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1일은 일제강점기의 그 암울하고 견고한  시대를 종언하는  민족 자긍의 구체적이고 대대적인 저항의 만세 운동이 시작된 날이다. 한반도의 자유와 동양의 평화 민족 자결을 선언한 3,1만세 운동은 어떤 평가로도 부족한 비폭력 독립의 운동으로 오래 기억 되어야할 것이다. 그래서 중앙 정부와 광역 기초단체는 물론이려니와  의식 있는 많은  단체들이  100년전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대대적으로 기획하고 개최하고 있다. 민족의 기개를 확인한 100년전의 3,1운동 정신은 우리 역사에서 갑오농민혁명의 계승이었으며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항쟁, 6월의 항쟁으로 그리고 드디어는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치열하고 찬란한 민중 민주의 저항 운동이었다.

이 가슴 먹먹한 우리 역사의 혁명적 자긍심을 100년이라는 시공의 행간에서 확인 하고 기념 하는 것은 어떤 형식으로 표현 되어도 아쉬울 것이다.
전국의 도처에서 들려오는 기념 행사의 소식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다짐이며 약속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행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희망과 우려, 최근 일본의 정치적 성향이 군국주의로 회귀 하는듯한  망언과 정책이 더더욱 100년전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사실을 절실하게 회고 하게 되고, 하여 민족적 대동의 계기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장흥에서의 3,1운동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기념 행사는 소식이 없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고 문림의향의 향맥이 엄연한 장흥군민의 입장에서는 의아하고 부끄러워 진다.
장흥의 보훈 및 유공자 단체의 분발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3월1일의 기념일에도 우리 장흥에서는 기념식도 기념행사도  행사도 없이 지나갔다.
그 이후에도 혹은 특정된 어느 날 기념의 행사를 준비 하고 있다는 공지도 없다.
군정의 소소한 보도 자료는 매일 제보되고 있으면서도 3,1절 100주년 관련 보도 자료는 없다. 어느 기관에서 아니면 어느 단체에서 어떤 형식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 하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공지나 정보가 없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본다면 장흥군 당국이 주도해야할 행사이다.
3,1운동 100주년 이 위대한 기념일을 장흥군이 주도하는 것이 맞다면 최소한 1월부터는 관련 자료를 조사,발굴하고 확인 하여 역사적 이념적 이론을 정립 하고 관내의 관련 인사들과 행사 전문가들과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기본적 절차일 것이다.

그래서 군민 다수가 열렬한 역사의식으로 참여 하는 기억될만한 기념식과 행사가 치루어 져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국난의 시기마다 장흥의 의인들이 떨치고 일어나 살신성인의 투쟁과 의병을 주도 했던 사건과 인물들이 오늘의 장흥을 “문림의향‘의 향맥으로 선양되게 한 주역들이었다. 100년전 3월에도 3월15일을 기점으로 장흥의 만세 운동을 주도 했던  선열들의 족적은 엄연함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군민 누구도 장흥의 100주년 3,1운동 기념식과  행사가 어던 모양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모르는 이 상황이 참담할 뿐이다.

100년전 장흥의 민중들이 일제에 저항하고 투쟁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자랑스러운 기록들이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지난 3월1일   장흥의 의식 있는 인사들이 모여 (가)장흥항일운동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 모임이 개최 되었다는 소식이 반갑기 그지없다.
민간 차원의 이 모임이 조명되고 원활한 사업 수행을 위해서는 장흥군 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해 보인다

 본지에서도  2월15일자 12면에  “장흥의 항일투쟁과 3,1운동”을 조명한 기획기사를 전재 하였다. 언론과 민간차원의 진지하고 역사성있는 접근이 오히려 돋보이는 3월을 우리 장흥군에서는 어떤 그림과 색깔로 형상화할 것인지를 지켜 보는  군민의 관심을 의식 했으면 한다. 3월은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시간은 그다지 여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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