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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언어의 규범적 관계
박주현  |  regensdor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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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9  11: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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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중학생정도의 어린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화들짝 놀란 일이 있었다. 이름을 부르는 발음에 대한 대화중에 그들이 지칭한 어느 학생의 성씨 ‘이’를 ‘리’라고 하자는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그들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말이나 의견이 어떤 연유에서 나왔는지는 잠시 그들의 생각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추측컨데 북한에서 성씨 ‘이’를 ‘리’로 말하는 것을 따라 그 학생들이 말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성씨 발음이나 표기를 ‘리’로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음 ‘ㅇ’ 이 들어있는 대표적인 성씨가 ‘임’씨가 있고, ‘우’, ‘유’씨가 있다. 특히 ‘유’ 성씨는 그 음이 ‘류’ 또는 ‘유’로 표기와 발음을 하고 있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유(柳)씨’ 측은 표기가 같은 다른 유씨들과의 혼동 때문에 큰 불편을 느끼고 있다면서 그들의 성씨 발음과 표기를 두음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본래의 한자음대로 ‘류’로 표기하기로 한 것이라고 한다
‘류’ 성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나라 한글표기법에는 두음 법칙이 엄연히 있기 때문에 앞에 ‘ㄹ’ 글자는 ‘ㅇ’으로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모두 ‘유’ 씨로 발음해왔었다. 나는 ‘o’ 성씨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학생들이 북한의 방식대로 ‘이’를 ‘리’로 발음하는데 다른 특별한 의미나 의도를 갖고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원칙과 법칙아래서 즉 규정을 준수하는 범주안에서 변칙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라나는 어린학생들에게는 우리말의 규범과 규칙이 결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어서는 안된다. 한글 표기법 규정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다. 원칙과 규정은 지키지 않으면 커다란 혼란이 일어난다.

자연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분야를 익히고 깊은 통찰력을 숙지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규범, 즉 법을 지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서 자연히 알게 된다는 방임적인 사고나 근원적인 해결점에 대한 결핍은 새로운 무질서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원인제공자가 될 수 있다. 이 땅위에서 수 없이 일어나고 있는 잔혹하리 만치 자기주장을 원칙으로 고수하는 권력의 바탕에는 법질서에 대한 무감각에 기인한 무지라고 할 수 있다. 사회성이 결여된 비정상이 범람하는 인간관계는 서로의 이해관계의 주관적 가치 승인의 진흙탕 싸움일 뿐이다. 잘못이 발견되거나 인식을 깨우치면 시간이 지나서 잘잘못을 얘기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옳고 그름을 고백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 정당한 삶이 추구되는 것은 법치나 규범이상으로 중요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주의와는 다른 일종의 공동사회에서의 공동관계의 제약이다. 따라서 온전한 개인에 대한 사회상황을 관통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요소가 결론적으로는 사회공동체에서 이단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을 결국 다양한 형태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조화 가운데, 공존이 유지되는 변칙을 허용함으로써, 개인의 편의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세상일에 재미없다는 동의를 애써 외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개인의 자유와 이탈이 타인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오랜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들은 공공심리의 필요성을 훈련 받아왔다. 그런데 개인의 취향과 삶이 공동의 이해관계의 상위개념이 될 수 없다는 것에 쾌히 공감할 수 있을까. 해답은 있다. 공공의 이익은 타인에 대한 개인의 배려의식과 타인 혹은 공동심리를 감동시킬 수 있는 숙련을 통한 객관적 지혜의 공감대이다.

축구경기에서 치졸한 반칙에는 퇴장이 당연한 규칙이지만 성실한 의욕과 열정의 실수로 인한 반칙은 또 다른 축구경기의 면면를 체험할 수 있는 새로움을 제공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너그러움을 유발시키는 축구관람의 새로운 지평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여유를 창출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절대 규칙준수와 그에 대응하는 반칙 허용의 여유에 우리의 공감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여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린학생들의 한글에 대한 정확한 법칙과 이용에 대한 변형을 현실성 및 합리성 등을 가장하거나 평가로 쉽게 용인된다는 것이 체기를 느끼는 것 같은 마음에 우리글 한글이 갖는 개연성과 속성을 이야기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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