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문화교류회 장흥지회(지회장 지주상. 이하 장흥지회)는 중국 장흥현을 방문, 장흥군이 최근 재현ㆍ복원사업에 들어간 청태전(靑苔錢)의 원조가 중국 장흥현의 고형차인 병차(餠茶)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흥지회는 지난 5월 27일~30일, 중국 장흥현에서 개최되는 ‘제10회 국제차문화세미나’에 참가했다. 방문 3일째인 30일, 장흥지회 회원들은 중국 장흥현에서 ‘차경(茶經)’의 저자인 차성 육우(茶聖陸羽.서기 733~804년)를 기념해 조성, 전날(29일) 개원했던 ‘육우다원(陸羽茶院)’ 의 차 역사 전시실에서, 지금 장흥군에 전래돼 오고 있는 청태전과 그 모양이 아주 흡사한 형태의 고형차인 병차를 보고, 장흥의 청태전이 1200여년 전 이곳 장흥현 고형차에서 출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육우다원 앞에서 기념촬영하다.


육우정원은 중앙부의 정각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좌우회랑이 조성되어 있다. 좌측 회랑으로 가는 길.



차성 육우의 동상 육우다원이 개원하던날. 5,29


이번 장흥현 방문은, ‘제10회 국제차문화세미나’ 개최에 즈음, 장흥현 정부의 초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장흥군에서는 한중문화교류회장 강원구 박사를 비롯, 지주상 지회장, 김인규 전 군수, 김선욱 장흥신문사장, 김수만 군청계장(마케팅과), 최유식 보성군민신문사장, 안서령 보성군민신문 편집국장 등 15명이 참가했다.

중국 방문 이틀째인 29일 장흥현 방문단은 현청 부근 대극장에서 개최된 ‘제10회 국제차문화세미나’ 개막식에 참가했으며, 중국 역대 차 문화를 극화한 공연을 관람했다.

오후에는 장흥현청 학술관에서 개최된 장흥식약품산업설명회에 참가하고, 다음날 오전에 육우다원등 장흥현 관광지를 견학했다.

특히 장흥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전날 개원한 육우다원. 차성 육우의 숨결이 느껴질법도 한 고저산 기슭에 대규모 정각으로 우뚝 저립해 있는 육우다원은 청태전을 복원하고 있는 장흥군 사람들이나 다향제를 개최해 오고 있는 보성사람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먼저 우리는 캐나다에서 수입한 원목으로 조성한 그 대규모 목조건물에 놀랐고, 육우정각을 구심점으로 양쪽으로 반원형의 목조 회랑을 조성해 중국의 차 문화와 역사, 육우의 차와 관련된 역사적 흔적, 중국 일본 한국 차 문화와 역사를 동시에 비교 조명해볼수 있는 전시실을
갖춘 회랑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특히 중국 장흥현의 차 문화 역사전시실에서 병차의 제작 과정이 소개되고 있었다. 얼핏 우리는 장흥군의 청태전 제조 과정을 보는 듯한 착각을 갖기도 했다. 두께만 조금 두꺼울 뿐 동전 모양이나 크기가 거의 비슷했고, 더구나 그 병차들을 끈으로 꿰어놓은 모양새는 영락없이 청태전이었다.

■차성 육우와 청태전 원조 장흥현 병차

장흥현은 중국의 차 문화의 발상지다. 육우는 장흥현 서북부에 위치한 고저산(顧渚山)에 머물며 장흥현에서 생산, 재배되는 차들을 고찰하며 차 끓이는 기술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여 765년경 당대의 거작 ‘차경’을 저술했다.

육우의 ‘차경’은 '차(茶)' 자(字)의 정착, 기구(器具), 제다(製茶), 음다(飮茶), 행다(行茶) 등을 체계적으로 정립시키면서 차가 일상음료로 확산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고저산에서 생산된 자순차(紫荀茶 또는 고저자순차顧渚紫荀茶)와 차 끊이는데 가장 중요한 물로 장흥현의 금사천의 물을 ‘차경’에 소개했다. 당시 당나라 대종(代宗)도 770년 '공차다원(貢茶茶園)'을 고저산(顧渚山)에 세워 ‘황실공품’으로써 특급차를 제다하여 금사천 물과 함께 조정에 진상토록 하여, 육우에 의해 자순차와 금사천 물이 역대 황실공물이 되기도 했다.
또 장흥현에는 기세가 웅장한, 당나라 때부터 존재했던 ‘대당황실차원(大唐皇室茶院)이 지금까지 현존해 오고 있다.

현재 장흥현에는 6만㏊의 차밭이 있으며 생산량은 약 2,400톤에 달한다. 이중 장흥현의 대표적인 차인 자순차와 백차(白茶-찻잎을 가볍게 발효한 차)의 재배 면적은 3만㏊(6만㏊는 보성 장흥 강진군의 합병지역 면적 만한 크기)에 달한다. 이러한 육우와의 역사적 연관으로 장흥현은 2년간의 공사 끝에 고저산 기슭에 대규모의 육우다원을 조성하고 이번에 개원하게 된 것이다.
고저산은 해발 250미터 가량의 낮은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차를 생산하는 다원들은 이 구릉지대에 밀집해 있다. 장흥현의 고저자순차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크게 세 번 형태가 바뀐다. 당대에는 찐 뒤 갈고 눌러서 만들어진 병차였고, 송대에는 차를 쪄서 연고를 만든 뒤 단차로 만들어졌으며, 명나라 시대 이후에는 덖어서 만든 잎차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 자순차는 우리나라의 다인과 시인들도 접하며 이 차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목 마르면 세사발의 자순차를 마신다는 선가풍의 차 생활을 한 진국감사와 매월당 김시습 등의 시에서 이 자순차가 등장하기도 했다.

←제 10차 국제차문화세미나 개막식에 참가하다.

자순차가 당대에서 병차였을 때(당대에는 병차가 차의 중심이었다), 육우가 ‘차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소개한 병차의 제조와 음다법은, 따온 찻잎을 시루에 쪄서 공이와 절구로 찧은 후 그 찧은 찻잎을 차틀에 넣어 병차를 박아내어 건조시킨 후 구운 병차를 나무로 만든 차 맷돌에 갈아 가루를 내어 끓이면서 떫은 맛을 제거하고 감미를 더하기 위해 소금을 넣을 뿐 다른 양념을 넣지 않고 끓여 차의 정화(精華)인 말발(沫懺-차를 끓이면서 찻물 표면위에 뜨는 차가루의 포말. 차의 진향과 진미를 내는 말발을 제거한 차를 육우는 도랑에 버릴 물이라고 하였다)을 마셔야 한다고 했다.

<중국 장흥현 탐방기- 다음호에 계속>


장흥청태전의 원조인 당나라 때 만들던 장흥현의 병자. 말리는 모습



병차를 끈으로 꿰고 있다.





끈으로 궤인 병차를 건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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