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은 마음이 흔들리면 술을 한잔 했다지만, 나는 흔들리면 차를 마신다.…누군가가 나를 절망하게 할 때, 내가 낡아간다고 생각될 때, 슬퍼지고 우울해질 때 차를 마시면 그 슬픔과 우울에서 깨어난다. 차는 깨달음 그 자체는 아니지만, 깨달음을 낳는 자궁은 된다.”


안양면 율산리 '해산토굴(海山土窟)'에서 집필생활을 하고 있는 소설가 한승원(67). 뒤란 언덕에 죽로차 밭을 일구며 차를 즐겨마시고 있는 다인 중의 다인이라는 한수원선생이 최근 차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에 자신이 직접 찍은 연꽃, 집필실 사진 등을 더해 에세이집 <차 한잔의 깨달음>(김영사)을 냈다.


이 책은 단순히 찻잎 따는 손길, 덖는 불기, 차 우리는 품새, 차 마시는 법 등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를 ‘풋늙은이’라고 부르는 저자는 인생의 참다운 맛과 멋을 차라는 ‘각성의 약’을 통해 풀어낸다.


선생은 차 향기를 통해 '순수'를 배운다고 했다. "순수는 한 생명체가 막 태어났을 때, 어떤 일인가를 처음 하기 시작했을 때, 어떤 사람과 처음 사귀었을 때의 첫 마음 첫 정성 첫 사랑 속에 오롯하게 스며있다. 그 순수는 차의 향기와 같다. 좋은 차의 향과 맛은 처음 우렸을 때나 마지막 우렸을 때나 한결같이 그윽하고 신비롭다."


자신의 수제자인 아내의 차에서 나는 향기는 그윽하다고 적었다. "풋내가 거짓말처럼 나면서 갓난아기의 알몸에서 맡아지는 배릿한 배냇향이 나고 마법의 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윽향 향이 난다"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향기 나는 사람은 질 좋은 차와 비슷하다. "탐욕 속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서는 발 고린내 같은 흉측한 냄새가 나고 그 탐욕으로부터 탈출한 사람에게서는 질 좋은 차에서 맡을 수 있는 배릿하고 고소한 향내가 난다"고 했다.


선생은 또 머리말에서 차가 깨달음을 준다고 예찬하기도 했다. "차는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탐욕과 오만과 미혹과 분노와 시기 질투와 복수심을 그치게 하는 것, 말하자면 멋지고 향기로운 파격이다.
다른 하나는 밝고 맑은 지혜로써 세상을 깊이 멀리 높게 뚫어보게 하는 것이다. 술은 사람을 미망 속으로 빠져들게 하지만 차는 어둠에 갇혀 있는 사람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더러운 세상을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 앞에 차 한 잔이 놓여 있다. 차, 그것은 선(禪)의 또 다른 얼굴이다."


초의 스님이 차에 대해 쓴 '동다송'과 '다신전'을 한씨가 문학적 표현으로 의역해 부록으로 실었다. 292쪽. 1만1천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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