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이 높이 솟아 ‘여의냇물’ 맑게 흘러”, 용산초등학교 교가(校歌)에 나온다. 1926년에 설립된 ‘남상공립보통학교’는 ‘용산공립소학교’를 거쳐 1946년에 ‘용산국민(초등)학교’가 되었다. 필자에게 들어온 질문은 “校歌에 등장하는 ‘여의냇물’의 명칭유래가 어떠한지?”였다. (용산중 校歌에는 ‘부용산’만 나온다.)
먼저 ‘여의천(如意川)’ 명칭의 역사적 연고성을 보면, 옛 <장흥읍지(군지)>등 역사적 문헌에는 일절 등장하지 않다가, <1975년 장흥군향토지/ 1986년 마을유래지/ 1995년 용산면지>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었다. 예전 ‘용산 팔경’에 없으며, ‘인암 팔경’에는 ‘용강탄성(龍江灘聲)’이 나왔다. 나아가 현재 용산면을 관통하는 하천의 행정명칭은 ‘남상천(南上川)’인데, “南上川과 如意川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라는 질문도 뒤따랐다.

필자는 ‘如意川’을 어원적으로 ‘여시내, 마르내(건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았다. 타지 사례도 그러하다. 집안 사정으로 용산에서 태어나고, 초등중등 시절에도 용산면을 오갔던 필자는 초등학교 앞 냇가가 건천(乾川)임을 나름 겪어본 입장이었다. 부용산 물줄기가 바로 못 미치는 인접지 ‘맥정이들(麥井野)’의 ‘맥정(麥井)’은 물이 부족한 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校歌 작사자가 굳이 그런 ‘여시내’ 현상을 보고서 校歌 가사로 끌어올 리 만무할 것이기에 “마침 부용산에 ‘龍泉’이 있고, <장흥읍지>에 기록된 ‘龍頭川, 龍江’에 숨어있을, 龍(잠룡,등룡)의 ‘여의주(如意珠)’를 은유한 ‘如意川’을 말했을 수 있겠다.”고 덧붙여 답했다.

이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본다. <정묘지,1747>에는 ‘남면방 - 용두천, 용강’이었다. “용두천- 수(受)일방학수(壑水) 요(繞)용두 합(合)금곡川 과(過)귀정탄 입(入)지천/ 계곡물들이 모여 ‘龍頭’를 돌아 ‘金谷川’에 합류하여 ‘지천’으로 들어간다.”는 것. 100여년 후 1851년(신해) 무렵에 남면 ‘접정’ 태생으로 ‘묵촌’에 거주하던 ‘남파 이희석(1804~1889)’은 “홍수 범람으로 전토 유실하여 ‘남면 묵촌’에서 ‘나주 사호’로 이거했다”는 <사호이택(移宅)序> 기록을 남겼는데, 번역자는 그 냇가를 ‘여의천’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 홍수에 ‘복사성천(伏沙成川)’되면서 냇가 물줄기가 바뀔 수 있었을 것. 한편 그 사정을 두고서 ‘남상천(南上川)’으로 확대 거명한 사례도 있지만, ‘남상면, 남하면’으로 분면(分面)된 시점은 1885년경이니, 아직 1851년경에 ‘남상천’이 벌써 등장할 수 없을 일. 또한 分面 상태는 1932년경 ‘남면’ 재통합으로 해소되었으니, 기실 ‘南上川’은 그 分面시기(1885~1932)에나 일시적으로 통용될 명칭이었다. <조선지지,1910년>에 ‘龍江,용두리’가 나왔다. <관산지(경술지),1910>는 <정묘지,1747>를 답습하여 ‘龍頭川, 용강’을 말하였다. <장흥지(무인지),1938>에는 ‘남면-금곡천,포곡천’이 언급되며, ‘龍頭川,南上川’은 나오지 않았다. 1940년에 드디어 ‘용산면’으로 개칭되고, 해방후 1946년경 용산초 校歌에 ‘여의천(여의냇물)’이 등장하는 것.

한편, 타지출신 초교교사가 개인적으로 편찬한 <장흥모습지, 천관,1960>에 ‘용산천, 如意川’이 나오며, ‘龍頭천, 남상천’은 안 나왔다. <장흥지(병오지),1966>는 “제(諸)곡수 입(入)용강 而流 합(合)금곡川 入海”라 했다. 그런데 <장흥군향토지,1975>는 ‘부용산 龍泉’을 언급하고서 “저드리(적평)앞을 흐르는 如意川”이라 했다. <장흥군 마을유래지,1986>는 “1726년에 ‘접정,적평 지역의 대홍수로 ‘如意川’이 매몰되고 ‘南上川’이 생겨났다”고 했으나, 후대에 부여된 ‘南上川’ 명칭이 1726년경에 먼저 등장할 수는 없을 일.

<용산면지,1995>는 “南上川의 옛 이름이 ‘여의천’이다./ 龍江川이 南上川과 합류하여 ‘如意川’이 되었다.”고 했으나, 그런 단정을 뒷받침하는 근거 제시는 없었다. ‘용강천’을 중간지류로 보고 ‘남상천(여의천)’을 본류로 본 것인데, <정묘지> 내용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어쨌거나 현재 용산면의 공식적 행정명칭은 ‘남상천’이다.(기왕에 지적하면, 한때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 존재했던 ‘남상면’에서 온 ‘남상천’을 계속 사용함도 크게 불합리하다.) 이에 다시 정리해본다. 校歌에 나온 ‘여의냇물’은 그 지역 및 냇가 특성에 비추어 어원적으로 ‘여우내, 여시천, 마르내’에서 유래한 것으로 ‘용강 상류’에서 통용된 명칭으로 판단한다.

한편, <정묘지,1747>에 등장한 ‘龍頭川, 龍江’에서 ‘如意川’ 명칭의 역사적 상징적 연원을 구할 수 있겠다. 반면에 ‘남상천, 여의천’을 그 본류(本流) 명칭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장흥읍지>가 ‘용두천, 용강’을 기록한 역사적 내력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 가지 사정을 덧붙이면,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예전에는 자기 마을지역 앞을 지나는 구간에 한정한 개별 명칭을 부르고 살았다. ‘서울 한강’이든 ‘장흥 예양강’이든 그 지역 앞의 하천 구간에 따른 개별적 명칭이 부여된다. 용산면 경우도 지세와 위치에 따른 하천 구간에 대응하여 ‘상류 여의천 및 9개 지류들, 본류 용두천(현 남상천)’ 등으로 구별되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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