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근년 들어 충무공 이순신이 소설로 영화로 재조명되면서 이순신의 종사관이었던 반곡 정경달, 이순신이 투옥되었을 때 유일하게 “왕께서 이 사람을 죽이면 나라가 망합니다”며 충무공의 석방을 강력히 주장하였던 반곡에 대한 조명작업이 타지에서 활발하다.

지난 2012년 8월 23일, 보성문화원이 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소장 정근식)와 공동으로 보성문화원강당에서 ‘호남 지역사와 문화연구’ 라는 주제로 ‘학술토론회’ 를 열었는데, 제1 세션의 첫제 주제 발표가 조선대 김경숙교수(역사학)의 ‘임진왜란과 정경달 형제의 활동’이었다.

또 반곡 선생의 ‘난중일기’가 보성군의 지원으로 한글번역이 추진되고 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보성군으로부터 번역 발간비 2천만원을 지원받은 것인데, 이 번역본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그에 앞서 반곡 선생의 ‘난중일기’는 지난 3월에 ‘반곡난중일기(상)’라는 이름으로, 전남대학교 신해진 교수 번역으로 출판사 ‘보고사’에서 발간된 바 있으며 내년에는 하권이 발간될 것이라고 한다.)

경북 구미시 선산읍에는 유교문화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이 설립되고 있다. 전통문화 계승과 보급을 위해 유교에 걸맞게 순수 전통 한옥으로 된 20여동의 전시관, 기념관 등을 건립하고 있다고 한다. 부지만도 20만 평에 5백억이 투입되는 대규모 유교 문화공간이다. 이곳에 조선조 임진-병자란의 국란을 맞아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영남의 위인 20여 명의 위패를 모시는 일종의 서원도 조성 중인데, 이 서원 앞에 세운 큰 석비에 ‘선산부사 정경달을 주신으로 모신다‘는 안내 글이 있다.

보성군 회천면, 영광정씨 세거지인 봉강리에는 봉강 고택(전남도 지정문화재제261호. 2005.12.27. 지정)이 있다. 이 고택은 문화재 지정 이전에는 폐허였는데, 문화재로 지정받으면서 전남도와 보성군으로부터 10여억원의 지원으로 복원공사를 했다.

최근 들어 보성군이 보성군 일원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적복원 사업’을, 역사 왜곡의 문제(?)까지 일으킬 만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이 봉강 고택도 크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 필자가 봉강 고택을 방문했을 때도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기한으로 곳간채 보수를 비롯 수목 및 연못 정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충무공과 연관된 관광명소가 탄생되고 있는 듯싶었다.

이 봉강고택 앞 표지판에는 이 고택에 대해 “현 가옥 터 자리는 15대째 거주해오고 있는 반곡 정경달 후손의 집으로 조선중기에 입향하였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정경달 후손의 집은 아니다. 반곡은 6형제였는데, 첫째는 용산으로,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4형제는 당대 장흥부에 속했던 회천으로 분가를 나가(둘째인 반곡만 장동에 남았다), 지금의 봉강리에서 세거를 했던 반곡 아버지 형제들이었으로 반곡의 방계 후손이지 직계 후손은 아니다. 그런데도 ‘반곡 후손 집’으로 표기, 반곡의 직계후손인 듯 어정쩡히 반곡과 연결짓고 있는 것이다.

지금 보성은 충무공 유적 성역화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
여기서 보성군은 정경달의 조명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반곡의 학술세미나 개최며, 반곡의 ‘난중일기’ 번역사업에 적극 지원도 하고, ‘정경달 후손 집’(?)이라는 봉강 고택의 정비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등 일련의 일들이 아마 이러한 연유가 배경일 터이다.

또 봉강 고택도 장흥에서 의병장이었던 마위룡의 사위 정일손에 의해 초가로 건립되었다가 정일손의 9대손 정각수에 의해 1890년대에 기와로 재건립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이 고택의 시작도 임진란과 연관되어 있으며, 회천면 일대에 산재한 이순신의 유적들인 조양창 김안도의 집, 박실마을 양산원의 집, 열선루(보성군청), 회천 군영구미, 정경달의 별장 백사정 등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우려처럼 반곡 선생을 아예 보성군에 빼앗길 지도 모른다.
반곡 선생에 대해 장흥은 어떠한가. 반곡과 유일한 끈으로 남아있는 반계사. 며칠 후면, 국회의장이 된 영광정 씨 정세훈의원이 그 폐사지 같이 누추하기 짝이 없는 반계사를 방문한다고 한다.

반계사에 크지는 않지만 유물박물관을 만들고 여유 공한지도 마련해서 반계 동상이며, 석비며, 임란 때 장흥 의병장들의 동상도 세우고... 주변도 말끔히 정비하고, 낡은 시설물들은 중건도 해서, 대규모는 아니지만 비록 소규모일지라도 반계 성역화 사업을 추진할 만하다.

장흥에서, 장흥의 후인들이 임란의 영웅 반곡 선생을 조명하고 기리지 않는다면, 보성 같은 곳에서 반곡 조명 사업을 추진하고 장흥인들은 그걸 수수방관만 한다면, 우리 장흥 후인들 모두는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나 진배 없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후부터라도 반곡 선생의 재조명 사업이며 반계사 성역화 사업 등을 통해 선생의 위업과 함께 그 역사적 의미를 재정립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희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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