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18일 전남도가 의욕적으로 추진 하던 ‘남도역사 의병공원 조성사업’이 보류 되었다.
이 사업은 임진왜란부터 3.1운동까지의 남도 지역  의병의 역사적 사실들을 발굴 정리하여 구국 충혼을 기리고 민족의 결기를 깨우쳐 지역의 자긍심 있는 역사공원으로의 주제를 지향한 테마공원 조성 사업이었다. 공모로 진행되는 남도의병 역사공원을 유치 하기위하여 지자체간의 경쟁과 열기는 후끈하게 달아올랐으며 장흥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십여개 이상의 시,군이 공모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과열 양상을 보이던 공모가 무기한 보류된 것이다. 전남도는 그 이유를 국비확보가 확정되지 않아 예산 규모를 특정하기 어렵고 운영계획과 사업실효성이 충실하지 않아서 그러한 부분을 보완하여 입지선정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실상 남도역사 의병공원의 조성사업은 그 시기도 사업 진행도 기약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늦게나마 유치 경쟁에 뛰어 들었던 장흥군도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었다.
사실 장흥군이 공모 유치에 나선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군민의 역량을 모아서 공유하고 연대하는 충분한 기간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장흥군의 의병 역사와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 체계적으로 집대성 하여 전시, 교육, 체험의 콘텐츠로 제시 하기에는 시간도 과정도 역부족이었다. 실제로 장흥군의 역사 속에 회자되고 있는 선인들의 국난을 극복한 의로운 행적과 자료는 타 시군에 비해 풍성하고 자랑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민초들과 의인들이 역사의 행간에서 나라가 위태로울때마다 떨치고 일어나 저항한 장흥의 역사는 그야말로 ‘의향’이라고 지칭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동안 우리는 그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진지하고 일관성 있는 접근을 하지 못했다. 학문적 연구와 사실의 발굴은  부족했고 군민과의 공유도 미흡 했다.
우리 장흥군이 남도역사 의병공원 조성사업의  공모에 뛰어 들었던 것은 그 성사 여부와는 별개로 심기일전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다.
전남도가 이사업의 미흡한 부분들을 보완하여 공모를 재개하는 것과는 상관 없이 장흥군이 추진해야 할 목표가 생긴 것이다.

차제에 문화원과 민간 연구 단체들 식견있는 인사들이 참여하는 ‘의향장흥의 의병역사 발굴 연구회(가칭)”를 결성하여 혹은 단편적으로 기술 발표되어 오거나 구전된 내용들, 가전문서로 남아 있는 자료들을 발굴하는 일이다. 그 자료들을 취합하여 검증하여 사실 확인을 거친 다음에 학문적인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학술 행사를 개최하여 대두된 인물과 사안을 군민과 공유하고  토론하면 더 많은 사실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기왕에 장흥군에서 간행된 향토자료집에는 국난의 시기에 나라와 백성을 위해 떨치고 일어선 의인들의 행적이 상당량 기록 되어 전해 오고 있다. 그  내용의 분량이 비록 1-2행에 불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근거로 하여 심도있는 연구의 과정을 거치면 장흥의 ‘의병사’를 재조명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75년에 간행된 ‘장흥군 향토지’ 1982년에 간행된 ‘고줄고을 장흥’ 1986년의 ‘마을 유래지’ 1990년의 ‘장흥군지’ 1998년의 ‘장흥지방의 국난극복사’를 비롯하여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손을 모아 간행한 1990년의 ‘우리의 보금자리 지와몰’ 1995년의 ‘명덕(덕도) 향토사’ 등은 참고가 될만한 자료이다. 더불어 개인과 가정에 소장되고 있는 가전 자료들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남도의병 역사공원의 유치에 성공한다면 큰 성과이고 안팎으로 축하할 일이거니와 이 시점에서 ‘의향 장흥’의 향맥을 확인 정리하는 계기로 승화 하는 것이야말로 당면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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