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불교란 무엇인가? 여기서 필자는 때때로 관련서적을 읽고 큰 스님의 법문을 동냥하며 수박 겉핥기로 섭취한 지식의 범위 내에서 불교의 문전을 한번 어슬렁거려 보려고 한다.

4대성인의 공통점은 바른 마음을 갖고 바른 말을 하고 바르게 살아간 것이라고 말한 점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공통가르침이다. 불교는 여기에 생사문제와 우주운행의 원리까지를 설명한다.  불교의 연기법(緣起法)은 진리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론, 진화론, 복잡계이론, 정보이론 등 현대 과학이론이 연기에 바탕을 둔 게 아닌가 한다.

양자역학과 불교의 중도이론은 놀랄 만큼 닮았다. 붓다가 말한 중도는 상대성원리, 조화의 원리, 불이의 원리로 나눌 수 있고 이 셋이 양자역학의 물질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양립하기 어렵다고 본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원자가 동시에 지닌다거나 소립자와 같은 미시세계 상태가 중첩되 있는 모습은 존재와 비존재의 구분을 떠난다는 중도원리와 일치한다.

아인슈타인은 진리를 찾는 것은 이성적 사유가 아니라 종교적 감정이라고 했다. 이성적 사유로 도달할 수 있는 진리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진리는 궁극적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괴델 불안전성 정리를 보면 어떤 공리 체계든 그 체계만으로 진리를 판별할 수 없는 명제가 꼭 하나 있어 그 명제의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직관인데 바로 종교적 감정이라는 것이다.

불교는 바른 앎이 있어야 행복이 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계(戒)가 없으면 바른 앎에 이를 수 없다고 한다. 계는 윤리 도덕적으로 올바른 생활을 말하는데 이게 없으면 마음이 안정이 안된다.  맑은 마음이 없으면 지헤가 싹트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면 진리를 왜곡시킨다. 이성적 사유로 도달할 수 없는 진리에 이를려면 마음이 맑아야 하고 그래야 직관적 지혜를 기를 수 있다고 했다.

불교의 진리는 심오하여 그 진수를 이해하고 묘파하기가 쉽지는 않다.  필자는 간혹 지적 호기심이 발동할 때면 법화경, 화엄경, 금강경, 법구경 등 불교경전을 들고 씨름해 보지만 원전은 물론 해설서까지도 너무 어려워 머리에 쥐가 날것만 같아 도중에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온 경전을 섭렵하고 진리에 도통하여 천리 밖 일도 뻔히 꿰뚫어 안다는 옛 고승대덕들은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머리 깎고 입산하여 승가대학을 가고 면벽불와(面壁不臥)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천일동안 동안거(冬安居) 명상에 들어가야만 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위에서 설한대로 윤리 도덕적으로 올바른 생활을 하는 즉 계를 취하고 맑은 마음을 가지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旨人心), 교외별전(敎外別傳) 견성성불(見性成佛)은 공히 불교교리 연마나 모든 계행을 닦지 아니하고 직접 마음을 지도하고 체험에 의해서 성불을 이룬다는 가르침이 아닌가.

불교 원시 경전인「숫다 니파타(sutta, nifata)」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읽어보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떤가 강력한 메시지가 전해오고 머리를 화들짝 흔들어 깨우지 아니한가.  이것도 일종의 깨달음일 것이다.

절에는 보고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  가히 종합학습장이다.

불교미술의 정화(精華)가 거기에 꽃을 피웠고 찬란한 건축미학과 조각공예의 섬세함이 경탄을 부른다.

보물과 국보로 지정된 탑들은 여기저기에서 정교함과 조형미를 자랑하며 오백년, 천년세월 숱한 중생들이 앞에 와 쏟아낸 비원(悲願)을 품고 서있다. 법당 기둥마다 고드름처럼 내 걸린 주련(柱聯)을 눈여겨 보라.  혹은 정서체로 혹은 예서, 초서체로 휘돌린 서기자맥(書氣字脈)의 약동은 혼을 쑥 빼놓는다. 비록 글자를 다는 모르더라도 영혼에 호소하는 고담준론(高談峻論), 금과옥조(金科玉條)의 뜻 한마디라도 붙들려고 아는 몇 자를 위 아래로 굴리며 몸부림쳐보라.

절마다 계신 지주스님, 방장스님, 회주스님을 만나보라.
큰 산, 큰 바위같은 그 분들이 곧 부처님이시다. 참선 수행과 진리탐구, 중생구원에 평생을 몸 바치고 영원한 열반(涅槃)에 든 고승대덕(高僧大德)들의 사리탑 앞에 서보라.

성찰과 반성이 몸을 사로잡는다. 한 시대를 걸쳐 한자 한자 피눈물로 새긴 장삼이사(張三李四) 불자들의 원력(願力)의 산물 팔만대장경을 보라. 외경과 경탄이 절로 난다. 그러니 절에 가면 마치 못올데나 온 것 마냥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슬금슬금 내뺄 궁리만 할게 아니라 어떻게든 무언가 깨달음 하나 얻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제와 다른 삶을 살기위해 한번 용기를 내보는 것은 어떤가. 이것이 다른 차원의 우주를 열어 젖히는 일이고 이것만이 윤회(輪回)의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견성(見性)의 길이라고 본다.

김두봉 동창은 장로신분이지만 어느 절에 가서도 누구보다 많이 걷고 듣고 보며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신통방통이다.
대웅전 앞에서는 대웅전과 대웅보전의 차이점을 말하고 부처를 모시지 않는 절의 연유도 설명한다.
인도여행 시에도 불교 힌두교 국가의 종교 실상을 예의관찰한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자전(字典)에도 해박하다. 절에는 한자투성이다. 절에 가면 자꾸 눈에 띠고 밟히는 글자가 있어도, 신경몰수 무심히 지나치게 된다. 그럴 일이 아니다. 뭐가 어려운가.  손에 만물박사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 않는가. 폼으로 갖고 있나? 눌러보면 다 나온다. 가령 이렇다.

“勒(륵)자의 뜻은 억지로 강행한다는 의미란다.
김두봉 선생에게서 배웠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했던가

흔히 기독교 광신도들은 타 종교를 사탄으로 죄악시하면서 절 안까지 침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십자가를 아무데나 그리는가 하면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까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고래고래 외치며 승객들이 모두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사람사이를 마구 휘젓고 다니는 꼴불견 선교자들도 많은데 김두봉 동창은 다른데 가 있다.  조용히 행동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어찌 보면 그가 성인 반열에 오른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디 추기경이나 로마 교황 그리고 빌리 그레엄 목사님이 한번이라도 타 종교를 비난한 적이 있던가. 이번에 돈 많이 냈다고 그를 추어올린 건 절대 아니다.  사실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11:30~12:20 광주로 이동하여 금남로에서 광주동창과 작별한 후 백양사로 이동했다.

12:20~14:40 백양사에 도착했다.  절 입구 전주식당에서 때늦은 오찬을 했다.  만약 점심이 부실하거나 대접사가 소홀하면 김효전 목이 달아날 줄 알라고 운주사에서부터 웃으며 공갈, 협박을 일삼던 김두봉 이하 일행은 늦은 점심을 포식한 후로는 일제히 입을 닫았다, 불평불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목을 보존하기 위해 김효전은 일부러 점심시간을 끌어 배를 잔뜩 곯게 한 다음 허겁지겁 먹게 한건데 그 전략이 주효했다. 효과 100%였다.

14:40~16:00 백양사를 관광했다. 대웅전에 이르는 도로 길의 가로수 단풍이 곱게 물들어 눈이 부셨다. 백양사 뒷산의 바위병풍은 가히 일품이며 신비롭기 그지없다.
이때에 버스로 돌아올 시간이 지나도 일행중 두 사람이 전화도 안받고 행방불명됐다. 뒤늦게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한 사람은 품바 각설이 타령에 홀려 배추잎사귀를 흔들며 혼절 상태에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예리한 독수리 눈 촉수 안으로 빨려 들어온 때깔 곱고 반반한 한 여자 관광객에게 필이 꽂혀 단숨에 돌진하여 그녀의 턱밑에 바짝 붙어 알랑방귀를 뀌고 오두방정을 떨어도 아무 효험이 없자 작심 끝에 장르를 바꿔 이제는 후렴구를 반복하는 변주로 수컷 혹등고래의 구애 세레나데를 목을 빼 불러 바치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주변을 살펴보니 저만치서 험상궂은 한 사내 녀석이 눈을 앵글씨고 이쪽을 잔뜩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이자 혼비백산 “튀자” 신호와 동시에 둘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 가까스로 버스로 돌아와 기사회생했다. 오 마이 갓!

16:00~20:00 서울로 출발했다, 여산 어귀쯤에 이르렀을 때 서쪽하늘에 눈부신 장관을 펼치고 있는 낙조와 눈이 맞딱 뜨렸다. 순간 우리는 저 장엄한 노을빛 자연의 신비 앞에 그만 숨이 컥 막혀버렸다. 진종일 불같이 이글거리던 태양이 열기를 식히고 홍시같은 빠알간 선홍색 반짝이 옷으로 갈아입고 유난히 커 보인 물렁물렁한 몸체를 서산마루에 걸치고 있었다. 이 황홀한 광경을 혹여 놓칠세라 서쪽 차창에 코를 박고 숨까지 멈춘 채 넋을 놓고 바로보고 있는 늙은이들 눈앞에서 태양은 자꾸만 쑥쑥 미끄러지더니 순식간에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에이, 넘어가버렸다.” 탄성을 뱉어내며 속절없이 시선을 원위치로 회수한 늙은이들은 아쉬움에 한참동안 말문을 잊어버렸다.
얼마 후 차는 여산휴게소에 당도했다. 우리는 쪼르르 화장실로 달려갔다. 볼일을 마치고 차로 돌아오는데 김두봉 동창은 호두과자 제일 큰 꾸러미를 인원수대로 사서 들쳐 매고 들어왔다.  모두의 얼굴에 환한 꽃이 피었다.

20:00~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 도착했다.
짐을 챙긴 후 해산했다.  2박3일의 여행을 끝내고도 아직도 여운이 남아 기분은 달콤하지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기진맥진한 노인네들은 올망졸망한 선물꾸러미를 양손에 들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지하철입구에 이르기가 바쁘게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2018년 10월 마지막 날 초겨울 이른 저녁 그때 서울 도심위로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2018.11.1.(목) 09:00 이른 아침 임상진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네 장흥으로 절대 먼저 전화 걸지 마소이..... 잉”
‘왜 고마웠다고 내가 전화 걸면 안된가?’
“절대 걸지 말랑께”
참 별일이시 아침부터 전화도 못걸게 단속을 다하고 야단이야 의아해 하며 고개를 박고 멍을 때리고 있는데 한참 후에 장흥 관련자로부터 안부전화가 속속 걸려왔다.
잘 가셨느냐고.  수고하셨다고. 말씀을 낮추라고. 서로 간 덕담을 나눈 다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들이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한 것은 다 임상진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공작했던 결과였음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임상진은 전화를 못 걸게 한 것이 아니라 먼저 걸지 말라는 거였다. 그 먼저에 방점을 찍고 명토를 박았던 것을 내가 미처 놓친 것이다. 친구의 체면과 위상을 높여주려고 아침부터 임상진의 머릿속에서는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끝)

■김효전 프로필
▲용산면 금곡리 출생
▲전)영광김씨 대종회장
▲현)서남해안 기업도시개발 한ㆍ중합작 법인‘득위락’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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