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4년 조선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어, 대한민국 사학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들었던 장동면 신북구석기유적이 전라남도 기념물(지방사적)로 3월 13일자로 지정고시됐다.

신북구석기유적지는 지난 2003년, 국도 2호선 확포장 공사 중에 조선대학교 박물관 이기길교수가 이곳(북교리)를 우연히 지나다 발견, 공사중지를 요청한 후, 2003년 7월부터 2004년 5월까지 발굴에 들어가 무려 3만여 점의 구석기 유물을 발견한 곳으로, 유물살포지가 장동면 소재지 일부를 포함하여 약 4만여 평에 이른다. 조선대 박물관팀(관장 이기길)은 이중 6천여평의 부지를 발굴했으며 발굴 성과를 중간보고회 및 발굴보고회를 통해 학계에 널리 알렸다.

유적의 면적 4만평은 국내 후기구석기 유적 중 최대 규모다.

또 발굴지 6000평에서 2만2천년 전 유물 3만점이 한꺼번에 출토돼 유물 밀도 역시 매우 높은 곳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출토 유물 3만여점 가운데 간돌자귀(돌을 깨뜨린 뒤 갈아서 날을 세운 도구)와 숫돌 등 다양한 형태의 후기구석기 유물 20여점이 후기 구석기의 마제석기로 확인, 그 동안 마제석기는 청동기시대 유물로 생각돼 왔던 기존 통설을 바뀌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성과에 지역에서도 2004년 5월 11일, 지역민들로 구성된 '신북구석기 유적 보존회'를 결성하고 '신북 구석기 유적'의 보존과 유적을 세계의 학계에 알리고, 이의 도지정문화재 지정 및 국가 사적지화 추진과 관광자원화를 위한 공식활동에 들어갔다.

또 2004년6월 22일부터 24일까지 국내외 학자 30여명이 참가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갖기에 이르렀다. 이 학술세미나는 새로운 기록을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유적 발굴 1년만에 그 성과를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이같은 단기간의 학술대회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학술대회는 우리나라에도 마제석기를 사용한 후기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다는 사실, 마제석기가 제작도구까지 함께 출토된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일본의 간노키(貫の木)일대 유적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하는 사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석기의 형태와 제조방법을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드믄 유적이라는 사실 등이 규명됐다.


신북 유적을 발굴한 이기길 관장은“신북마을에서만 아직 발굴되지 않은 면적이 3만 4000평에 달하고, 신북마을과 별도로 지표조사 결과 구석기유물 이 출토된 인근 마을이 22곳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장흥·보성군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발굴이 필요하며 앞으로 전시관을 건립하여 역사체험 및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신북 구석기 유적에 대한 기념물(지방사적) 지정은, 앞으로 국가사적지화의 전 단계로 볼수 있어 지역민의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다음은 전남도의 신북 구석기유적의 기념물 지정 심의서이다.


■2007. 12.18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 심의-전라남도 기념물 지정

o 문화재명 : 장흥 신북 구석기유적(長興 新北 舊石器遺蹟)
o 지정예정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제238호
o 소 재 지 : 전남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신북마을 일원(9-19번지 외)
o 토지 소유자 : 국유, 공유, 사유
o 지정예정구역 면적 : 67,224㎡(31필지)
o 시 대 : 후기 구석기시대
o 신 청 인 : 장흥군수
o 조 사 자 : 최성락․이정호․이헌종․이기길․김희태

o 지정사유
장흥 신북 구석기유적은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신북마을의 얕은 언덕(해발 190~165m)의 남쪽에 있다. 신북유적의 규모는 유물이 확인된 범위를 기준하면 약 12만여㎡으로 추산되고, 유물이 들어있는 지층의 분포 범위로 보면 신북마을을 포함한 언덕 전체가 해당되어 약 30여만㎡으로 추정된다.

2002년 8월에 국도2호선 장흥-장동간 도로 확포장 구간도로 건설 구간의 교량 터파기 공사때 문화층이 드러나면서 확인되어 2003년-2004년 사이 7개월간의 발굴조사(조사기관 : 조선대학교 박물관, 조사 면적18,000천여㎡) 결과 3만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2004년 5월 11일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장흥 신북구석기유적 보존회”가 결성되었고, 2004년 6월 22~24일 “동북아시아의 후기구석기문화와 장흥 신북유적”이란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장흥 신북 유적은 한국에서 보고된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 가운데 가장 크고 유물의 밀집도가 매우 높다. 그리고 신북유적을 중심으로 반경 12㎞ 범위에 20여개의 구석기유적이 유적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신북유적은 중심 유적이다.

신북유적은 화덕자리가 6개 이상 드러나서 후기구석기인들의 살림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대표되는 뗀석기로는 좀돌날(세형돌날)몸돌, 새기개, 밀개,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 등이 있고 유적의 중심 연대는 22,000년 전으로 재어져 후기구석기 후반의 석기발달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특히 국부 마제석부를 포함한 새로운 종류의 간석기들이 소량이지만 뗀석기들과 함께 문화층의 중위와 하위에서 대부분 드러나서, 이제까지 ‘타제기법은 구석기시대’, 그리고 ‘마제기법은 신석기시대’라는 고정 관념을 재검토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부마제석부는 일본열도에서 약 35,000년 전에 나온 예가 많아 구석기시대의 마제석기 출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이 유적 흑요석의 성분분석 결과 원산지가 백두산, 일본 큐슈와 홋카이도로 추정되었다. 이 점은 유베쯔기법의 좀돌날몸돌과 함께 신북유적의 후기구석기인들이 일본열도와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장흥 신북 유적은 후기구석기시대의 생활상, 문화상을 잘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후기구석기유적 중 가장 크고 유물의 밀집도도 높은 유적이다. 그리고 일본, 중국, 시베리아 등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후기구석기문화와의 연관성을 풀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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