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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숙 길을 만들자신동규/출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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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8  10: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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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고향에서 개최하는 제9회 <문학특구포럼> 행사에 참여한 필자는 포럼 행사를 마치고 다음 날, 현지 답사 차 우리 장흥이 낳은 유명한 소설가 송기숙 선생님의 생가마을을 방문하였다. 행정구역상 명칭이 장흥군 용산면 포곡 마을이라 하였다, 용산면 면소재지에서는 매우 멀고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23번 국도에서도 4km가 넘어 되는 억불산 뒤 쪽 깊은 골짜기 마을이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헤쳐 한참을 거슬러 가자 비로소 사방이 산으로 빙 둘러싸인 산길 끝자락에 마을이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오지였다, 육이오 때 빨치산 소굴이었던 내 고향 유치면 못잖은 후미진 곳이었다. 문헌을 살피니 포곡(浦谷)마을의 유래가 있었다. 원래는 雌(암컷자) 抱(안을포) 雉(꿩치) 이렇게 쓰이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포곡(浦谷)으로 바뀌었다 한다. 마을의 형국이 암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선생님의 생가는 이미 남의 소유가 되어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져 있었고 마을 동구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에 선생님의 탄생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이 쓸쓸이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을 리 만무한 남의 집을 마냥 기웃거릴 수도 없는 일이어서 일행은 버스정류장이 있는 당상나무 아래에 모여 앉아 선생님의 처지를 안타까워만 하고 있었다. 먹이를 찾는 야생동물처럼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선생님의 족적을 살피고 있던 필자의 눈에 억불산 쪽으로 빠꿈이 뚫린 산길이 포착되었다. 농업용 트럭터 정도는 너끈히 드나들 수 있는 산길 입구에 평화마을 3.5km 라고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선생님의 고향 마을에서 장흥읍내로 통하는 지름길이 있는데 그 재 이름이 <자포치재> 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터여서 이 산길이 바로 자포치재로 가는 길이거니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1950년 대에 장흥읍에 위치한 장흥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집안 형편이 여의치 못해 읍내에 하숙이나 자취를 할 형편이 못되므로 억불산 기슭으로 뚫린 이 산길(자포치)을 걸어서 등하교를 하였다 한다. 당시 23번 국도에 장흥에서 대덕을 오가는 버스가 수시로 다녔지만 그 거리가 산길의 거리와 맞먹었으므로 그리 높지 않는 자포지재 산길을 택하였다는 것이다. 이곳 포곡 마을에서 평화 마을 까지가 3.5km이고 평화 마을에서 학교까지가 또 그 정도 거리였으므로 합 7km가 되는 셈이었다.

 우리 문단 소설가의 산실이라는 장흥에는 송기숙, 한승원, 이청준 세 분의 거목, 즉 3두마차가 존재한다. 그 가운데서 한승원 선생님은 집필실인 ‘해산토굴’을 비롯하여  ‘달긷는 집’이 있고 득량만 해안의 ‘해변산책로’에 30여 기의 시비가 후학들과 광객을 맞는다. 대덕 출신인 이청준 선생 역시 고향 생가가 복원되고 대표작 ‘축제’의 촬영 현장으로 ‘남포 마을’이 있으며 ‘서편제“ ‘천년학’의 무대인 ‘선학동’ 역시 선생의 문학적 유적이 되었다. 헌데, 유독 송기숙 선생님만은 이렇다 할 기념비적인 표적들이 전무하는 터여서 모두들 애석해들 하였다. 더구나 선생님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 작품 활동은 물론 사회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형편이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번에 우리 후학들이 선생님의 고향 마을을 찾은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자포치재(峙)의 시발점을 발견한 필자의 뇌리에 번쩍 섬광이 스쳐갔다. 요즘 관광지 곳곳에 만들어진 <올레길>이 그것이었다, 이 ‘자포치재’를 잘 다듬어 올레길을 만들면 읍내 ‘평화 마을’과 억불산 기슭과 이 마을 일대는 문학기행차 거쳐 가는 순례객을 비롯하여 자연을 벗 삼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떼 지어 찾아와 선생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며 오갈 것이다. 덧붙일 사항이 또 있다. 이 길이 완성되면 단순한 올레길로 하지 말고 명칭을 <송기숙올레길>로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자 일행 모두 이구동성으로 굿 아이디어라며 손뼉 쳐주었다. 그러면서 올레길을 빼고 <송기숙동학길>이라고 명명하면 금상첨화일 거라는 동의도 있었다.

 선생님의 문학과 동학사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봐야한다. 녹두장군을 비롯한 여타 선생님의 작품 속에는 ‘인내천’ 이라는 동학의 기본 이념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심혈을 기우려 완성한 ‘녹두장군’ 12권은 우리 문단의 보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작품 집필 이후 선생님은 건강을 잃으셨다. 100세의 노령임에도 정정한 자세로 강연에 임하시는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과 선생님의 건강상태를 비교해 보게 된다. 어쩜, ’혼불‘의 최명희 작가처럼 자신을 학대하면서 오직 우리 문단에 찬란한 금자탑을 쌓으시느라 기력과 정력을 소진한 게 원인이 아닐까?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다.

 이 글의 내용을 읽고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 안다. 이렇다 할 기념비적인 표적이 하나 없다고 항상 울적해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그립다. 이 사업의 득실을 따져 보자면 일석삼조의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사료된다. 고향을 예향으로 격상 시키시고 후학 양성에 정열을 쏟으신 선생님의 노고를 위무하는 차원에서, 병마와 싸우시는 선생님의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우리 고장에 탄생할 또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각광 받을 것으로 확신하며 필자는 장흥 고을 군수님과 관계자 여러분들께 이 사업의 추진을 적극 제안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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