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설은 공연히 마음이 붕 뜨는 흥분감을 느끼게 하는 매력적인 날임에는 틀림없다. 귀성객으로 꽉 들어찬 역과 버스 터미날, 그들의 손에 쥐어진 선물들이 귀성객의 틈바구니에서 곤혹을 치루고 있다.

고향을 가는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와 있어도 티켓 검수가 안 되면 대합실에서 기차가 있는 플랫 홈으로 갈 수 없다 길게 늘어선 승객들을 막고 있는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통로의 철문이 열리고 기차표 점검이 끝나야 기차 내에 들어 갈 수 있다.

기차표를 미리 예약 못했거나 미리 표를 구입 못했으면 열차의 입석표를 구입해서 몇 시간을 서서 가야한다. 지금은 서울과 부산, 서울과 목포 등 장거리 열차가 3시간이 채 안 걸리지만, 당시에는 제일 빠른 무궁화 열차가 서울과 부산사이를 5시간 걸려 운행을 했다 그러나 일 년에 몇 번의 명절 때만 고향을 찾을 수밖에 없는 도시 근로자들의 얽매인 삶을 잠시나마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때가 명절 휴가였고 고향 가는 교통수단이 버스가 아니면 열차가 고작이었다.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한꺼번에 몰리는 귀성객들로 인해 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특히 서울역은 명절 귀성객으로 인해 심한 곤혹을 치르는 대표적인 역이다 이렇게 어렵고 열악한 귀성전쟁에도 불구하고 수천만이 넘는 귀성 인구이동이 명절 때 마다 일어난다. 도시 근로자 대다수가 지방에서 올라와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고향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명절 이외에는 없다. 그래서 더욱 명절이 기다려지고 명절을 맞는 기쁨 또한 더 없이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향으로 가는 긴 시간의 고통도 부모 형제 친지들과의 재회의 반가움과 기쁨 속에 멀리 사라질 뿐이다. 그동안의 부모 형제간의 쌓였던 그리움을 밤을 새워 이야기 한들 어찌 다 그 많은 서로의 애달픈 사연들을 소진할 수 있으랴

이렇게 60년대 설날을 잠시 타임머신을 타 보았다.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전국에 뻗쳐 있고 오지의 산골 마을도 대중교통이 연결되어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마음만 먹으면 도회지를 드나 들 수 있을 뿐 아니라 1가구 1대꼴의 자가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편리한 문명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의 세대들이 60년대의 사회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기지 않는 이야기로 받아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전국이 일일 생활권인 요즘, 설 명절에 6시간 이상 기차를 타야 서울의 삶을 벗어나 고향에 내려간다는 말이 호랑이 담배 피우는 옛날 이야기와 같은 수준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설’이라는 말이 ‘새해 첫날’을 가르키는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설을 포함해서 모든 명절은 오랜 풍습과 관습에 따라 사람들이 즐거움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시기와 계절을 택하여 정해진 다분히 그 의미가 깊이 있는 날이다. 명절과 국가적 경축행사나 기념일이 뜻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경축일이나 기념일은 인위적으로 정할 수 있는 날이지만, 명절은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과 계절에 따라 생성된 자연적 현상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큰 명절은 추석과 설날이 될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이 항상 쫓기듯 환경에 의해 모든 생각과 의지가 거리를 달리는 차량의 움직임과 그 속도를 쫓아 사는 것처럼 생활의 여유가 잃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로지 앞만 있고 무시와 방관으로 방해와 걸림돌의 대상이었던 나의 옆을 생각할 여유를 가져보는 설을 맞이하면 어떨까. 훈련되고 단련된 자신의 생존력에 조금의 쉼을 갖고 모든 낯설음을 끌어 안어 하루의 오후를 저무는 노을이 아닌 새 날 새 태양을 창조하는 희망의 화신으로 받아드려지는 혼자만의 생존력이 아닌 너와 나의 공동의 생존력에 함께 도전하는 지금까지의 관념을 바꾸는 달력=월력(月曆)의 첫날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설날의 옛 시절을 떠올리면서 비록 거칠고 불편했지만, 가공되지 않은 감정과 인정이 몸 속을 엄습하는 그리움을 껴안고 각박한 요즘의 디지털 사고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기운과 함께 아나로그 설을 겸허하고 조용하게 느껴 본다. 아마도 이것이 더욱 진실된 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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