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1월 26일 발간된 제27호 ‘정남진 장흥’(Digital WEBZINE) 이라는 소식지에 ‘ 항일독립운동과 동학정신이 깃든 장흥천도교당 개보수’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정보가 실렸다.

“항일독립운동과 동학정신이 깃든 장흥 천도교당이 2억여원의 사업비를 투입, 개보수를 완료하였다. 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된 장흥천도교당(장흥읍교촌리 소재)은 1906년 초가로 건립하였다가 1918년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와가로 개축하였고 1920년에 다시 정면 입구에 포치(Potch)형을 덧단 형태의 건물로써 동학 후예들이 주축이 되어 성금을 모금하여 건립한 것으로 1919년에 3·1운동의 중심지가 되는 등 항일독립운동의 기지로써 활용되는 등 역사성과 장소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군에서는 그간 2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천도교당과 화장실을 개축하고 낡고 방치되었던 문화자원을 보수하여 역사교육의 장 및 동학농민 혁명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정비하였다. ”

지난 2003년에 도지정 문화재(기념물)로 지정받았지만, 그동안 관리 소홀 등으로 폐가나 다름없었던 천도교 교당을 군에서 2억원의 자금을 투입, 개보수를 한 것이다. 개보수를 완료한 시점이 아마 지난 해 6월쯤인 것으로 생각된다.






↑개보수 하기 전의 교당모습




↑개보수를 마친 이후의 교당모습.

그런데 개보수를 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 4월 11일, 이곳을 찾았을 때, 2억원을 들여 개보수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마당이며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공허했다. 완전 개방형의 출구 골목이며 입구를 딱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강당 뜨락이 정비되지 않아 썰렁했다. 이날 행사때문에 사람들이 붐볐는데, 여느날 처럼 사람이 없었다면 마치 폐가를 방문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윗쪽이 중앙강당, 아래가
화장실이 겸해 있는 관리실 모습 . 맨 우측이 화장실. 죄측은 서너평 남짓되는 공간의 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중앙강당이며 관리실은 그런대로 무난했지만, 전체적으로 급조한 개보수 작업이 역력해 보였다. 강당 뒷쪽으로 가 우연히 지붕을 보니, 기와장 일부가 너덜너덜해졌고, 처마쪽으로 한 개의 기와가 쪼개져 떨어져나가 뻘건 밑흙이드러나 있었으며, 나머지 몇 개의 기와도 머잖아 우수수 떨어져 나올 것 같았다.





강당 뒷쪽은 나무판으로 벽을 만들어 붙였는데, 나무판이 이미 뒤틀려 있어, 여러군 데에 틈새가 확연해, 찬바람이며 빗줄기 침범을 막을 도리가 없어 보였다.







2억원을 들여 개보수했다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며 문화자산이다.그런데 왜 개보수 작업이 이렇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 현장 하나가 바로, 우리 장흥군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은가.



↑뒷곁의 우물을 복원했다는데 이 모양이다. 좀더 그럴듯 복원해놓을 수는 없었을까.




관리실 뒤, 골목과 이웃한 곳. 이곳 역시 제대로 정비가 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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