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다. 노인들만 사는 장흥의 골목골목에 귀성한 자녀들의 자동차가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을 모양은 생각만으로 흐믓하고 아름답다. 오고 가는 선물과 이야기들이 못내 궁금하다. 그 행간에 서리서리 내재되어 있을 사랑과 우애와 갚음의 말마디가 우리 모두에게 전해 지는 것 같다.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요동을 치더라도 이 추석 명절에 가족을 기다리고 만나서 교류 하는 그림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2019년 하반기에 들어 전남도의 인구가 매일 60여명씩 줄어 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 장흥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4만의 벽이 무너졌다.
사람 사는 고을에 사람이 줄어 들고 있다는 현실은 공허함과 외로움이 되고 삶의 의욕이 반감되는  이 시대의 고민이며 과제인 것이다. 마을마다 빈 집이 늘어가고 밤이 되면 거리와 골목은 적막스러운 공간이 되고 있다. 1960~70년대의 장흥에 14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회상적 이야기는 실감이 나지 않은 아득한 과거일 뿐이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군민의 노력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행정은 인구 늘리기 정책을 펴면서 사람이 살만한 환경 조성을 위한 다양한 시책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전반적인 상황은 농어촌의 마을들이 회생하는 희망적인 요인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매년 찾아오는 설날과 추석 양대 명절은 모처럼 사람의 냄새가 교류하고 향유하는 날이다. 특히 추석 명절은 들녘의 곡식들이 익어가는 모양들이 서정적인 풍경이 되어 고향과 가족을 조우하는 분위기를 색칠해 주고 있어서 기다려 지는 명절이다.
무엇보다 고적한 마을마다 귀성한 자녀들이 안고 오는 소식과 선물들이 풍성하고 희망적인 화제를 만들어 내기에 더없이 기다려온 날인 것이다.
새로 태어난 손주를 안아보는 그 즐거움을 어찌 표현할 것인가. 아들 혹은 며느리가 직장에서 승진한 소식을 듣는 노부모의 희열과 자랑스러움, 자녀들이 어렵사리 마련한 사업장이 날로 번창하고 있다는 이야기, 장성한 손주가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손주의 듬직한 등허리를 토닥거려 주면서 노인들은 생각 한다. 명절이 끝나고 노인당이나 회관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헛기침 앞세워 자랑할 자녀들의 이야기가 쌓이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다.

추석 명절은 이렇게 삶의 원동력으로 몇 날을 향기롭게 한다.
지치고 병들고 외롭고 쇠약해 지고 늙어가는 삶의 행간에 가족들의 존재가 엄연 하다는 사실. 그 가족들이 명절을 잊지 않고 고향과 부모 형제를 찾아와서 도리를 다하는 풍속(?)이 있는한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일수도 있다.
고향을 찾아오는 향인들은 명절에라도 조우하는 고향의 발전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장흥인들은 변화된 산천과 마을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을 것이다.   그 기다림과 소망이 그저 막연한 것이 아니고 때로는 구체적인 제안들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곳에서 어떤 모양으로 살든지 고향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못내 공유하고 싶은  화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간은 공동화 되어가는 고향 장흥의 여백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이 명절의 행간에서 유독 강하게 작용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그저 귀성의 길목으로 끝나지 않고 장흥의 현안들을 공유하는 풍조를 명절에 도입하는 방안은 없을까.

그래서 추석 명절이 신시대의 명절로 거듭나는 그림을 그려 본다.
세상은 곡절이 많고 계절의 절후는 변덕스럽지만 우리들의 추석 명절은 의연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날마다 추석만 같아라” 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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