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원에 적다(題滿樹院,在長興)
-장흥에 있다

사자산 기슭에 호계의 바로 곁에
숲에 들린 높은 다락 낮잠이 늘어 지네
서쪽 변방 그리운 이 소식이 끊겼으니
남국이 고향임을 도리어 잊었는가?
기봉 백광홍(1522-1556)은 조선 중기 호남의 시단을 이끌었던 이름 높은 시인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 가사인 “관서별곡關西別曲“의 저자이다.

조선왕조실록 선조22년 12월1일의 기사에는 송익필,이산해 등과 함께 그를 당대를 대표 하는 8문장의 한 사람으로 꼽았다. 그럼에도  백광홍은 사후에도 문학사에서 가려진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그의 아우 옥봉 백광훈(玉峯 白光勳)의 시명(詩名)이 워낙 쟁쟁했던데 비해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일실되어 일독의 기회조차 없어서였다.

시간이 흘러 관서별곡이 빛을 보게 되고 2004년 6월 문화관광부가 “이 달의 문화인물‘로 선정 하였고 ”기봉백광홍선생기념사업회(회장:윤수옥,백진수,백광준)가 창립 되어 기봉집을 번역 출판 하면서부터 그 문학적 업적이 조명  되고 있다.

호당(湖堂 ) 시절 왕명으로 영호남 문사들이  한자리에서 시예를 겨루었을때  그 도저한 학문과 시예를 인정 받아 장원에 뽑혀 시명을 드날렸다. 그 상으로 선시(選詩) 10책을 하사 받았고  지금까지 전래하는 그 서책은 선시보주 풍아익(選詩補註 風雅翼)으로 명명 되고  2010년 10월25일 대한민국 보물 제1664호로 지정 되었다.
오늘의 칠언절구는 백광홍이 1555년 평안도 평사로 재임 하는 시기에 고향인 장흥을 그리워 하며 쓴 작품으로 추정 된다.

만수원은 부산면 호계 마을 지나서 장동면 만수사 인근의 서정이 아닐까 추측 되어 진다.
평안도의 변방에서 남국의 장흥을 잊지 못하는 애틋함이 내재되어 있다.
(참고 인용 자료 ‘기봉집 2010년 기봉백광홍선생기념사업회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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