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장흥 가무악제전 치를 때마다 우리가 내세운 구호가 ‘서편제의 본향’, ‘국내 최고 수준의 권위 있는(대통령상) 국악 행사’였다. 헌데, 그 행사가 폐지되고 말았다. 뒷말로 들려 온 소리는 예산 때문이기도 했고, 행사 주관사인 (사)판소리 고법보존회의 정산 부정확성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어찌됐든, 이젠 가무악제전은 신안군으로 넘어가버려, 이 문제를 이제와 왈가왈부하는 것은 소모전 같은 일일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가 우리의 전통으로 알아온, 간신히 그것으로 유지돼 온 서편제의 맥을 우리 스스로가 내버렸다는 사실일 것이다.

헌데 최근에 열린 보성 소리축제에서 말들이 분분하다. 몇몇인사는 분통을 터드렸다고 한다. 우리 군의 누군가가 장흥의 가무악제전을 보성소리 발전을 위해 포기해버렸다는 식으로 공개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된 말 때문이었다. 잔칫날이어서 잔치 주인공인 된 그들에게 듣기 좋은 소리, 실언을 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다.

다만, 우리가 이젠, 서편제 본 고향으로서 그 전통의 맥을 완전히 폐기해버릴 것이냐의 문제를 공론화해 보자는 것이다. 가무악제전은 날려 보냈으므로 그런 유사한 축제 따위를 다시 추진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왔고 제기했던 신청 복원문제가 남아있다. 행사 위주인 가무악제전은 날려버렸지만, 차제에 신청복원문제는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청(神廳)은 무부(巫夫)들의 조직체로서 전통예술 전승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기관으로 지금으로는 국립국악원 같은 성격의 단체였다. 이 신청이 장흥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신청이 있었던 곳은 장흥 외에도 나주, 우수영,·진도,·완도에도 신청이 있었다. 지금은 장흥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도 신청이 복원된 예는 없었다.

특히 장흥 신청의 경우 서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장흥신청은 전통예술 교육과 전수 활동 역시 가장 활발했던 곳이었다. 이런 역할로 인해 당시 장흥이 서편제의 부흥지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장흥 신청 출신의 이름난 예술가로는 최옥삼과 김녹주 등이었다. 최옥삼은 ‘최옥삼류’라는 가야금 산조의 한 유파를 확립한 인물이었으며 김녹주는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에 능했던 예인이었다.
이처럼 당시 장흥은 남도국악의 맥을 가장 활발하게 꽃 피웠으며, 이런 결과 장흥을 중심으로 판소리 서편제도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장흥을 구심점으로 남도 국악의 전승을 담당했으며 서편제를 발흥시켰던 장흥신청을 복원해야 한다.
남들은 없는 것도 적당히 만들어서 자기 전통문화로 만들어낸다. 조그만 역사적 연유만 있어도 그것을 복원하고 재창출해서 문화상품으로 만들어낸다.

장흥신청은 역사적인 사실로 장흥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그 것을 오늘에 다시 살려내고 그 전승을 잇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인들인 우리의 당연한 사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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