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인간이 죽는 날까지 마음속에 안고가는 십자가나 다름없다. 그 십자가에는 고향 산천의 서정이 어리고 고향 사람들의 온갖 선악과 허물을 함께 즐기고 덮어주는 미덕과 인정의 샘이 마르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삼십대 때 현대사회의 꽃망울이 하나씩 터져나오고 자유의 물살이 거세게 밀어닥치던 변화의 격동기였던 7080 시대를 내 삶 속에서 가장 경이롭고 치열하게 보냈다.
생각하면 세시봉의 통기타와 청바지 팝송 문화에 도취된 청춘들이 신열을 앓던 그 시대, 심지어 스승의 위엄과 웃어른들의 훈도마저 자율의 세력에 밀려 위축되어 가고 젊음이 그토록 방만한 문화를 토해내며 요동치는 사조에 우리사회는 엉거주춤 끌려가야만 했고 또 총칼이 번뜩이는 서슬퍼런 권력이동의 정치사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공포도 체험했다.

한편 내가 말단 행정공무원으로서 새마을운동과 민주화의 역사노트를 써가며 성장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훌륭하신 지역원로 선배여러분의 인품과 일솜씨를 눈여겨보며 은연중에 서툰 처세술까지 학습했던 기억이 난다.
헌데 오늘에 와서 추억 깊숙이 묻어두었던 이미 십수년 전에 작고하신 고향의 언론인 두 분이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아 나도 벌써 자라목만한 남은 미래에 대한 상심을 버리고 써버린 과거에 집착하다니, 내 나이 고희의 목전이라지만 나를 지켜줄 안경과 지팡이는 아직 빠르지 않는가?
이왕 내친 김에 그 두 분의 인물평 또한 흥미롭다. 7080시절 전남 서남부권 사회부 칼럼의 명암을 조율하던 KBS MBC 양대 저널리스트 투톱의 매혹적인 촌철살인은 독자들에게 호감을 사며 격조와 자각을 성숙케하는 메시지였다.

그 내면에는 속삭이듯 다감한 친화력에다 선비정신의 정중한 풍모까지 묻어나는 지방의 명사격인 KBS 윤호철 기자와 동생뻘 되는 또 한분은 물개처럼 매끄러운 용모에 현장르뽀의 템포 빠른 취재, 그리고 소리나지 않게 주위를 휘어잡는 카리스마적 소양의 베테랑 MBC 윤충한 기자가 버티고 있다. 어쩌면 그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어머니 품속같은 포근함과 아버지 팔뚝같은 뚝심으로 맛깔스럽게 차려진 고향이었다면, 비단 이삼십대 혈기 방정한 내 눈에 비춰진 모습이였을까?

어느 덧 나도 현역에서 은퇴한 후 쓸쓸히 지내고 있는 터에 최근에 와서는 또 고향의 버팀목으로서 쓴소리와 소통의 쿨맨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시던 믿음직스런 분들까지 자고나면 한분 두분 유명을 달리하고 보니 걱정스럽고 어깨에 힘이 빠진 느낌이다. 고향이 큰 일을 겪을때마다 그들이 떠나고 없는 고향마당은 소슬한 적막감 마저 들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혹여 고인들과 유족들에게 누가 될까 매우 송구스럽긴 하나 고인들의 명복을 추모하고 위안하는 충정에서 그 분들의 활달했던 면모들을 상기 해 보는 것도 아마 산 자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누구보다도 야망과 의술의 분기점에서 끝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채 중도하차한 불운의 도박사 문철성, 장흥판 여의도 칼럼 원로 객석의 가시돋친 스피커 한동준 박주동, 지략과 소신의 대쪽 지방관 군청의 묵은 왕대 3인방 김오철 방욱남 김재종, 정보3계의 유전자 본능을 구김살 없이 풀어낸 겸손한 포켓 완장의 독수리 3형제 민병승 안정선 이달호, 해장술과 의리의 결기 찬 토종 칠거리 텃새들 병기 영기, 피뢰침 조립과(전신주) 전류의 양극 배선의 출중한 3대 에디슨가 장흥전업 사영정 신광 전덕찬 무등 박희철,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고향을 사랑했던 흔적들이 남아있으며 누가 감히 고향을 깎아내리려 할 땐 맨 앞장서 핏대를 세우고 목소리를 높힌 애향의 파수꾼들이었다.

나와는 직장 상사로 모셨거나 학교 동문 또는 업무상 깊은 접촉으로 그 인연이 불씨가 되었는지 언제부터인가 잊을만 하면 꿈자리에 자주 나타나 얼큰한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또 기발한 조언을 듣고는 불끈 힘이 솟기도 한다. 막상 꿈이 깨고나면 허망할 수 밖에, 심지어 극적인 꿈의 여운을 놓치기 아까워 이불을 걷어 제치고 눈 비비며 메모하는 습관과 언젠가는 그 뒷날 고인의 자식을 앞세우고 소주병을 듣고 묘소를 찾아간 일도 있었다.
그렇듯 고향을 가꾸다 떠나신 님들의 둥글거나 모난 행적까지도 오롯이 우리들 기억속에 남아 그립기만 한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결국 안타깝게 무위로 끝나고 말았지만, 한때 전남도청을 장흥군에 유치하려로 각고의 노력을 쏟은 문철성 추진위원장의 고뇌와 집념, 그리고 장흥군의 걸음마 행정을 1급수 반열에 끌어올린 지방관들의 저력과 공적들, 또 지역 여론을 가감없이 조율하며 민심을 다독거렸던 언론인들의 재치있는 허브정신, 특히 진실된 삶을 추구하는 문학사상으로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시고 영면하신 고 미백 이청준 선생님의 고향을 배경으로 써낸 주옥같은 작품세계 등 너무도 리얼한 스토리들은 우릴 감동케 하며 추억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지금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이 자신의 영예와 안위에만 안주한다면 고향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라건대, 살신성인의 모습으로 참신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지역을 선도하고 후배를 양성한다면 반드시 지각 있는 후배들이 선인들의 정신을 계승할 것이고 먼 훗날 그 보람과 함께 선배들의 영혼도 위안 받을 것이다. 더불어 고향의 자존심 또한 상대의 추격을 따돌리며 여유롭게 상승할 것이다. 고향이 잘되면 비록 가진 것 없는 나이지만 뽐낼 수 있어 기쁘지 않은가.

이럴 때면 항시
해는 저서 어두운데 / 찾아 오는 사람 없어 / 밝은 달만 쳐다 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 내 동무 어디 가고 / 이 홀로 앉아서
이일 저일 생각하니 / 눈물만 흐른다.
언제 들어도 가슴 적시는 우리 가곡 현제명 작사 작곡
‘고향 생각’ 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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