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는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지치게 하여 자신의 참모습이 위태로울 때면 물러서서 그림자를 쉬게 하고 발자국을 멈추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자기 발자국이 싫어서 달아나려 했으나, 발을 움직일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지고, 아무리 뛰어도 그림자는 그의 몸을 떠나지 않자 아직 자신의 발걸음이 더디다고 여기고, 쉬지 않고 더욱 빨리 질주하다가 그만 숨이 차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그림자가 두렵다면 그늘에 들어가 있으면 그림자도 없어질 것인데 왜 힘들여 그림자를 벗어나려고 죽을 둥, 말 둥 뛰어다니다가. 결국에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는 이 이야기가 현대의 치열한 경쟁과 자신의 치부를 손으로 하늘을 가려려는 얕은 속임수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숨겨진 수치가 그대로 드러나지고 있다.

왕위에서 쫓겨나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한 광해군은 갖은 치욕과 참기힘든 수모를 당하면서도 당시 장수(長壽)로 여겨지는 67세까지 살았다. 세조에 의해 정치적 희생이 된 단종을 제외하면 조선시대의 왕의 수명이 40대 후반인 것을 보면 그렇게도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오래 산 광해군은 조선왕 중에 세 번째로 장수한 왕이로 기록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유배생활을 한 사람들은 수명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장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산 윤선도, 우암 송시열, 추사 김정희 등이 유배가 오히려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됐다는 것은
아마도 권력암투 속에서 생명이 위험을 느껴야 하는 관직생활을 벗어난 자유함과 모함과 긴장이 없는 자연 속에서 심신의 여유로움이 장수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다산과 추사의 경우 문학과 예술에 깊이 심취할 수 있어서 비록 유배의 몸이지만, 마음과 생각은 그 어떤 구속도 없는 평화를 만끽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유배라는 험난한 육체적 정신적 얽매임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가짐으로써 신선의 삶과 무한한 꿈속에서 자신의 삶을 승화시켰던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지금 어떤가. 너무나 바쁘고 너무나 경쟁적이고, 투쟁속에 살지 않는가. 유배를 가지 않아도 배려와 양보로 자신의 숨가쁜 생활의 그림자를 더 넓고 큰 평안의 그림자안에 쉬어가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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