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이 내놓을 수 있는 역사 문화적 자랑거리는 별로 없다. 그런데도 18년 유배생활을 하고 간 ‘다산 정약용’을 내세워 남도답사 1번지로 만들었다.

근 현대 이전 현縣 소속에 불과했던 강진과 비교하면 장흥은 7세기동안 호남의 서남부에서 유일한 부사고을이라는 당당하고 화려 찬란한 역사 문화적 전통을 가진 곳이다.

더구나 강진이 내세운 유배지 인물 다산이 있었다면, 장흥에는 존재 위백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장흥인들 중 존재선생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외지인들이야 접어두고, 장흥인들이 존재의 저서를 읽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되며, 존재의 고택을 찾는 이가, 존재가 강학하고 흔적이 머물러 있는 장천재를 찾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장흥이 이처럼 존재를 거의 역사 속의 과거 인물로 방치해 버렸지만, 외지에서는 달랐다.
존재를 호남의 4대 실학자로, 전대 인물 중 호남 3대 천재로 불리며 그를 연구하고 조명하여 왔다. 수많은 학자들이 존재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거나 연구 저서를 펴냈다.

2013년 7월에는 전주대학교 부설 한국고전학연구소에서 ‘국역 존재집’(6책)을 출간하고 그해 9월 30일에는 ‘삼벽에서 피어난 호남지성사의 꽃 존재 위백규’의 학술세미나를 가지기도 했다.
또 최근인데, 지난 3월에는 존재선생의 풍수사상을 연구한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문학박사 유기상 씨가 쓴 ‘조선후기 실학자의 풍수사상’이라는 책으로,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 민속학의 보고라 평가되는 이재 황윤석의 ‘이재난고’를 비롯하여 특히 역대 유학자가 쓴 풍수 논문의 압권이면서도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위백규의 ‘원풍수’와 탁월한 정책 제안이라고 평가한 ‘묘지제도개혁론’도 발굴, 소개한 바도 있다.

존재 - 그는 누구인가. 실인즉, 장흥의 전대 인물로 전국의 전문 학자들이 그 이름과 학문을 연구 조명한 인물은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 1727∼1798)가 거의 유일하다.
조선조 영·정조 시대, 사람과 땅과 가문이 궁벽한 3벽(三碧)의 땅 장흥에서 태어난 존재 선생은 조선 후기 순창출신의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1712~1781), 고창의 이재(이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과 함께 호남의 3대 실학자(호남의 3대 천재)로 공인받고 있는 장흥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는 자화(子華), 호는 존재(存齋). <존재집>·<정현신보>·<사서차의(四書箚義)>· <환영지(환瀛誌)>·<본초강목(本草綱目)>·<고금(古琴)>·<격물설(格物說)>·<원류(原類)>·<연어(然語)>·<속집대명기>등 경새학經世學, 경학經學, 지리, 역사 의학 등 거의 전 분야에서 90여 종에 달하는 방대하고 박학적이고 백과사전적인 저술을 남겼다.

차가운 굴뚝에 피는 연기는 붉은 느릅나무 삶는 것이네/촌사람의 생활은 정말 개탄스럽고/지금 나라의 곡식은 떨어졌건만/고기에 배부른 분네들은 아무 생각이 없네
冷窓疎煙焄赤楡/野人生活盡堪旴/如今國乏三年積/肉食諸君念也無
존재 선생의 <유근(楡根)>이라는 시다. 유근은 예전에 가난한 집에서 구황식물로 끓여먹던 느릅나무 뿌리를 말한다. 평생을 장흥 방촌마을에 살면서 백성들과 늘 가까이했던 존재는 당시 현실을 이처럼 모질게 비판하기도 했다.

존재는 70세에 이르러, 정조께 낡은 제도를 개혁하고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6가지 정책을 건의한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지어 올리기도 하였다. 이에 앞서 65세에 존재는 사회모순을 비판하고 개혁방안을 제시한 <정현신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33세에 초안을 잡아 65세에 완성하였으니 필생의 역작인 셈이다.

존재는<정현신보>에서 '우리나라 전답은 몹시 좁은데도 전택의 소유제한이 없어 세력 있는 부자는 더 많이 소유하니 부유할수록 사치하고 가난할수록 더욱 곤궁해지는 형세'라 비판하고 “부자에게는 토지소유를 제한하고 세금을 제대로 걷을 것이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잡다한 세금을 부과하지 말고 자력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자”고 주장하였다. 요즘의 어느 진보론자보다 더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던 실학자였다.

존재는 장흥을 두고 ‘삼벽(三僻)’의 땅이라 하였다. 반도 제일 남쪽에 있어 궁벽하다 했고, 윗대에 문과 급제자가 거의 나오지 않아 자신의 가문이 비천하다 했으며, 자신 또한 비루하다 했다. 땅과 가문과 자신(사람)이 궁벽하다 하여 삼벽이라 했다. 여기서 ‘벽(僻)’이란 말 그대로 사람(人)이 거처하기에(居) 고생스럽고 맵다(辛)라는 뜻이다.

그러나 시대는 삼벽이 아니라 사벽일지라도, 지구촌의 시대이고, 일일 생활권 시대이다. 삼벽일지라도 요는 경쟁력이요, 고유의 문화력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장흥의 존재를 얼마든지 강진의 다산 이상으로 빛나게 할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는 지금 장흥을 사는 우리 모두의 몫인요, 사명인 것이다. 늦었지만, 하여 더욱 ‘존재기념사업회’의 사업에 장흥군은 물론 장흥인 모두가 힘을 실어줘야 한다.
5월 15일, ‘제1회 존재의 날’ 에 군민 모두의 성원이 넘쳐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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