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그냥 스쳐지나간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 해 주지만
숨겨진 가족의 애절함이 깊이 깊이 새겨졌다.

비가 오는 길이면 항상 트라우마에 시달리곤 한다 오래전의 아야기지만 춘천가는 길, 전날 많은 비가 내려 낙석이 도로에 떨여져 있었다. 낙석이 많이 내려온 길은 교통 통제가 되어 길은 차량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면서 목적지인 춘천땜이 있는 사촌형 댁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런데 텔레비전 뉴스에서 금방 지나온 길에서 작업하던 포크레인이 굴러 사고가 난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사고가 난 포크레인이나 사람은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지나 온 길에서 일어난 사고이기에 심경이 남달리 착찹했다. 다음 날 서울로 돌아오는 길도 바로 그 길을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자꾸만 사고가 난 포크레인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 사고가 난 길에 도달했을 때 잠시 차를 길가에 세우고 사고 자취는 흔적도 없었지만 이 자리인가 저기인가 생각하면서 그 포크레인이 작업을 했을 산 허리를 쳐다보았다. 벼량끝이 엄청나게 높았다. 어쩌면 저 높은 곳에서 작업을 했을까. 그리고 저 높은 곳은 포크레인이 어떻게 올라갔을까 생각하니 그 포크레인 기사의 모습을 전에 본적도 없고, 사건이 난 그 시간에 내가 없었으니 그의 얼굴을 알 리가 없다 하지만,  참 이상했다. 서울로 오는 길 내내 사고가 난 그 포크레인이 자꾸만 생각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일이 있는 후 나는 포크레인만 보이면 남일 같지 않게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후 10년이 지난 후 포크레인 기사 가족을 취재하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잊었던 10년 전의 일이 다시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물론 그 때 만큼 가슴깊이 애절한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포크레인으로 하는 작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대로 나의 깊은 가슴에 마른 자국이 그대로 묻어있다.

오랜만에 겨울 가뭄을 적시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대로변에서 빗겨 논 길 따라 길게 늘어선 저녁 길은 마음에 평화를 그려주었다. 저 멀리 4톤 트럭위에 포크레인이 점잖게 올라 타 있는 모습이 나를 반겨주었다. 만나기로 한 포크레인 기사인 이성인씨가 밝은 웃음을 지으며 빗길에 오느냐고 고생많았다는 인사로 나를 집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밖의 트럭위에 앉아있던 포크레인은 큰 아들이 운전하는 포크레인이라고 뒤를 따라 들어 온 큰 아들을 소개했다.

포크레인은 언제부터 운전을 했느냐는 질문에 아버지 이성인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인생 험한 꼴 다 지나다 보니 이제는 모든 힘든 것 화가 나는 일도 다 잊어버렸다는 앞 뒤 설명 없는 말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부엌에서 과일을 갖고 오던 그의 아내가 거침없이 누군가에 쏟아내는 듯한 높은 억양속에 보증을 섰다가 모든 재산을 다 잃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남편인 이 성인씨는 겨우 잊어가는 이야기를 다시 듣고 조금은 불편한 듯 자리를 고쳐 앉으며 쓴 웃음을 길게 뱉어내면서 하는 말이 한 푼 내가 쓰지고 않았는데 그 많은 돈을 다 갚다보니 재산을 다 날렸다고 다시 쓴 웃음을 짓는다. 지금도 그 일에 관여 되어 있느냐는 물음에 벌써 다 잊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는 말로 그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아직 학생 느낌이 얼굴에 짙게 눌린 막내인 상원이가 아버지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아직 막내티를 못 벗어난 모습이었다. 그도 포크레인을 운전한다고 하니 정말 더 애처러워 보이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 막내에 맞는 질문을 한다고 누가 더 포크레인 작업을 잘 하느냐는 질문을 해 놓고 보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나를 엄습했다.

아들 셋과 아버지가 모두 포크레인 기사인 이 가정에 와서 묻는 말이 누가 더 크레인을 잘 다루냐는 질문을 던진 내 자신이 딱하게 느껴졌다.
아버지 이상인씨가 이제 아들들에게 제 기술이 미치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이 유난히 연조가 깊이 묻어나는 느낌을 전해 주었다. 아들들이 어떻게 이 포크레인 기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냐는 물음에 아내가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하는 일을 유심히 보게 되고 직접 포크레인을 탈 수 없으니까 장난감을 구해서 아버지가 포크레인 작업하는 대로 애들도 똑 같이 장난감으로 놀았다는 아내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너무나 진한 삶의 이야기로 번역되었다.

철부지 애들이 아버지가 작업하는 포크크레인을 얼마나 유심히 봤으면 장난감까지 포크레인을 사서 놀았을까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와 똑 같은 포크레인 기사가 되어 엄연한 사회인이 되어 10여년 전 포크레인의 위험을 직면한 나의 기억에 또 다른 포크레인을 심어주고 있다니 정말 야릇한 심정이 가슴안에서 요동을 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아내는 그냥 스쳐지나간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 해 주지만 나에게는 그의 말 속에 숨겨진 가족의 애절함이 깊이 깊이 새겨졌다.
이제는 빚 보증으로 모든 재산을 잃은 고통도 재산을 모두 잃어 아들들에게 남들처럼 부유하게 해주지 못한 아쉬움도 성년이 된 아들들을 보면서 고생을 한 지난 날이 지금의 행복을 마련하기 위한 훈련이었다고 생각하니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아버지 이성인씨의 이야기가 그 가족의 대견함이 크게 표현되고 있었다. 모두가 옛 이야기가 된 이 가족의 지난날 어려운 모습들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평화스러움이 가득한 오늘의 이성인씨 가족 다섯 사람의 모습에서 잘 이겨낸 그들의 안내와 노력이 내 마음의 평안이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은 작업에 나간 아들이나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면 걱정이 되곤 한다는 아내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찡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찌 걱정만 되겠는가 무슨 사고가 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을 느끼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포크레인 사고도 비오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 중에 들려오는 사고에 관한 이야기가 나에게는 너무나 강하게 나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마당에 그들이 작업하는 각자의 포크레인을 보면서 사고없이 무사히 작업들을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하면서 차의 엑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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