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어제, 오늘은 내일을 여는 문이다.

전통은 어제라는 과거의 영역의 소산이지만, 그 전통을 이어받아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전퉁을 무시할 때 튼튼한 미래를 보장 할 수 없다.
우리가 문화에서 정체성, 뿌리를 무시할 수 없음은 이 때문이다.

노벨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민족은 이스라엘인데, 이스라엘의 경우, 어릴 때부터 뿌리에 대한 교육이 철저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뿌리에 대한 인식은 그만큼 자존감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고, 자기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존감 정립은 성취욕을 배가 시킬 수 있다.
우리 고을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계승하고 이를 습득하여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장흥의 선인들이 남긴 소중한 전통문화를 진심을 다해 계승하고 새로운 시각과 실험을 통해 오늘의 전 세대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오늘의 문화’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때만이 건강한 장흥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음도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우리의 소중한 그 전통이 무시되며 아예 폐지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올해부터는 가무악전국제전이 폐지되므로써 우리 고을의 소중한 전통이었던 서편제 본향으로서 전통이 설 자리를 잃고, 역사 속으로 사장되게 되었는데, 다시 또 과거 다시 우리 고을의 놀이문화의 총화라 할 수 있었던 ‘고줄놀이’도 아주 사장 위기에 놓였다. 그동안 보림문화제를 통해서 간신히 그 맥을 이어왔던 고줄놀이가 올 보림문화제(‘제 45회 장흥 보림문화제 및 군민의 날‘ 때는 그 시연을 폐지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흥군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고줄 제작에 따른 전문 기능보유자 확보가 어렵고 인력동원(최소한 500명) 등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보림문화제 행사에 고줄놀이 시연을 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지역 문화계가 반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 원로 문화계 인사는 “장흥의 문화마인드가 적막강산이 되어버렸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고줄놀이(고싸움 줄다리기)는 지난 2012년 때만 해도, 그 보존 전승을 위해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과 계약해 학술 용역을 실시할 정도로 군 당국이 그 보존 전승에 의욕을 가졌었다. 당시 군 당국은 "고싸움 보름 줄다리기의 현재까지의 보존 현황과 앞으로 전승하기 위한 방법과 함께 문화재적 가치를 밝혀 보기 위해 이번 학술조사를 실시하게 됐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이 경과하자, 그 고줄놀이를 아예 사장시켜버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듯싶다.
장흥 고줄놀이는 조선조 장흥도호부 시절인 1872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장흥교 밑에서 서부 고와 동부 고로 나눠 풍년을 축원하는 민속공연으로 시작됐다. 그 후 장흥 보름 고줄놀이는 매년 정월 10일께부터 고를 만들고 남외·교촌·충열리 등 남외 3리는 부서 줄로 붉은 천을, 행원리와 건산리는 부동 줄로 푸른 천을 각각 사용해 정월 대보름날이면 탐진천변에서 고싸움과 줄다리기 행사를 가졌었고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읍면 마을별로도 고줄놀이가 행해지곤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인 1917년에 중단됐다가 지난 1970년 ‘제1회 장흥 보림문화제’(군민의 날)를 계기로 다시 부활했다.

이후 장흥 고줄놀이는 ‘장흥 보림문화제’를 상징하는 고유한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광주 칠석 고싸움과 함께 대표적인 고을형 축제로 널리 알려졌으며 197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필자의 고향마을에서도 정월 보름 때 고를 만들어 윗마을과 아랫마을간 고줄놀이를 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물론 고줄놀이에서 고 제작자의 노쇠화와 고싸움, 줄다리기 시연 인력 동원 문제로 그 보존·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고줄놀이의 시연이 이젠 보림문화제 때도 볼 수 없게 되면서, 우리의 소중한 전통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이기에 놓인 것이다.

가무악제전은 과거 장흥이 남도국악의 주요무대이고 서편제 본향으로서의 전통을 이어가는 한 수단이었지만, 이젠 그마저 폐지되며 이젠 ‘장흥=서편제’를 운운할 근거조차 없애버렸다.
과거 놀이문화의 총체로서 전승의 맥을 이어 온 고줄놀이마저 폐지된다면, 또 하나의 소중한 우리의 전통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제 또 어떤 전통이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너나없이 없는 것도 만들어내고, 야사 기록만으로 자기들 것으로 정립시키는 판에, 우리는 있는 것마저 무시하며 없애버리고 있다. 이런 판국에 누가 우리 고을을 문림의향이니, 문화 고을이니 하 수 있겠는가.

우리고을의 문화를, 전통을 유지, 보존하는 것은 주체성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며, 이러한 문화가 정립될때 장흥문화는 더욱 탄탄히 발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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