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치유여행의 지난 51차 여정부터 출생 순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혹시.. 둘째나 셋째로 태어나셨나요? 세상에는 부정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니어서 둘째로 태어났을 때의 이득 또한 없는 게 아닙니다. 우선 첫째 아이를 키울 때보다 부모님의 팽팽히 긴장된 의욕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 때라는 다행스러운 유익이 있습니다. 즉 세상에서 제일 가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과대의욕이 하늘을 찌를 듯한 시기를 지나고 나니까,  둘째나 셋째에게는 오히려 편안함을 주는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깁니다. 첫째 아이에게 턱없이 기대하고 따라서 턱없이 많았던 요구사항들이, 둘째에게는 네 맘대로 해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가 되거든요. 일말의 여유도 없이 타이트하게 꽉 쥐고 있던 고삐를 한 숨 놓아주는 거죠. 첫째 아이의 출산은 부모에게 있어 그야말로 경이롭고 신비한 첫 경험이고 그 가슴 벅참은 곧 과의욕으로 이어져 자기도 모르게 부모 자신이 살지 못했던 이상적인 삶과 그를 이루기 위한 최고의 엘리트를 만들어 내려는 욕심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면 그 것이 좀 느슨해집니다. 해보니 뜻대로 되지 않더라? 아니면 헛되더라, 부작용도 만만치 않더라, 아니면 또 다른 이유에 의해, 아무튼 부모는 자신도 팽팽하게 날을 곤두세우고 있던  부모 역할에서 조금은 숨을 돌리고 여유를 갖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그 것이 첫째에게는 또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그렇게 규제와 요구사항이 많고 엄격했으면서, 같은 상황에서 둘째에게는 너무나 너그러운 부모를 보게 되는 것이죠. 부모입장에서는 세상살이의 순리같은 것이지만 아이에게는 불공평함이고 억울함이고 분노이고 둘째에 비해 자기는 덜 귀하고 덜 사랑받는 존재라는 낮은 자존감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지만 참 부모처럼 해내기 어려운 역할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부모란 세상에서 가장 교육이 필요한 존재인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도 그런 교육을 받고 부모가 되지 않았고, 그 무지한 상태에서 그냥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 와중에 누가 희생되고 어떤 상처들이 만들어졌을지..상상이 되시나요? 정말이지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나 봅니다. 현실은 왜 이렇게 씁쓸할까요..둘째에게 느긋한 부모의 태도가 첫 째에게는 아픔과 노여움이 되는 반면 둘째에게는 부모의 무관심으로 비쳐 질 수도 있습니다. 첫째에게는 저렇게 열성적이면서 왜 나에게는 그렇지 않은 걸까..나는 형에 비해 기대할 것이 없는 존재? 엄마 아빠는 형만 인정해. 뭐 이런 스토리 말입니다. 태어나 보니 이미 형이라는 경쟁자가 먼저 선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옷은 물론이고 책과 학용품, 그 밖의 잡동사니까지 모두 첫째가 쓰던 것을 물려받아야만 했던 서러운 불만, 게다가 셋째, 넷째라도 태어나 보지요? 첫째는 첫째라서 귀하고, 막내는 막내라서 귀하고 늦둥이는 또 새삼 집안의 새로운 경사라서 귀한데, 중간에 낀 샌드위치 서열은 점점 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존재 자체가 애매해지는 겁니다. 남의 얘기라면 모르지만 내 이야기라면 나이 지긋해진 지금도 웃을 수만은  없으실 걸요..희안한 것은 세월이 그리 지났음에도 그 때의 분하고 서러운 감정은 떠올릴 때마다 마치 그 당시인 듯 똑 같다는 겁니다. 어린 애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이게 무슨 짓이야 싶을 것 같지만 분명히 그 모든 기억들은 오늘 날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것도 전반에 걸쳐, 강하게 말이지요. 이 것이 ‘포로된 자’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마음의 치유는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자신의 치유를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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