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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魏氏정자' - 예양강 8정자(6)예강칼럼(105)/박형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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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1  10: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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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過 위씨정자 유감(有感)”, 장육재 문덕구(1667~1718)
翠竹蒼松一岸回  취죽(翠竹) 푸른 솔 강언덕 감돌고
空庭祗見野人來 빈 뜨락에 야인(野人)만 찾아 드네
渡頭落日波濤回 나루터 지는 석양에 파도는 맴돌고
似訴庄翁去不廻 흡사 떠난 ‘장옹(庄翁)’이 못 오는 듯

충청도 청안현감을 사직하고 귀향했던, 1705년 문과급제자 ‘장육재 문덕구’는 유치방 사미동에서 용계방, 부산방, 부동방의 예양강변을 따라 장흥府 읍치를 오갔을 것. 그때 詩,<과(過) 위씨정자 유감(有感)>을 남겼는데, 그 “魏氏정자”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그 시절 文氏정자 ‘부춘亭’에 대해 詩, <過 부춘강정(江亭)>을 남겼다. 예양강 물길을 읇은 <예양九곡>에서 ‘1곡(曲)석교, 2曲 사인암, 3曲독곡,  4曲동정, 5曲행원정, 6曲부춘정, 7曲오탄, 8曲용호, 9曲기담’을 거명하였다. 그럼에도 <정묘지,1747>에 ‘5곡 행원정’은 나오지 않으며, “행원보 취수정(醉睡亭)을 ‘김확(金確)’이 소축했다”고 기록했는데, 앞의 “魏氏정자”와 어떻게 구별될까? 또 ‘청금 위정훈(1578~1662)’은  당시 ‘부산방’에 살던 사촌동생, ‘한천 위정호(1582~1647)’의 “소옹정(笑翁亭)”을 읊은 詩3수를 남겼다. <정묘지,용계방>의 ‘金처사江亭’은 강진출신 ‘해암 김응정(1527~1620)’이 세운 ‘삼가정’이다. 오늘날 예양강 8정자에 들어가는, 부산면 ‘기동(基洞)’에 있는 ‘경호정(鏡湖亭)’은 1912년에 ‘운암 위덕관(1547~1628)’의 10대손 ‘행은 위계(1866~1942)’이 신축했고, 다시 1964년경 '회은 위원량'이 그 건너 ‘송암정’을 이축하여 중건하였다. 그 ‘基洞(기동,덕동)’에 1593년에 입거 정착한, ‘위덕관’은 <옥봉집>에 나오는 ‘魏이율’로 ‘위상규 박사, 미셀魏’ 집안의 선조이다. 그렇다면 그때 ‘장육재 문덕구’가 남다른 유감(有感)을 남겼던, 예양강 “魏氏정자”는 어디에 있었을까? 먼저 ‘행원정(杏園亭), 취수정(醉睡亭)’과 어떤 관계일까? 그 ‘醉睡亭’ 소축자로 ‘취수헌 위천회(1629~1684년후 몰년)’와 ‘청풍인 김확(金確)’으로 엇갈리는데, <정묘지> 기록대로 ‘김확’으로 본다면 ‘金氏정자’가 될 것. 또한 ‘文氏 부춘정’과 장흥읍 ‘東亭’ 사이에는 ‘취수亭, 행원亭’ 말고 다른 정자가 없는 것이니, ‘장육재 문덕구’가 노래한 “魏氏정자”는 부춘정의 위쪽에서 찾아야 할 것. 그렇다면 이제 그 “魏氏정자” 후보로는 하나의 가능성이 남는다. <정묘지,부산방>에 기록된 “한천정사(寒川精舍)”이자, ‘청금 위정훈’이 읊은 “소옹亭”인데, 그 ‘한천정사, 소옹정’의 주인, ‘한천(소옹) 위정호’는 ‘당곡진사 위곤’의 손자로 ‘운암 위덕관’의 아들이다. ‘위곤-위덕후’를 잇는 ‘청금 위정훈’은 그 사촌동생 ‘위정호 만시(挽詩,1647)’에서 “선장 선옹(仙庄 仙翁)”이라 기렸는데, 마침 詩,<過위씨정자 유감>에도 ‘장옹(庄翁)’ 호칭이 나온다. 정리컨대 ‘장육재 문덕구’는 예양강변, 현 부산면 기동에 있던, “魏氏정자(소옹정, 한천정사)”을 지나가다가, 남국망사(南國望士)로 불리던 평생처사 ‘魏소옹’의 자취 앞에서 위안의 有感을 남겼을 것. 그리하여 ‘운암 위덕관’과 ‘소옹 위정호’가 남긴 자리, 그 ‘운암유장(雲岩遺莊)’을 이어받은, 부산면 기동의 魏氏 후손들이 1912년경에 ‘경호정’을 세우고 1964년경에 더 크게 중건했으리라. “경호정”의 전신은 그 시절 ‘문덕귀’가 보았던 “소옹정 위씨정자”였으리라.

 이하, ‘청금 위정훈’이 남긴 ‘소옹정’에 관한 詩2수이다.
- “次종제정호 소옹정歌”, 위정훈 (종제 정호의 ‘소옹정歌’에 차운하다.)
指點此翁江上宅   저곳이 차옹(此翁) 사는 강가집
荒村八九護林亭 황촌 몇 집 속에 林亭이 있네
遠煙數疊靑山郭 먼 안개 몇 겹이 靑山 감싸고
平野一痕緣芝汀 들판 한주름 芝草 물가 닿았네
物外閑人心坦率 세상 밖 한가하니 마음 진솔해
谷中有鳥語丁寧 골짜기 새는 정녕 말을 건네고
天皇太古流來笠 천황 太古시대 옛 사립을 쓰고
岸着春風빈髮星 언덕 닿는 春風에 백발은 성성 
 - <주> ‘소옹 위정호’에 대해 <정묘지>는 “늘 심의(深衣)와 옛 고립(古笠)을 상착(常着)했고, 남국망사(南國望士)로 불렸다”고 했다.

- “飮소옹정 因次낭한노복초韻”, 위정훈(‘소옹정’에서 술 마시며, ‘낭한 노복초’의 운에 차운하다)
湖海狂歌隱 광가(狂歌)에 호해(湖海) 땅 숨어
詩窮道又窮 시궁(詩窮) 속 깨우침도 窮해져
逢君醉酩酊 그대를 만나면 醉해 정신이 없고
擊鼓響丁東 북을 두드리면 둥둥둥 울렸다네
亂無春園裏 봄뜰(春園)에 어지러이 춤 추고
追隨少輩中 뒤 따르는 젊은이들 무리 속에
歡情任顚到 기쁜 情에 그냥 넘어 엎어지며
自笑白頭翁 절로 웃고 마는 白頭노인 ‘소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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