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은 남도 국악의 뿌리=장흥군은 조선조에 호남 서남부 권역의 중심적인 부사고을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유림문화와 선비문화가 발달되었고, 특히 국악분야에서는 가야금 산조 '옥삼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최옥삼 선생과 '서편제' 판소리의 명창으로 유명한 정응민 선생 등이 당시 장흥군 출신으로 장흥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활동했었다. 이러한 장흥의 소리와 가락의 향맥은 이 고장 출신의 출신인 이청준선생의 연작소설 '서편제'와 한때 판소리의 대중화를 선도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서편제'의 탄생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흔히 서편제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조선조 정조·순조 무렵 8명창 중의 한 사람이었던 박유전(朴裕全) 선생은 전북 순창 출신이었지만, 당시 장흥군에 속해 있었던 옥암면 강산에서 소리 활동을 하며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장흥은 서편제의 뿌리=이후, 박유전은 강산마을에서 여생을 마감하기까지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는데, 그의 여러 제자 중에 뛰어난 소리의 장흥출신의 대가로는 장흥군 안양면 신촌리 출신의 정재근과 역시 정재근과는 친척으로 정재근의 창법을 이어받았던 정응민 선생이었다.

보통 나주출신으로 알려진 정재근(鄭在根)은 실은 강산마을과 가까운 안양면 신촌리 출신으로 철종·고종 때 박유전(朴裕全)의 문하생으로 어전에 나가 소리하고 홍패를 받았던 판소리의 명인이었다.

역시 안양면 출신으로 정재근의 창법을 이어받았던 정응민(鄭應珉)은 현존하는 '강산제(江山制)' 보유자였던 고(故) 정권진(鄭權鎭)의 아버지로, 어려서는 백부인 정재근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19세 때는 당시 장흥군 회천면(현재는 보성군 회천면) 도강리로 이사했고, 장흥군 옥암면(현재는 보성군 웅치면)에서 은거하고 순수한 서편제의 맥인 '강산제'를 이으며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특히 정응민 밑에는 20-30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물려들어 소리공부를 하였다. 회천면이나 웅치면은 일제강점기때 행정개편이 있기 이전에는 장흥도호부에 속해 있었다.(1914년 4월 1일 장흥군 회령면·천포면·웅치면이 보성군으로 편입되었다.)

생활권이 장흥 도호부에 속해있었던 만큼 박유전-정재근-정응민으로 이어진 판소리는 장흥부가 활동무대가 되었고, 장흥의 서편제로 맥을 이어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뒷날 일제 강점기에 판소리 등 국악이 창극단에 합류되면서 '소리'로서 기능을 잃고, 여러 소리의 가풍들이 합쳐지면서 정통성도 퇴색되지만, 한편으로 고향을 지키며 가풍을 이어온 정응민 계열의 서편제만큼은 그 순수성을 지켜 나올 수 있었고, 오늘날에는 그 소리가 '강산제' 또는 '보성소리'로 자리매김 되며 소리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결국 정응민 계열의 서편제가 오늘날에는 '보성소리'로 그 전통을 이어나오긴 했지만, 당시 박유전-정재근-정응민 시대의 서편제는 바로 ‘장흥의 판소리’였으며, 그런 연유로 서편제의 뿌리는 장흥이고, 장흥이 바로 서편제 원류라 할 수 있음은 이러한 연유에서 기인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장흥 도호부에는 서편제 중흥 외에도 장흥읍 남산공원에 자리한 신청(神廳)이라는 국악연구소 겸 공연 무대가 있어, 호남의 국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이곳 신청에서는 신채효 선생의 족제(族弟)인 신평재-신흥재 형제를 비롯 주화봉 등이 중심이 되어 많은 후진들을 양성하였다. 특히 '남도창'이라는 독특한 창법을 개발, 주화종 등과 함께 장흥을 ‘소리와 가락의 고을’로 만드는데 주역이 되었던 신흥재는 전국명창대회 및 가야금 대회에서 특상을 받았을 만큼 중앙무대에서도 인정을 받았던 대가였다.

이처럼 판소리를 비롯 가야금, 춤, 국악, 양금 등 국악 전 부문에서 교육하는 신청이 있음으로 장흥지역에서는 많은 국악의 명인들이 배출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히 국악의 만능재사라 할 수 있는 최옥삼(崔玉三) 선생을 손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장흥읍 건산리 출신인 최옥삼 선생은 국악계에서는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가야금 산조로 인정받고 있는, 즉 '최옥삼류' 로 잘 알려진 가야금 산조의 한 유파를 창시한 명인이었다. 영암의 김창조에게 사사하며 20대 후반에 벌써 제자를 받아들일 만큼 실력을 갖추었던 최옥삼 선생은 가야금 외에도 대금, 단소, 거문고, 소아쟁, 장고와 북, 꽹가리 등 다루지 못한 악기가 없을 만큼 국악의 만능 재사였다.

특히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가야금 산조 유파인 '최옥삼류'를 탄생시키고 명창 김녹주를 비롯 함동정월(무형문화재 23호), 김명환(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고법 기능보유자) 등 많은 명인들을 문하에서 배출시켰다.

이처럼, 장흥군은 한국 국악의 거대한 뿌리의 하나인 서편제를 잉태하고 발전시켜왔을 뿐만 아니라 여타 전통국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해 왔던 소리와 가락의 본고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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