 작용해야 한다. 그 신성은 하늘에 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신성을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 신성은 사실상 그 사람의 가슴에 원래부터 있던 것인데, 그 사람에 의해서 저 상공의 짙푸른 하늘과 감응하여 발견하게 되고 얻게 되는 것이다.”(2권 169쪽)


■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비운의 정치가

소설은 추사의 시련을 통해 순종,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던 조선 후기 왕권이 무너져버린 혼란기를 더듬고 있다. 6세 때부터 스승인 박제가로부터 이용후생의 경학을 배웠고. 24세 때 중국 연경에서 근대문명을 견문했던 북학파 선구자였던 추사는 외척의 세력을 제치고 왕권을 강화시키면서 청나라를 통해 서양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려는 개혁을 꿈꾸지만, 당시 권력을 장악했던 보수세력 안동김씨 세력으로부터 배척을 받아 말년(55세.1840년)에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2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유배지에서의 삶은 절대 고독과의 싸움이기도 했으며, 정치가로서 품었던 높은 욕망과의 싸움이기도 했고, 한 인간일 뿐인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추사는 과거로부터 떠나 마음을 비우고 시와 그림에만 몰두했다. 걸작 ‘세한도’ ‘불이선란’은 제주 유배지에서 탄생했다.

소설은, 추사가 그동안 꿈꾸었던 욕망을 버려가는 인간적인 모습을 묘사한다. 추사는 글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일에만 전념한다. 그리고 마침내 “글씨가 시이고, 시가 그림”인 경지, “전서가 해서를 꾀하고, 해서가 예서를 꾀하고, 예서가 행서를 꾀하고, 행서가 초서를 꾀하고, 초서가 다시 행서, 예서, 해서, 전서를 모두 꾀함으로써 새로이 만들어진, 어지러운 헝클어짐 속에서 찾아지는 정돈된 질서”의 경지에 이른다. (1권 7쪽)

소설은 부처를 받아들이고 ‘유마거사’가 되어버린 추사가 명필 현판을 쓰고 죽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추사의 50대 후반 이후의 삶은 이처럼 "잘못 흘러가고 있는 역사를 제대로 흘러가게 하려다가 보수 반대파들에게 당한 고난의 삶”이면서 동시에 절대고독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꿈’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며 절대 고독 속에서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기간이기도 하다.


■지극히 범속했던 추사

소설에서 추사는 지극히 범속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사실적 묘사가 ‘인간 추사’의 사실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추사는 생계를 위해 글을 파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글에 쏟아지는 흠모까지도 혐오한다. 자신이 쓴 글은 밤마다 무지개 빛이 넘친다는 소문이 돌자 추사는 실소한다. “추사는 속으로 실없는 사람들, 하고 그냥 웃기만 했다. 내 글씨에서 밤에 빛이 났다면, 내 글씨가 미선홍월(米船虹月)같은 신필이라는 것인가.”(1권 36쪽)

유배지에서도 탈속한 예술인이 아니다. 사약을 받을까 봐 두려움에 떠는 범속한 인물이다. “파발이 먼지를 일으키며 한양 쪽에서 달려오면 가슴이 뜨끔하면서 조마조마했다. 혹시 나를 붙잡으러 오고 있는 사자가 아닌가.”(1권 286쪽)

추사는 또 젊은 첩을 말등에 태우고 즐거움에 빠지기도 한다. “등줄기를 압박하는 초생의 볼록한 가슴과, 그의 사타구니와 엉덩이와 무릎과 발에 느껴지는, 질주하는 살진 암말 등허리의 탄력이 가슴에다 향기로운 술 같은 아릿한 환희를 풍겨주었다.”(1권 14쪽)


■지금 왜 추사 김정희인가


작가는 왜 새삼 이 시대에 추사를 불러냈는가. 작가는 “역사의 악순환을 드러내고 싶어서였다”고 말한다.

"한 번 권력을 움켜쥔 자들이 자기 패거리들의 권력과 이권을 위하여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해버리는 일은 이 시대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추사 김정희의 신필 뒤에 가려져 있는 전혀 또 다른 김정희의 얼굴, 잘못 흘러가고 있는 역사를 제대로 흘러가게 하려다가 다친 과정과 유배지에서 아파하고 슬퍼하면서도 치열하게 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주고 싶어 이 소설을 썼다."(작가의 말에서)

"왜 하필이면 이 시대에 김정희를 쓰는가에 대한 당위성이 성립하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다. 추사는 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예술가로서 또 정치가로서 사회를 개혁하려 했던 그 시대 지식인이었고, 그런 지식인은 지금 시대에도 필요하다. 추사를 주저앉힌 보수세력은 오늘날 이 땅의 어떤 거대한 보수집단을 닮았다. 역사는 반복된다. 나는 ‘추사와 그의 시대 이야기’를 통해 그 반복되는 슬픈 일을 나 스스로 각성하고 경계하고 싶었다.”


■인물중심의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작품들 선뵈다

자신의 소설사에서 원형의 상징성을 띤 공간인 고향 바닷가로 회귀, 해산토굴에서 왕성한 생산력으로 소설들을 ‘해산’하고 있는 원로작가 한승원. 그동안 주로 써 왔던 바다 소재의 소설에서 한 걸음 비켜나, 지금은 과거의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그 삶이 중심이 돼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소설 작업에 한창이다. <소설 원효> <초의>가 그랬다. 작가의 차기 작품 역시 역사 인물이 주인공이다.

작가는 추사의 절친한 벗이었던 초의선사를 다룬 <초의>에 이어 <추사>를 통해 ‘추사 시대’의 삶을 현재적 의미로 재해석해 내고 있다. 작가가 <추사>에서 추사가 시대와 불화하면서, 감당해낸 시대적 고뇌와 좌절과 절망, 분투는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이 때문이다. 또 그 때문에 작가는 “문장이나 문체, 구성, 성격 등 소설적 장치 모두가 현대소설을 쓸 때와 다를 바 없으므로 최근 작품들을 역사 소설이라 부르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추사>의 경우, ‘어쩌면 유배지’ 같은 해산토굴에서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비우고 차와 연꽃과 여다지바다와 벗하며 창작에만 천착하고 있는 작가는, <추사>를 통해 자신의 고독한 예술적 삶을 투영시켰을지도 모른다. /김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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