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출신 작가 이청준(68)씨가 새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했다'(열림원)를 발표했다.

이번 책에는 작가의 서문과 해설 외에도 평론가 김윤식(서울대 명예교수)씨의 ‘아, 이청준’이라는 발문이 붙어 있다.

김윤식교수는 "하늘과 땅이 하도 아득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것의 하나가 이청준씨 소설이오”라고 썼다.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 이후 그가 작가로서 그가 거둔 성과는 지난 2003년 완간된 25권의 <이청준 문학전집>의 마무리였다. 이번 책은 <이청준 문학전집>에 묶이지 않은 작품들이 수록된 다섯 번째 책이다. 다른 네 권은 창작집 <목수의 집>(2000), <꽃 지고 강물 흘러>(2004), 장편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2000), <신화를 삼킨 섬>(2003)이다.

이번 신작소설집은 대부분 2004년부터 최근 사이 창작해온 작품을 모은 것으로 '그곳을…' 등 3편의 중편, '천년의 돛배' 등 4편의 단편, 그리고 '귀항지 없는 항로' 등 4편의 에세이 소설을 수록했다. 총 11편의 작품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은 작가의 다양한 형식과 분량만큼이나 그의 소설이 추구해온 작품 세계가 모두 실려 있다.

이번 작품집의 특징은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 단계'인 '에세이 소설'이 실려 있다는 점. '귀항지 없는 항로', '부끄러움, 혹은 사랑의 이름으로', '소설의 점괘(占卦)', '씌어지지 않은 인물들의 종주먹질' 등 4편의 에세이 소설은 일반 소설과는 다른 자연스런 삶의 생기와 소박한 사유의 은밀스런 성취감을 맛보게 해준다.

또,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지하실',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 등의 작품에서 작가는 역사에 운명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우리네 무지렁이들을 위한 씻김질을 토해 낸다. 다양한 형식과 분량의 작품에는 삶에 대한 성찰, 인간 실존에 대한 성찰, 역사와 이념에 대한 성찰, 소설 쓰기에 대한 성찰, 소설쟁이로서의 성찰이 고루 담겨 있다.

이번 신작소설집은. 작가가 올 여름에 갑자기 폐암진단을 받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는 등 투병생활 와중에 출간한 것이라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서도 이처럼 풍부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타고난 소설가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 작품집 출간 때마다 늘 써오던 작가후기 대신 이번 책에선 서문을 붙이고 “스무 권 가까운 창작집과 열 권 이상의 장편소설을 내면서도 그중 어느 한 권도 누구에게 바친 일이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면서 “이제 와서 여기 그 이름들을 어찌 다 적을 수 있으며 그리하여 또 무엇 하리”란 말로 회한을 표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깨어진 영혼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어찌 하랴. 배반이나 가해, 혹은 폭력의 허물을 또한 어찌 하랴. 삶과 역사의 한을 도대체 어찌 하랴. 그 어찌 할 수 없음 때문에 ‘귀항지 없는 항로’에서 헤맴의 세월을 거듭한 작가 이청준의 헤맴은, 여전히 가열하다. 뜨거우면서도 웅숭깊은 헤맴을 통해 섭리처럼 역동적인 존재의 씻김굿들을 연출한다. 씻겨도, 씻겨도 씻기지 않는 허물과 얼룩 앞이기에 오히려 씻김굿의 신명은 농익어간다. 얼룩의 복합 갈등들을 더 복합적이고 치열한 상충들로 스미고 짜이게 하면서, 마침내 현묘한 대긍정의 세계를 응시하고 빚어낸다. 하여 이청준의 소설은, 어둠의 항로 속에서 스스로 빛난다."고 평했다.

소설가 이연수씨도 "애당초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설혹 태어났더라도 지금과 다르게 살았더라면 그 많은 이야기들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이야기들은 이제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곁을 떠나 바위섬에, 지하실에, 혹은 어둠이 내리는 밤바다에 깃든다. <이 소설>은 우리가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한때 이 땅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또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러므로 시대가 바뀌어도,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으리라. 그 이야기를 한 번 들려줄 때마다 선생은 소설가에서 다시 소설가가 된다. 나도 선생처럼 끝내 소설가가 되는 소설가이기를, 많은 생각 끝의 독후감은 이처럼 너무나 자명해서 오히려 두려운 것이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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