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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읍 선전관 백공 성흠 기선비(宣傳官 白公 成欽 記善碑)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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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8  10: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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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선전관백공성흠기선비(宣傳官 白公 成欽 記善碑)는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 관산읍사무소 청사 민원실 앞에 위치한다.

   
 

선전관 백공의 휘(諱)는 성흠이요, 자(字)는 子敬이며 系出은 충숙공 장(莊)의 후(后)요,1841년(辛丑) 판관 기호(基虎)와 配 숙부인 광산김씨 사이에 3남중, 장자로 당동마을에서 태어났다. 公은 천석군(千石君) 이었다. 1894년(甲午) 연이은 극심한 흉년으로 고읍면 내 가가호호에서는 세금을 납부하지 못할 형편에 있었다. 그러던 중, 公께서 그해 고읍면민이 부담해야 할 모든 호세(戶稅) 백미 250가마를 납부하였다.<중략>

   
   
 

지난 해에 野論이 그분의 흠모의 정을 돌에 새겨 기리 기념코자 하였으나, 公이 소식을 듣고 즉시 중지를 시켜 면민(面民)의 뜻을 公이 돌아가신지 어언 7년여이 되어서야 유구유심(愈久愈深)히 흠모하여 사론(士論)이 제발(齊發)하여 너도나도 성금을 모아 그분의 모든 기록을 돌에 새겨 올리노라.

   
 

冠山 魏啓泮 謹撰 歲 甲子 三月 古邑面中 竪

비문의 찬(撰)은 지금의 관산읍 옥당리 옥산마을 태생 춘헌 위계반(1848~1939) 선생이 하였다. 1924년 3월 고읍면에서 비석을 세웠(竪)다.

고읍면은 1914년(甲寅) 3월 10일 남송리, 성산리, 부평리, 농안리, 용전리, 옥당리, 죽교리, 방촌리, 송촌리, 지정리, 신동리, 삼산리, 외동리 등 13개로 통합하였다. 이후 1932년(壬申) 하발리, 죽청리, 고마리를 고읍면에 편입시키고 명칭을 관산면으로 바꾸었다. 1980년(庚申) 12월 1일 관산읍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른다.

■ 판관(判官) 백기호(白基虎 1823~1891) :  字는 의습(儀習), 號는 관포(冠圃)이다. 모재(慕齋) 백복치(白復治 1786~1853)와 낭주최씨의 4자 중, 차자로 지금의 안양면 기산리에서 태어나 관산읍 당동마을에 입촌하였다. 1846년(丙午, 헌종13)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863년(癸亥 고종1) 4월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판관(判官 종5품, 목사의 참모)과 1878년(戊寅 고종16) 6월 함경북도(咸鏡北道) 병마우후(兵馬虞侯 종3품, 병마절도사의 참모) 등을 지냈다. 흔히 관산지역에서는 “백 판관(白 判官)”으로 널리 호칭되었다.

자(子)는 성흠(1841~1918), 계흠(戒欽 1861~1954), 희흠(希欽 1891~1951)이다.

손(孫)은 영승(永昇 1867~1942), 영준(永晙 1870~ 1947), 영오(永五 1893~?), 영방(永邦 1913~?), 영만(永萬 1921~?), 영회(永晦 1923~?), 영진(永辰 1929~?)으로 영승과 영준은 성흠의 出이고, 영오는 계흠의 出이며, 영방, 영만, 영회, 영진은 희흠의 出이다.

증손(曾孫) 수인(守寅 1885~1959)과 우인(1895~?)은 영승의 出이다. 기타의 증손과 이하의 손은 생략한다.

당동마을 초입에 위치했던 백판관 고택은 18칸 규모로 현손 백형렬(1925~?)까지 거주하였다.
1955년 증손 백수인이 고택내  4칸의 윗사랑채를 위황량에게 매매하였다. 매입한 윗사랑채 건물은 해체되어 위황량이 분가하면서 방촌리 504-1번지(방촌길67) 안채로 옮겨지어 10년을 거주하였다. 6칸 안채, 5칸 사랑채, 곳간채 등 남은 고택 건물은 1957년 위태량(1902~1978)에게 매매되어 아들 위정현(1937년생)이 거주하였다. 이후 장흥임씨 대종회에서 1990년(庚午) 발상지 성역화사업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고택을 포함한 주변 6,789평 부지를 매입한 후 1998년 정안사(定安祠)를 창건하였다. 이때 백판관 고택이 헐리면서 안채, 사랑채 일부 자재가 정안사 내 소강당 장천당(長川堂)과 대강당 경모재(景慕齋) 건축에 반영되어 지어졌다.

1908년 건축한 모재공 백복치(白復治)의 5칸 묘각 영모재(永慕齋)는 마을 뒤 옥당리 105-5번지(당동길 28-48)에 위치한다. 후손들은 매년 음력 10월 첫째주 일요일 가을 시제를 모시고 있어 지난날 성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자문 : 송곡(松谷) 위경량(1937년생, 당동마을 거주)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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