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편액(扁額)이란 일상에서 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나 건물 전면 처마 아래 등 일정한 장소에 거는 액자를 말하며 흔히 현판(懸板)으로 통칭되고 있다. 경북 대구 거주자 극암 이기윤 선생은 1943년~1950년 7년간 전남 강진군 칠량면 송산리에 정착 거주하면서 여러 사우(祠宇)에 편액을 남겼다. 특히 서체(書體)는 무게감이 있고 웅장하면서 부드러움이 느껴져 편액 글씨의 진수(珍秀)라 할 수 있다. 선생이 쓴 편액은 장흥읍 평화리 장흥위씨 도문중 소유 회주사(懷州祠)의 강당 백산재(栢山齋) 액호 등 장흥·강진지역 20개소 주요 사우(祠宇)에 편액 등 27점이 소장되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 극암(克菴) 이기윤(李基允 성산人, 1891~1971) : 자는 집중(執中), 호는 극암(克菴)이다. 경북 성주군 대포 태생으로 익희(益熙)의 자(子), 정현(廷賢)의 손(孫)이다.

장석영(張錫英) 선생의 문인으로 독립운동가, 유학자로 활동하였다. 어려서 영민(英敏)하여 16세 때 성균관 박사가 되어 독서(讀書)하였고 스승의 항일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왜정의 모든 행위에 대항하여 불굴의 뜻을 지켰다. 자질(子姪)의 유계에 규모의근졸(規模宜謹拙) 지기필각력(志氣必刻曆)하라 하였으며 서법(書法)이 경건(勁健)하여 초년에 청천(晴川), 회연서당(檜淵書堂) 편액을 수서(手書)하였다. 이밖에 당(堂), 누정(樓亭), 헌각(軒閣)의 편액 글을 많이 남겼다. 문집 17卷이 전한다.

1. 장흥군 내 소장 현황
1)백산재는 장흥읍 외평길 168 내평마을에 위치한다.

장흥위씨 도문중 소유로 시조공 위경 등 7위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 제향을 봉행하는 회주사(懷州祠)의 강당 백산재(栢山齋)에 액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장흥위씨의 성지(聖地)로 1936년 중건되어 각종 도문중 행사를 개최하는 장소이다. 2009년 3월 20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72호로 지정되었다.

2)추원재는 회진면 대리1길 15-11에 위치한다.

장흥위씨 장천문중 소유로 성균진사 위곤(20세 1515~1582), 호조판서 위덕화(21세 1551~1598)의 묘각 추원재(追遠齋)의 액호 1점이 있다. 묘각은 1940년경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매년 음 10월 1일 묘전에서 가을 시제를 모셔왔으나, 2018년 음 10월 15일부터 장천재에서 합제 봉행한다.

3)장천재는 관산읍 천관산길 150에 위치한다.

장흥위씨 장천문중 소유로 승문원습독 위유형(18세 ~?)의 配 평산신씨의 묘각이다. 강당 장천재(長川齋)에 액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1660년경 영은암(靈隱庵)의 승사(僧舍)를 철거하고 구조와 규모를 확대해 짓고 기와를 이어 제각을 장천재라 재호(齋號)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73년(癸酉) 4차 중수하였다. 음 10월 15일 16세 통덕랑 위자량 등 8위 합제를 봉행한다. 각종 장천문중 행사 공간으로 천관산과 더불어 장흥위씨의 상징적 건물이다. 1978년 9월 22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4)다산재는 관산읍 방촌길 111-103에 위치한다.

장흥위씨 안항공파 웅천종중 소유로 존재 위백규(26세 1727~1798) 선생 등 4위 위패가 봉안된 다산사(茶山祠)의 강당 다산재(茶山齋)에 액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1710년경 초건 후 2002년(壬午) 관리사의 과실로 재당(齋堂)이 전소(全燒)된 후 후손들의 헌성 참여와 장흥군청의 재정 지원을 받아 2003년(癸未) 4차 신축하였다. 음통덕랑 위동식(23세 1640~1708) 등 이하 선조 17위 가을 시제를 봉행한다. 다산사는 존재 선생의 학덕(學德)을 기리기 위해 1902년(壬寅) 장흥지역 사림(士林)들의 주도로 다산재 뒤에 설단(設壇)하고 단비(壇碑)를 세워 향사해왔다. 1984년(甲子) 창건하여 존재 위백규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 3월 15일 지역유림의 주관으로 향사하였다. 2003년(癸未) 서계(書溪) 위백순(1737~1815) 선생, 죽오(竹塢) 위도한(1763~1830)선생, 다암(茶?) 위영복(1832~1884) 선생을 추배하였다. 농촌사회의 고령화에 따른 제향문화 변화로 부득이 2018년부터 후손들이 주관하는 문사우(門祠宇) 제향으로 전환하였다.

5)운산재는 관산읍 농안길 63에 위치한다.

장흥위씨 안항공파종중 소유로 안항(顔巷) 위덕후(21세 1556~1615), 청금(聽禽) 위정훈(1578~1662) 선생의 묘각 운산재(雲山齋)에 액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1954년(甲午) 창건되어 매년 음 9월 15일 묘전에서 가을 시제를 봉행한다.

6)운곡재 용산면 어산운주길 178-17 봉황마을에 위치한다.

장흥위씨 장천문중 소유로 통선랑 위진수(19세 1480~1564)의 묘각 운곡재(雲谷齋)에 액호 1점이 있다. 이곳은 1937(丁丑)년 신축하였다. 1994년까지 묘전에서 제향하고 이후 장천재에서 음 10월 15일 합제를 봉행한다. 건물은 장천문중 소유였으나 2005년 타인에게 매매하였다. 극암 선생은 장흥위씨 6개소 사우에 편액 6점을 써 남겼다. 이중, 추원재와 운곡재는 농촌사회의 고령화에 따른 제향문화의 변화로 관리되지 않아 폐(廢)하여 편액은 방촌유물전시관에 소장되어 있다.

7)유천재는 관산읍 평촌길 32-35 평촌마을에 위치한다.

광산김씨 평촌종중 소유로 제각 유천재(柳川齋)에 액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1701년(辛巳) 세운 서실(書室)로 건축물은 초옥(草屋) 형태로 내려오던 것을 1960년(庚子) 4칸, 관리사동, 춘일문 등을 신축 재중수(再重修) 하였다. 매년 음 10월 15일 입향조 지암(止菴) 김 훤(金 暄, 1475~ ?) 등 40위 제향을 봉행한다.

8)사성당은 관산읍 정남진로 44-69 학교마을에 위치한다.

압해정씨 학교문중 소유로 사성당(思成堂) 제실에 액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의 원래 제실은 1943년(癸未) 창건하여 관산읍 만련(柏洞) 마을에 위치하였다. 세속의 변화로 2005년(乙酉) 현장소인 강당 학명재(鶴鳴齋) 옆으로 이건(移建)하였다. 입향조 공조참의 익겸(益謙) 정건일(1615~1694) 등 98위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 10월 10일 합제를 봉행한다.

9)관덕재는 관산읍 산서1길 58-50 산서마을에 위치한다.

경주이씨 개산공파 산서종중 소유로 삼산사(三山祠)의 강당 관덕재(冠德齋)에 액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 삼산사와 강당 관덕재는 1903년(丙午) 경주이씨 개산공파 산서종중에서는 창건(創建)하고 1959년(己亥) 중수하였다. 삼산사는 문충공 익재(益齋) 이재현(16세 1287~1367) 선생 등 5위 위패를 봉안하였다. 매년 음 9월 20일 지역 유림들이 제향을 주관하는 향사우(鄕祠宇)였으나, 농촌사회의 고령화에 따른 제례문화 변화로 2017년(丁酉)부터 후손들이 주관하는 문사우(門祠宇)로 전환하고 매년 음 10월 16일 문충공 익재(益齋) 이재현 선생 등 11위 합제를 봉행한다.

10)수정재는 관산읍 칠관로 842-1356 천관사 아래 기슭에 위치한다.

인천이씨 남면파종중 소유로 파조(派祖) 승의부위 이 우(20세 1541~1625)의 묘각 수정재(水晶齋)에 액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남면파종중에서 1967년(丁未) 묘각을 건립하였다. 이후 산업화에 따른 이농(離農)과 제례문화 변화, 묘각 내 전기 가설이 되지 않은 주거환경 불편 등으로 수호인이 1980 초반년에 하산한 후 방치되었다. 묘역이 붕괴되고 묘각은 퇴락하던 것을 1998년(戊寅) 公의 묘소 둘래석 정비와 묘각을 신축하였다. 매년 음(陰) 10월 상정(上丁)일 시제를 봉행한다.

11)당곡사는 용산면 어산운주길 103-89 어서마을에 위치한다.

인천이씨 남면파종중 소유로 청강(淸江) 이 승(24세 1556~1628) 선생 등 9위 위패가 봉안된 당곡사(唐谷祠) 신실에 액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1917년(丁巳)에 설단(設壇)하여 제향하여 오다가 1962년(壬寅)에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하였다. 매년 음 9월 20일 지역유림의 주관으로 제향을 봉행하는 향사우鄕祠宇)이다. 강당 영석재(永錫齋)는 1700년경 건립하여 1912년(壬子) 현재의 모습으로 중수되었다.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69호로 지정되었다.
12,13,14,15,16) 영사재는 용산면 어서길 41-38 어서마을에 위치한다.

비정(榧亭)의 별칭 묘각 영사재(永思齋)에 액호 등 5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1929년(己巳) 어서마을에 거주하는 도편수 이수길(1888~1959)이 현재의 터에 시인 묵객의 휴식 공간인 비정(榧亭)과 후손 강학 및 선조 제향 공간인 영사재(永思齋)로 사용키 위해서 현재의 터에 동향 건물로 신축하였다. 1984년(甲子) 주변 수목으로 인해 일조량이 적고 터 내에 샘(泉)이 있어 습하여 건물에 영향을 주어 남향으로 옮겨지었다. 인천이씨 소종중 내 평강(平江) 이춘흠 등 종형제간 소유이다. 매년 4월 셋째 토요일 평강丈을 기준으로 7대조 이하~4대조 간 선조 16位 제향을 봉행한다.
 

영사재기(永思齋記)

청백세가(淸百世家) : 맑고 깨끗하게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즉 선비를 뜻한다.

율수궐덕(聿修厥德) : 조상의 덕을 그대로 닦아 나간다.

숙흥야매(夙興野寐) :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잔다. 즉 부지런히 일함을 뜻한다.

 17)화헌은 용산면 어서운주길 62 어서마을에 위치한다.

이대기(인천人 1905~1974) 가내에 아호 1점이 소장되어 있다.

18)소지는 용산면 접정길 20 새터마을에 위치한다.

이영숙(인천人 1932년생) 가내에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장흥지역 내 14개소에 14점 액호, 4점 시운 등 18점 편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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