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양면 비동(飛東) 출신, ‘지오재 선시계(宣始啓,1742~1826)’가 詩 “고산사(高山寺)”를 남겼다. 그 高山寺는 과연 장흥 어디에 있었을까?
<정묘지,1747>는 ‘장서방 편’에 “고산사(高山寺), 在조암(槽岩,돌구시)上”이라 기록했다. 장서방(古장택현)은 현 장평면이다. 그런데 현 장평면 용강리에 高山寺가 있다지만, 그 부근엔 槽岩이 없다. <정묘지>는 ‘장동방 편’에 “고적(古跡) 관청사(觀淸寺),석조(石槽,돌구시)”를 기록하였다. 그렇다면 ‘장서방 옛 고산사’, ‘장동방 옛 관청사’, ‘現 용강리 고산사’와 ‘槽岩, 石槽’는 어떤 관계일까?  더구나 石橋 槽岩이 있는, 장동면 북교리에는 이제 ‘용화사(龍華寺)’가 있어 무척 혼돈스럽다. <정묘지(장동방)>에는 정작 龍華寺는 없고, ‘불자사(佛子寺)’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장평면 용강리 高山寺’ 얕은 계곡에는 ‘석조여래佛’이, 현재의 ‘장동면 북교리 龍華寺’ 평지 야산에는 ‘약사여래佛’이 있다.
現 高山寺와 現 龍華寺는 직선 2km로 근접하고, 高山 지대는 결코 아니다. 현재의 高山寺와  龍華寺 명칭은 60년대 이후에 부여된 것이다.
(高山寺는 1966년에 최기현씨가 ‘야산에 방치된 석불’을 수습하여 법당을 짓고 高山寺로 명명한 것. 옛 장택 高氏가 세웠다는 전설이 있었다한다)
그렇다면 ‘선시계(宣始啓)’의 詩에 나온 ‘高山寺’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詩 “高山寺”는 “去來潮水 窓前鏡(거래조수 창전경, 드나드는 조수를 창앞 거울로 삼는다). 眼力遠通 逢海上(안력원통 봉해상, 눈길은 봉해逢海 바다에 멀리 통한다.)”이라 했다. 그러나 현 장평 용강리 高山寺든, 현 장동 북교리 龍華寺든 어떤 潮水가 출입하거나, 멀리 바라볼 선산(仙山) 바다가 없다. 그럼에도 '선시계'의 詩, “高山寺”를 ‘장평 용강리 고산寺’로 보는 일부 의견이 있긴 하다.
살펴본다. ‘宣始啓’는 안양면 비동에서 태어나 사자산록 고당에서 살았으며, 詩, “日林寺”도 남겼다. 존재 위백규(1727~1798) 선생의 제자이다.
그 안양쪽 사자산록에 높게 위치한 절이라면, 조수가 드나드는 남쪽 바다를 멀리 접할 수 있지 아니할까?
마침 ‘선시계’는 <비천(榧川) 12영>에서 ‘고산모경(高山暮磬)’을, <고당(高堂)8경>에서 ‘고산효종(高山曉鐘)’을 노래했다. 그렇다면 예컨대, 안양 고당 마을 뒷쪽 사자산록 정도에 위치한다면 안양 득량 바다를 바라볼 수 있지 아니할까? ‘선시계’가 살던 그 무렵에는 그 高山寺 옛터(舊基)에 작은 암자(小庵)가 새로 들어섰던 모양이다. “高山有寺 昔何時, 新結小庵 因舊基(고산유사 석하시, 신결소암 인구기)”라 했다. 옛 장흥 사자산에는 크게 보아 북쪽으로 ‘원효암, 의상암, 금강사, 은적암, 정수암, 이승암’이, 남쪽으로 ‘정흥사, 어병사, 월계사, 취령암, 봉림사’등이 즐비했었다.
비록 <정묘지,1747>에는 ‘안양 高山寺’가 기록되지 않지만, ‘선시계(1742~1826)’의 <榧川 12영>과 <高堂8경>에 분명 ‘高山寺’가 등장한다.
마침 안양에는 ‘고산짓재’가 있는데, 동촌-고당에서 웅치면 대산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라고 한다. 궁금해진다.
평생 포의(布衣) ‘선시계’를 달래주었던, 그 ‘高山寺’는 어떤 부침(浮沈) 곡절을 겪었을까? 속인(俗人)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주던, 그 高山寺의 ‘高山暮磬(모경) 경쇠 소리’와 ‘高山曉鐘(효종) 새벽 종소리’는 언제 왜 떠나버린 것일까?

- 고산모경(高山暮磬), 선시계, 고산寺 저녁 경쇠소리
聞磬山寺尋  경쇠 소리 끌려 山寺 찾네
雲鎖復封林  구름 사슬 거듭 깊은 숲속
隔世眞境是  격세 진경이 곧 이곳 이네
登臨無俗心  올라 보니 俗心 사라지네

  - 고산사(高山寺), 선시계
高山有寺昔何時  高山에 사찰 옛적 언제 있었나.
新結小庵因舊基  그 절터에 작은 암자 들어섰네
白里江山尺地起  백리 강산 尺地에 자리 잡고서
萬層岩石九天支  만층 암석 九天을 떠받든다네
去來潮水窓前鏡  드나든 潮水는 창밖 거울이고
開闔烟霞卓底帷 연하 문 여니 높고 낮은 장막
眼力遠通蓬海上  안목은 멀리 蓬海(봉해) 통하고
風光歷歷杖頭垂  風光은 杖頭에 걸려 역력하네.

  <주>- “고산모경(高山暮磬)” “고산사(高山寺)”를 합쳐보면, ‘高山寺’가 평지 야산(野山)이 아닌, 깊은 산속에 위치한 山寺로서, 바다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장평 용강리’가 아닌, ‘안양 사자산록’에 있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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