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명저중 명저'라 칭송하며, 이중환(1690~1750)의 <택리(擇里)지,1751>의 완역 정본을 표방한 책자가 또 등장했다. 그러나 역시 '꿈보다 해몽'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번 역자(안대회, 2018)가 과대평가로 시종한 것과 달리 <택리지>의 일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저자의 심한 편견을 지적한 견해(최창조, 비판적 고전 읽기)도 이미 있었다. 논평 의견까지 달며 완역정본을 표방한다면 그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전달해야 했을 일. 그간 <이중환, 택리지>는 그 일부 내용만 편의적으로 널리 악용되어 왔다. 인문지리적 차원에서 대중 인기가 많았기보다는(한자 문맹인 일반대중이 어찌 한자본 필사본을 널리 읽을 수 있으리오) 풍수적 복지길지(福地吉地) 관심에 여러 필사본이 남게 되었을 것.

살펴본다. 이중환은 山水편에서 "전라도와 평안도는 가보지 않았다"고 자인하고서도, 八道편과 人心편에서 전라도를 왜 그리 혹평했을까?
(반면에 "전라도와 평안도는 가보지 않았다"고 했으면서도 人心편에서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기로 첫째이고, 다음으로 경상도는 풍속이 진실하다"고 했고, "전라도는 오직 교험을 숭상하고 그릇된 일에 쉽게 움직인다."고 했다. 專崇狡險 易動以非) 이중환의 말대로 전라도와 평안도를 직접 체험하지 않았다면 <택리지>를 '8도8역지'가 아닌, '6도지'로 불러야 합당할 것인데, 기실 ‘6도지’라 하더라도 그 현장성이 의심스런 대목들이 꽤 많다. 이른바 정본완역이라면 그런 사정을 지적했어야 했다.

사대부(士大夫) 지위론에 함몰된, 저자 이중환은 그 서론과 결론에서 오직 士大夫 타령이었다. 서론에서 "천하에 가장 아름답고 좋은 것이 士大夫 호칭인데, --士大夫 행실과 의례로 가문을 보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士大夫 가거(可居)처>를 지었다"고 말했다. 결론의 첫 문장은 "우리나라에 어찌 士大夫가 있겠는가?"이고, 마지막 문장은 "그리하여 <士大夫 가거처>를 지었다"로 되어있다. 요컨대 <이중환 택리지>는 <士大夫 택리지>에 불과하다. 士大夫가 주관하는 곳이라야 그 人心이 바로 설 수 있다면서, 경상도에 찬사를 전라도에 혹평을 거듭 했다. 八道편에서 "전라도는 풍속이 노래 계집 사치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경박 경교(傾巧)하며, 학문을 중시하지 않는다. 경상도는 그 지리가 가장 아름답다(地理最佳)"고 했다. 士大夫가 많은 경상도는 아름답고 士大夫가 적은 전라도는 그 반대라는 것. 이중환은 그런 결정론적 택리론을 펼치면서 자신의 士大夫 인생을 망가뜨린 사색당쟁 원인과 폐해를 설명하는 데에 <택리지>의 상당 지면을 할애하였다. 그러면서 시세(時勢)에 안 닿는 형편의 士大夫라면, 최소한의 경제적 富를 얻을 수 있는 방편으로서 생리(生利, 財利)를 위하여 '여주 백애촌' 같은 곳에 배(船)를 부리면서 얻는 商利으로 관혼상제 비용으로 조달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던 정도이다.

- 팔도(八道)론
이른바 '경제'에도 나름 관심을 갖던, 저자 이중환이 八道 지역론에서 '운송과 무역(물산과 유통), 船商,조운, 뱃길'을 거론하긴 했지만, 곁가지 수준에 불과하다. 기껏 '생선, 소금, 오곡, 목화' 와 몇 특산물을 단편적으로 언급했을 뿐, 나아가 '운송수단, 市場현황, 상인, 부상대고(富商大賈),숙박시설, 생산시설, 광업, 창고업, 거주이전실태, 공물, 화페제도' 등 물류현황과 조건을 상관적이고 총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또 '지리, 복거'를 말했다지만, '물산, 용수(用水), 관개, 풍흉, 교량, 교통, 고개, 홍수, 지진 자연재해' 등 구체적 복거조건에 대한 별 언급도 없다. 몰락한 정객 이중환은 오직 士大夫 관점에서 '士大夫 人心風水'라는 편향적 택리를 논했을 뿐이다. 오히려 그가 채집한 약40개 지역설화와 정치야사(野史)쪽에 가치 있을지도 모르겠다.

- 복거(卜居)론 4요소
1)地理ㆍ풍수.ㆍ6요소ㆍ-(水口ㆍ野勢ㆍ山形ㆍ土色ㆍ祖山ㆍ祖水)
2)生利....財利
3)人心....士大夫거처 기준론ㆍ사색당화의 원인과 폐해
4)山水....유람 구경을 할 만하고, 별장을 지을 만한 곳  <차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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