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 생긴 고질적인 병폐 중에 하나가 바로 흑백논리에 의한 사고방식에 잡혀 있다. 흑백논리라는 개념은 사고방식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단위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해당된다. 특히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종 산업 전반에 흑백논리는 한국현대정치사에서 그들만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이데올로기 일지도 모른다. 보수가 있으면 진보란 단어가 들어가야 하고 독재가 있으면 민주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하듯이 그들이 선택한 흑백논리의 차원은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들은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이지만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화 된 사회주의 국가다’라는 표현이 맞다.
이유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복합적인 구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중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실용적 중용논리이다. 우리는 흔히 중용에 대한 뜻을 중간을 취하는 애매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모자라지 않고 부족하지 않다’라는 뜻에 의미가 깊다.

이처럼 ‘모자라지도 않고 부족하지 않은’ 즉 과유불급에 논리로 많은 부분을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논리에 흑백논리로 극단을 달리는 일은 없다. 떵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주장하며 펼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不管白猫黑猫, 能  到老鼠就是好猫)와 같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실리에 중점을 둔 것처럼 말이다. 나도 “흑묘백묘”를 외치면서 장흥의 선거전에 뛰어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애매모호할 정도로 업무를 추진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별차이가 없다’라는 뜻에 차부뚜어(差不多)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나쁘면 나쁘다. 좋으면 좋다”라고 말하지 “별차이가 없다”라고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향후에 생길 털끝만큼의 작은 가능성을 위해 조금이라도 치우친 명확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흑백논리의 한국인과 중용논리의 중국인과 상업을 한다면 과연 누가 유리할까? 물론 중국인이다. 왜냐하면 흑백논리 자체는 미래에 어떠한 가능성에 대해 폐쇄(CLOSED)했다면 중용의 논리는 반대로 어떠한 가능성조차도 열어둔(OPEN)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오쩌뚱이 문화혁명 당시 연류되었던 떵샤오핑을 제거하지 않고 남겨 놓은 것은 아무리 숙적이라 해도 나중을 위해서 가능성을 남겨 두었다. 중국 역사에서 이와 같은 내용은 자주 나오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전개일지 모른다.

작금의 장흥군 상황 나쁘지만 희망이 있다

정종순 군수의 공직선거법 위반 기소의견의 검찰송치, 공무원의 업무 태만, 도시재생뉴딜사업 타락, ‘지역 특화 스포츠 관광 산업 육성’ 사업도 장흥군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도전했지만 공모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세 번째 도전을 기대하게 되었다.

민선7기 가장 역점사업으로 추진되는 ‘체육인 교육 센터’도 7개 지자체와 치열한 경쟁 속에 총력을 다 하고 있으니 성공하기 바란다.
이 밖에도 ‘생물의학산업벨트’, ‘토종 한약자원 생산시범 단지조성’, ‘농업테마경관지구사업’, ‘어촌뉴딜사업’ 재도전하는 ‘도시재생뉴딜사업’, ‘종합 스포츠타운 조성사업’ 등 크고 작은 사업을 준비하는 장흥군에 모두가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설령 타락하는 아픔이 있더라도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흑백의 양극논리보다는 중용논리의 덕으로 새로운 내일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누구보다도 군수에게는 중용논리의 지역개발정책을 주문하고 싶다. 지역발전은 중심 성장 동력산업이 필수적이다.

최근 미래 성장산업으로 떠오르는 수소연료전지발전소로 장흥군 발전의 동력을 연구 검토하는 정종순 군수에게 군민들은 찬ㆍ반의 극단적 논리보다는 문제가 있으면 해결점도 있듯이 긍정적 사고로 접근하여 민주적인 절차를 거처 장흥발전의 새로운 길을 열도록 힘을 모아 주어야 하고 처음부터 장흥군민을 위한 계획으로 잘 준비한다면 군민들의 응원속에 성과도 기대 이상이 될 것 이라고 생각된다.

장흥 해당산단에 조 단위의 수소연료전기발전소 유치를 위해서는 의욕만 앞선 채 치밀한 사업 구상을 제시하지 못한 전략 부재와 담당 공무원의 업무량 과다로 미흡한 성과도 염려된다. 하여 민ㆍ관이 참여하는 별도의 추진단을 구성하여 추진한다면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작품 중에 ‘고양이’란 제목의 장편 우화시(寓話詩)가 있다.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온갖 못된 짓을 해서 주인의 근심이 가득한데, 한술 더 떠서 이 고양이가 쥐들과 야합하여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눈앞의 이해에 얽매이면 안 된다. 범상한 사람들은 일생을 산다고 하나 결국 육신 하나 돌보는 데 그치고 만다. 공직을 맡은 분들이 고양이와 쥐의 관계와 같은 오십보백보 같은 부끄러운 짓을 멈출 줄 모르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답답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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