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자본이나 배경도 없었지만 경험과 아이디어로 승부하겠다는 마음으로 창업하여 성장해온 20여년. 작은 시골마을에서 땅과 바다를 무대로 농사와 김 양식을 하던 소년이 누구나 살고 싶은 꿈의 도시(Smart City)를 만드는 토지 셰프가 되기까지 상상을 현실로 만든 문주현 MDM그룹 회장의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황량한 토지에 상상력을 더해 가치를 창조하는 부동산 디벨로퍼는 도시를 변화시키는 마법사다. 땅을 요리한다고 해서 ‘토지 셰프’라고도 불린다. 디벨로퍼인 문주현 MDM그룹 회장은 부동산과 금융 업계선 ‘살아있는 전설, 디벨로퍼계의 거장’으로 불린다. 상상력은 문주현 회장이 선택한 삶을 지탱해온 가장 큰 힘이다. 그에게 '상상'은 '인생의 판'을 바꿀 수 있는 도전과 용기를 표현하는 다른 말이다. 그에게서 듣는 ‘상상’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는 사람들 각자가 갖고 있는 자신만의 프레임을 깨야 큰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 걸어온 길
문주현 MDM그룹 회장은 전남 장흥군 관산읍의 ‘어은(漁隱)’이라는 작은 농어촌 마을에서 9남매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수석을 다툴 정도로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가업을 이어받기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진학을 포기한 채 농사와 김, 미역양식 일에 매진해야 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농사일과 바다와 싸움을 하던 중에 자연재해로 한 해 농사가 다 망가진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자연과 싸우지 말고 인생의 판을 바꿔보자고 결심했다. 새로운 길을 찾던 중에 국비장학생을 뽑아 기능사 자격증을 주고 취업까지 보장해준다는 TV 광고를 보고, 1976년에 광주직업훈련원(현 한국폴리텍대 광주캠퍼스)에 도전해 합격했다.
그는 자연이 아닌 쇳독과 싸우며 노력한 끝에 기능올림픽 출전 대상자로 뽑힐 정도로 최고의 숙련된 기술자가 되었다. 그러나 고졸자들에게는 졸업 후 실습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중졸자들은 공장 취업 외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진로가 없었다. 그 길은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문주현 회장은 현실의 벽을 넘을 유일한 대안은 대학진학이라 판단해 검정고시를 준비해 공부와의 치열한 싸움 끝에 6개월만에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군 제대 후 1983년 3월, 경희대학교 회계학과에 입학해 남들보다 6~7년 늦은 나이인 27세에 늦깍이 대학생이 됐다.
대학 졸업 후 1987년에 나산그룹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일로 승부보자는 각오로 죽기 살기로 일했다. 나산그룹은 성장하면서 부동산개발과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이를 계기로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던 그는 개발 사업을 맡게 되었고, 지금은 일반화된 주상복합, 주거용 오피스텔의 개념을 시장에 처음으로 선보이며 히트를 쳤다.

나산은 30대그룹으로 성장했고, 열심히 일하고 뛰어난 실적을 보여준 그는 매년 특진을 거듭해 입사 6년만에 최연소 임원(상무)이 됐다. 당시 국내 주요 일간신문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로 소개되기도 했다. 안정된 대기업에서 탄탄대로의 길을 걸을 것 같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 왔다.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 과정에서 수많은 그룹이 해체됐고 그도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다른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고민 끝에, 내 스스로 한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 그의 나이 마흔 둘 이었다. 국가가 부도나고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는 판에 창업은 ‘무모한 짓’이라고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했고 ‘돈도 배경도’없었지만, 그는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생각으로 창업의 결단을 내렸다. 1998년 봄날에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칸짜리 방(33㎡ 원룸)에서, 5천만원의 자본금으로 나 홀로 창업의 역사를 시작했다. 상호는 MDM(MOON Development & Marketing). 미국은 창업자 이름을 대부분 사명으로 쓰고 있지만 국내에선 영문 사명도 드물던 시절에, 그는 과감히 가문(姓)을 건 사명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 경영활동의 성과
국내 최고 최대의 디벨로퍼 기업으로 창대한 미래를 꿈꾸며 출발한 창업. 21년의 역사를 가진 MDM은 2019년 상반기 기준으로 자산 4조 2,800억원, 자기자본 2조 1,400억원, 매출 1조 6,200억원 규모의 국내 최초의 종합부동산금융그룹으로 우뚝 섰다. 맨몸으로 창업했으니 처음엔 돈이 없어 시드머니(seed money)를 만들어야 했다. 자본은 없지만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시장에 팔자’는 생각에 부동산개발 기획ㆍ마케팅ㆍ분양대행업으로 시장에 도전했다. ‘샐러리맨의 신화’, ‘일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으로 업계에서 평가를 받았던 덕분인지 오직 문 회장만을 믿고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맡겼다. 문 회장의 뛰어난 마케팅 능력은 IMF 직후 꽁꽁 얼어붙은 시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으로부터 의뢰받은 사업마다 성공신화를 이뤄냈다. 그 결과 누적 분양세대수 4만 세대, 총 분양금액 16조원, 컨설팅 매출 1조1,000억원 등 엄청난 마케팅 실적을 거뒀다.

◆해운대 월드마크 센텀 사업계획만으로 국내 최초의 지급보증 없는 PF를 이뤄내
시드머니를 만든 10년의 기다림 끝에, 2007년 드디어 꿈꾸던 부동산개발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첫 사업이 ‘해운대 대우월드마크센텀’이다. 개발사업 추진 방식도 문 회장은 여느 디벨로퍼와 달랐다. PF(Project Financing)는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보고 대출을 하는 것인데, 당시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는 건설회사 지급보증을 필요로 하는 담보대출 형태로 통용되고 있었다. 금융시장의 관행으로 디벨로퍼가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보증으로 인한 공사비 인상)하는 구조였다. 문 회장은 은행과 직접 담판해서 그 불합리성을 설파해 잘못된 관행을 바꿨다. 첫 시행사업에서 업계 최초로 건설사의 지급보증 없는 PF를 실행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PF금융의 잘못된 관행을 정상화시킨 것을 넘어서 건설회사가 주도하던 개발시장을 디벨로퍼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변화시킨 역사적 변곡점이 되었다. 그래서 이 사례는 국내 대학 교재에 실려 있기도 하다.
 
◆광교 푸르지오 월드마크 야경패러다임을 바꾸다.
선임대분양, 토지리턴제, 삼시세끼, 몰세권이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에는 분양시장이 위축되어 있자 ‘판교푸르지오월드마크’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선 임대분양’이라는 아이디어를 시장에 도입해 분양에 대 성공을 거두었다.
2012년에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광교택지지구 땅을 ‘토지리턴제’라는 생소한 방식으로 매입해 ‘광교 푸르지오 월드마크’ 사업을 성공시켰다. (*토지리턴제 : 매매계약 후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계약금을 되돌려 주는 제도)
2013년 ‘광교 더샵 레이크파크’ 개발시에는 주부와 1~2인 가구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간파해 오피스텔 최초로 호텔식 삼시세끼를 제공하는 클럽라운지 시설을 도입해 시장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e편한세상 시티 삼송3차 2015년에는 당시 ‘디벨로퍼의 무덤’이라 불려 팔리지 않고 있던 고양시 삼송지구 택지(삼송 신세계스타필드 맞은편 택지 3만3,198평)을 매입, 주거용 오피스텔(e편한세상 시티 삼송1~4차)을 순차적으로 개발해 시장에 원스탑라이프(one-stop life)의 ‘몰세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며 성공신화를 썼다. 문 회장이 추진한 26건의 개발사업은 단 한건의 실패도 없는 부동산개발업계의 유일무이한 역사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개발사업을 직접시행한지 10여년만에 연면적 100만평, 분양매출 11조원의 개발사업 실적을 거둬 명실상부한 국내대표 디벨로퍼로 우뚝 섰다. 국내 최초의 종합부동산금융그룹으로 성장한 엠디엠그룹의 사업방식을 새로운 롤 모델로 삼고 있어서다. 부동산디벨로퍼로시작해 종합부동산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킨 과정을 보면 기업가로서 문 회장이 가진 또 다른 능력을 엿볼 수 있다. 바로 미래를 보는 눈이다. 2009년 정부에서 금융공기업인 한국자산신탁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했을 때, 미래 시장은 부동산과 금융의 융합이 지배할 것이라 생각한 문 회장은 M&A에 뛰어들어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다. 문 회장은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하자마자 리츠 AMC 겸업인가를 득하고, 2012년 자회사로 여신전문금융기관인 캐피탈사, 2015년 한국자산에셋운용사를 설립해 자산운용시장에 진출, 2018년 엠디엠투자운용사를 설립해 리츠 자산관리 시장에 진출했다.
한국자산신탁 상장기념식 2016년 7월에는 계열회사 중 처음으로 한국자산신탁을 기업 공개해 한국거래소 유가증권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시키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
그 첫걸음을 떼다이뿐만이 아니다. 2017년에는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거캐피탈(Gaw Capital)과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2018년에는 미국 현지법인인 엠디엠인터내셔널을 설립해 해외 부동산 개발, 투자 등 글로벌 비즈니스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19년 5월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기존 창고 용지를 사들여 첫 해외 부동산 개발 사업의 닻을 올렸다. 단순 투자를 넘어 직접 디벨로핑해 고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을 구축한 것이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 디뎠다. 부동산 운용에서 첨단 캠퍼스 오피스 개발까지국내 최고의 종합부동산금융그룹인 엠디엠그룹은 최근 미래 사업지를 적극 확보하고 있다. 고도의 역발상 전략으로 주목 받고 있는데, 토지뿐만 아니라 노후 빌딩과 건물을 매입하고 있어서다. 실물자산 수익형 부동산 확보... 미래 도시재생을 설계하다 2017년 삼성으로부터 대치동 삼성메디슨빌딩을 매입한 이래, 2018년에 삼성생명이 내놓은 전국 6개 빌딩과 삼성생명 분당빌딩, 2019년 한진중공업 부산사옥을 매입한데 이어 최근 여의도 유수홀딩스 빌딩과 롯데마트 4개점의 매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매입이 모두 완료된다면 빌딩가액만 1조 3,800억원에 달한다. 도심 알짜 부지에 위치한 빌딩을 매입하는 이유는 단기적으로 안정적인 임대운용 수익을 거양하고, 장기적으로 미래형 도심재생(개발)을 할 수 있어서다.

◆“강남권 금싸라기 땅”4차 산업혁명시대, 미래형 친환경 첨단 비즈니스 허브(HUB)를 꿈꾸다
오피스빌딩 이외에도 최근에 서초동 옛 정보사부지(9만1597㎡)를 1조 956억원에 사들였다. 엠디엠그룹은 정보사부지 외에도 서울 광장동의 한강변에 있는 한강관광호텔(대지면적 1만2206㎡)을 1850억원에 사들였으며, 2017년에도 서초구 반포동 KT 부지와 부산 해운대구 KT 부지, 용인 기흥의 서울우유 부지 등을 잇따라 매입해 보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강남권 금싸라기 땅으로 꼽히는 옛 서초동 정보사부지와 한강변 한강관광호텔부지를 문 회장이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 시장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 회장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업무지구를 만들어 한국 경제에 새로운 미래 성장 엔진을 만들고 싶다”고 청사진을 밝혔다.

▲2018년 12월 김해시 장학재단 기탁

◆ 사회공헌, 더불어 사는 사회 위한 나눔의 실천
 MDM을 창업한지 3년만인 2001년 10억원이라는 돈을 처음 벌었다.
문주현 회장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중 절반인 5억원을 출연해 ‘문주장학재단’을 만든 것 이었다. 대학 다닐 때 그는 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가장 어려웠을 때 독지가의 도움으로 대학을 마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학금을 받던 그때 그는 “세상에 빚을 졌으니 반드시 성공해서 후배들을 돕겠다”고 자신과 약속을 했고, 아무도 모르는 ‘나와의 약속’이었지만 그는 16년만에 그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장학재단 등록증서를 받던 날 그때 그는 자신과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환갑이 될 때까지 재단 출연금 100억원을 만들자” 놀랍게도 환갑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9월 현재 장학재단 출연금이 416억원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후학양성을 위해 모교인 경희대학교는 물론 건국대학교, 가천대학교에 발전기금을 후원(28억원) 했으며, 한양대학교에 매년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2018년 김해시 인재육성장학재단에도 장학금을 기탁(2억원)하고, 2016년 전국검정고시 총동문회 총회장을 맡은 이후 현재까지 매년 50여명의 검정고시 준비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스포츠ㆍ문화 분야에 대한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다. 그 동안 소외돼 있었던 한국여자바둑계가 르네상스시대를 열게 된 것도 문 회장의 지원 덕분이다. 2015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 여자 바둑리그가 출범하는 산파 역할을 했으며, 2018년까지 4년 연속 여자바둑을 후원(11억원)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대회 성공 개최를 위한 후원금 기부, 서울시 탁구협회장(2013 ~2016)을 맡아 탁구 꿈나무 육성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통한 후원금 모금(1억 5,000여만원)은 물론 매년 초ㆍ중ㆍ고교 탁구선수 30명을 선발해 장학금을 후원했다. 문 회장의 이런 다양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은 시민단체들도 인정해 ‘전국NGO단체연대’는 2014년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으며, 2018년 일본에서 개최한 ‘2018아태국제경영학회(APAIB)-UN 공동학회’에서 ‘글로벌 경영대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국가적 위기인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 스스로 파격적인 지원 대책을 시행했다. 계열회사 모든 임직원에게 3자녀의 경우 연간 1,200만원, 2자녀는 600만원, 1자녀는 240만원을 고등학교 졸업때 까지 연봉과 별도의 육아수당을 지급키로 한 것이다. 대학에 진학할 경우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 주고 있으니 ‘요람에서 대학졸업’까지 기업에서 책임지는 사상 초유의 파격 행보를 한 것이다.
직원 복지증진과 국가경제활성화. 이것은 확고한 ‘나눔’, ‘상생’, ‘사회적 책임’ 의식이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결정이다.

문 회장은 “기업이나 개인의 성공은 사회와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함께한 덕분이니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인류의 생존과 공존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기업도 생존한다”며 “인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사업은 무의미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이 전달되어 그런 선함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2015년 관악구, 용꿈꾸는 도서관 개관 2주년기념 명사초청 토크콘서트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