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변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영하권의 새벽 도로의 낙엽을 치우며 환경미화 차의 뒷 난간을 잡고 매서운 추위와 싸우고 있는 그들 미화원들은 오직 환경과 위생만을 생각하는 사명감뿐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무슨 위선과 개인적인 탐욕이 있겠는가?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새벽추위와 싸우고 있는 시간에도 각종 새로운 뉴스들은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신년도 국가예산을 처리해야할 높으신 나리들은 국민들이 절실하고 간절하게 바라는 예산을 삭감하고 자기 지역구 예산만을 슬며시 끼워 넣는 깜깜이, 쪽지, 밀실, 카톡 예산에만 몰두하는 구태를 보이다 대국민 사과를 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제발 우리 장흥군에서 만큼은 범군적인 차원에서 발전적인 예산을 적재적소에 반영하는 군의 발전에 희망을 주길 바란다.
요즘 새로운 뉴스로 수도권에 한송이 장미가 뜨고 있다.
재선이나 당선시켜준 당이 먹는 샘물에 침을 뱉고 나가 새로운 주군을 위해 6:4니 7:3이니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 마저 공중분해 되자 어정정한 상태에서 거물정치인의 불출마 선언이 있자마자 때는 이때다 하고 자신의 고향(지연)운운하며 정체성마저 바꿔가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걸볼 때 측은지심과 실소를 넘어 불쌍함마저 든다.
과연 그가 아름답고 향기로운 한송이 장미를 피울지 아니면 배반의 장미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장흥군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너무 만연해 있다. 수십 년 동안 오직 호남의 한과 민주화를 위해 보라매공원, 광주, 순천, 목포로 자비로 한 정당만을 지키다 먼저가신 동지와 고희를 넘긴 우리 같은 촌로들에겐 정말 멋있고 보람있는 추억이었다고 조용히 음미해본다.
70년대 유명했던 코미디의 왔다리 갔다리 춤을 추며 언제 그랬냐는 듯 목에 깁스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위선을 즐기고 있는 그들은 우리를 너무도 슬프게 하고 있다.
현대 우리 정치사에서 변신의 귀재들의 종말을 보라. 과연 존경받으며 롱런하는 자가 존재하고 있는가를 오죽하면 여러 사람이 한강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구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란다. 한강의 더 큰 오염을 막기 위해서란다. 웃고 넘어갈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군의원 만큼은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의 보답차원에서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임기만큼은 소신을 가져주길 바란다.
정치인의 생명은 뚜렷한 소신과 철학이다. 자기 자신의 알량한 상식만으로 유권자를 회유, 설득, 잘난체 하지 말고 식견과 경험이 풍부한 유권자의 의사, 의견, 경험담을 존중하고 배워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필자는 “참 자아(自我)를 알라”고 강조한다. 보통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내가 보는 나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러기에 내가 가장 잘났고 내가 가장 잘하고 다른 사람은 나보다 다 못났고 못한다고 생각해 자만에 빠져 실수를 거듭한다. 필자는 그게 무지의 소치에서 나온 병적인 자존감이라 생각한다.
내가 보는 나와 보는 나를 알았을 때 비로소 참 자기(自己)를 안다고 본다.
참 자아를 알기에는 소정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참고로 Johari의 Window(조하리의 창문)를 통해서 참자기를 안다면 계층간의 위화감조성, 조직사회의 위계질서 문란 철새군락지의 사이비 교주와 광신도 관계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만을 위한 몸부림등 폐단과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자기 자신에게도 큰 마음의 지식과 양식이 될 것이다.
공직자는 하위직으로 갈수록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이라고 본다. 특히 공무원들은 상후하박(上厚下薄)에서 벗어나 하후상박(下厚上薄)으로의 전환과 공(功)은 부하에게 책임은 상사가 지는 풍토가 정착된다면 활력이 넘치는 사회인으로서 긍지와 보람을 느낌은 물론 우리 직장이 아닌 내 직장이라는 효과가 나타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정자립도 전국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장흥군의 발전을 위해서는 집행부를 감시 견제하며 군 예산을 심의 의결권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군의원들이 하루 속히 참 자기를 발견하여 낙후된 장흥발전을 위해 삼고초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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