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찬란하고 유구한 5천년의 한반도 역사에 대해서 무한한 자부심을 표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결코 찬란할 수 없었던 영욕의 과정을 이해하고 수용 하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섬나라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민족적인 분노와 부끄러움을 피해갈 수 없는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흔히 멀고도 가까운 나라 항일이나 반일보다는 극일의 자세로 대응 해야 한다는 자성의 교훈을 시대마다 감당해야 하는 나라가 일본이었다.

그 자성의 역사가 수 백년을 되풀이해 오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는 일제의 잔재가 널려 있고 문명과 문화의 수준이 최고 수준의 이 시대에서도 군국주의 일본의 망령이 되살아 오르는 정치적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근래 아베 정권이 보여주는 일탈적인 한,일관계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100주년의 해를 맞이 하는 우리 민족으로서는 차마 용납 하기 어려운 망언이며 망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보수 우익 인사들과 일부 정치인들이 보여 주는 언행은 차마 거론하기 민망할 수준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해방 이후 일제 식민 청산을 갈망하여 출범한 “반민특위‘ 활동이 좌절된 사실은 우리 역사에서 두고두고 아쉬운 실책이었다. 전후 독일이 철저한 자기 성찰과 사과를 앞세워 나치즘의 망령을 청산한 이후 독일의 부흥과 민족적 자긍심을 확립한 사례에 비추어 볼때 우리의 식민 잔재 청산은 절호의 기회를 놓친 통탄할 일이었다.

100년전 4월11일 임시정부의 수립은 우리 역사의 장엄한 시작이었다.
1919년 4월10일 민족 대표들은 한 자리에 회동 하여 임시의정원을 구성 하였다.
제1회 임시의정원으로 기록되는 회의에서 국호, 관제 ,국무원선출, 헌법 제정등이 논의 되었다. 가장 먼저 결의된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였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나타나게 되었고 관제는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의 역사를 탄생 시켰다. 국민이 주권을 갖는 새로운 역사를 연 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참으로 혁명적인 역사의 시작이었다.

국민주권의 민주공화제를 선언한  100년이 지난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속의 경제대국으로 디지털 산업과 문화 산업의 강국으로 그 위상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유일의 분단국으로 정치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이 상반된 역사의 현장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극복해야 할 화두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도 민족의 자긍심과 국격을 단도리 하여 이 엄중한 시대를 이겨 내는 것이야 말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즈음한 민족적 숙제일 것이다.

용산면 출신의 민중,인권의 작가 송기숙 소설가는 1978년 현대문학 6월호에 중편소설“도깨비 잔치”를 발표 하였다.(2018년 2월. 송기숙 중단편집 재수록)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3대에 걸친 두 가족의 은원을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성호는 할아버지에게서 악질 친일 경찰 “카네야마”경부가 학생운동을 하던 미혼의 큰아버지를 잡아  고문을 하고 그 휴유증으로 죽어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며 성장 하였다. 해방이 되자  응징 받아야 할 카네야마 경부의 아들은 그 지역 교육계의 거물로 출세를 한다. 교직에 몸담고 있던 성호의 아버지는 집안의 원수인 카네야마 경부의 아들에게 의탁하는 처신을 보인다.

해방된 나라에서 친일 후손이 기득권을 누리고 항일 지사의 후손은 그 기득권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손자인 성호는 어찌어찌 맺어진 인연으로 친일  원수의 손녀와 사랑 하는 관계가 된다. 이러한 사정을 용납 할 수없는 할아버지의 노여움과 현실은 해방 이후 식민 잔재를 극복하지 못한  이 민족의 비극적인 일면일 것이다.

부끄럽게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인 지금에도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는 크고 작은 “도깨비 잔치”들이 횡행 하고 있다.
이제는 이 치졸하고 반민족적인 도깨비 잔치들을 청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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