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타계한 장흥의 소설가 故 이청준(69) 선생의 노제(路祭)가 8월 2일 오후 2시 30분, 선생의 고향 마을인 회진면 진목리 마을회관 앞에서 엄정히 봉행됐다.

하늘도 고인의 노제가 축제이길 바라는 듯, 구름이 끼여 햇빛을 가리우고 간간히 서늘한 바람도 불어와 한여름 대낮치고는 최적의 날씨가 계속된 가운데, 부인 남경자씨와 외동딸 은지씨를 비롯한 유가족과 장흥군민, 고향 문인들이 슬픔 속에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용히 지켜 봤다.

2시 30분 경, 서울에서 영구차와 함께 선생이 귀향하고, 단아하고 인자한 미소를 띤 고인의 영정사진이 분향소에 설치되면서 노제는 조용히 엄수됐다.

노제에 앞서 선생의 고향 땅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한풀이라도 하듯, 제주민요제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명창 이지선씨가 고인을 기리며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한스럽게 읊어대
선생의 이승에서 정한(情恨)의 삶을 되새기게 했다.

또 노제 마지막에서는, 장흥가무악제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춤꾼 김덕숙씨가 고인을 기리며 마치 영화 '천년학' 마지막 장면처럼 선학동으로 날라드는 학의 춤이라도 추듯, 애조띤 창(唱) 가락에 맞추어 너울너울 가무를 선보이며 선학동 신화시대를 연 선생의 마지막 길을 축복했다.

노제가 시작되고 선생의 고향 친구이자 동료이기도 한 소설가 한승원(69) 선생은, 한지에 붓으로 쓴 조사(弔詞)를, 목이 메이는 듯 말을 띠엄띠엄 잇기도 하며 "이지적이고 지적이고 정직한 선생은 세상을 문명비평적인 시각으로 통찰하고 조용히 작품을 쓰면서 후학들에게 좋은 소설을 쓰는 전범을 보였고 천재이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글을 쓰는 근면한 작가였다"고 회고했다.
이번 노제 추진위원장이기도 한 한승원 선생은 또 "우리는 선생을 매장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고 선학동에서 영원을 사는 선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당신은 저 태고의 신선들처럼 자기 시간의 한계를 극복한 문학으로서 영원을 살게 된 신화 그 자체입니다"라면서, 이청준이 장흥의 선학동의 신화가 되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생의 고향 후배시인 김영남은 조시(弔詩)에서 "…임은/여 진목의 한 달개비 풀로 태어나/질긴 생명력과 왕성한 의욕, 높은 지조로/고향 산해(山海)를 향기롭게 하는/난이 되었지요/선학동의 학이 되었지요//임의 잦은 왕래, 그리고 눈 가의 잔주름들…/우리들은 이제야 뼈아프게 깨닫게 됩니다/그것들이 우릴 얼마나 세심하게 보살피는/당신의 고독한 손길이었는가를/쓸쓸한 담배연기였는가를/(중략)/이 더위 물러가고 눈 내리면/우리는 또 '눈길'을 걸으며 걸으며/임과, 임의 어머님과, 임의 삶에 대하여/여기 춘란의 향처럼 그리워하리라/선학동의 학 울음소리도 받아 적게 되리라"고 읊으며 고인의 삶을 회고하고 그 의미를 새겼다.

이명흠 장흥군수도 추모사에서 "그저 당신이 타신 꽃구름 보면서/어디로 가시느냐고 몯지 않겠습니다/다만 지금 선베님의 / 하연 머리에 그 미소가 보고 싶습니다/그런데 자꾸만 눈이 시립니다"고 선생의 타계를 안타까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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