貧吟(빈음)/난고 김병연
밥상에 없는 고기 채소가 판을 치고
부엌에 없는 나무 울타리 화를 입고
하나에 서로 바꾸어 밥을 먹고 옷입네.
盤中無肉權歸菜    廚中乏薪禍及籬
반중무육권귀채    주중핍신화급리
婦姑食時同器食    出門父子易衣行
부고식시동기식    출문부자역의행

선현들은 찢어진 가난 속에 살았다. 먹을 것이 없어 허덕였고, 입을 것이 없어 벌벌 떨면서 지냈다. 땔감과 불소시게가 없어 추위에 떨었고, 방충망이나 모기향이 없어 연기를 피우며 한 여름이면 극성을 부리는 모기와 파리를 쫒아내며 근근이 살았다. 신발이 없어 먼 길 나들이가 어려웠고, 쌈지가 비었기에 한 잔 술도 고개를 흔들었다. 부엌에는 땔나무 없으니 울타리가 화를 입고, 며느리와 시어미는 한 그릇에 밥을 먹고 있고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아버지와 아들이 출입할 땐 옷을 바꾸어 입네(貧吟)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1807~1863)으로 조선 후기의 방랑 시인이다.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라고도 부른다. 스스로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큰 죄인이라 생각하고 죽장竹杖을 짚은 채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녔기에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조부는 김익순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밥상에는 고기가 없으니 채소가 판을 치고 / 부엌에는 땔나무 없으니 울타리가 화를 입었다네 // 며느리와 시어미는 한 그릇에 밥을 먹고 있고 / 아버지와 아들이 출입할 땐 옷을 서로 바꾸어 입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가난함을 읊음]으로 번역된다. [同器食는 婦姑간이요, 易衣行은 父子관계다]라는 대목이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의 생각]이란 변함 없었나보다. 돈이 있는 곳에는, 돈이 보이는 곳에는, 돈 많은 사람에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돈이 없는 곳에는 그저 한가할 뿐이다. 난고가 살았던 시대는 물론 조선시대는 다 그랬던 모양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대였으니.
시인이 어느 집에 들려 보았던 상황이지만, 어쩌면 시인 자신의 생활이 그랬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밥상에 고기가 없으니 채소가 판을 치고, 부엌에 땔나무 없으니 울타리가 화를 입네 라는 보고 들은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요즈음 다이어트를 하느니, 채식을 한다는 것은 현대병적인 용어일지도 모른다.
인식론적인 전구에 비해 현실론적인 사정을 잘 관찰했던 화자의 시선은 고부간과 부자간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며느리와 시어미는 한 그릇에 밥을 먹고, 아버지와 아들이 출입할 땐 옷을 바꾸어 입는다고 했다. 있을 법한 일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을 가감없이 표현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의 현실이 그랬으니까.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고기 없는 채소 밥상 울타리가 화를 입고, 고부간에 한 그릇 밥에 부자간에 옷 바꾸고’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盤中: 소반 가운데에. 곧 밥상. 無肉: 고기반찬이 없다. 權歸菜: 판을 치다. 권세는 채소에게 돌아가다. 廚中: 부엌. 乏薪: 땔나무가 없다. 禍及籬: 화근은 울타리에 미친다. // 婦姑: 시어머니와 며느리. 食時: 먹을 때. 同器食: 같은 그릇으로 먹다. 出門: 출입하다. 父子: 부자. 易衣行: 옷을 바꾸어 입다.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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