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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암(雪巖) 김필ㆍ월봉(月峯) 김광원 묘역, 묘각 원모재(遠慕齋)문화탐방/栢江 위성록 이야기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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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05  10: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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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江 위성록/장흥위씨 씨족문화연구위원

장흥의 수인산(修仁山 561m) 지맥이 동남쪽으로 흘러내린 필봉(筆峯)과 수리봉(鷲峯 408m)아래 잡은 부산면 내안리 내동마을은 조선조 초기에 평강현감을 지낸 김경의(金敬義)가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을 피해 입촌하여 후손들의 번손으로 영광김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영광김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의 3세손으로 영광군(靈光君)에 훈봉된 문안(文安) 김심언(金審言 ?~1018)으로 고려 1014년(현종5) 내사시랑평장사와 서경유수를 지냈다. 중시조이자 1세는 고려 말 공조전서를 지낸 문경(文敬) 김태용(金台用)으로 장흥파 파조(派祖)이다. 2세는 부안감무를 지낸 김시(金時)이며, 부친 김태용과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산 125번지에 묘소가 위치한다. 3세는 김경인(金敬仁)과 김경의(金敬義)이다. 김경인은 강진군 도암면 덕년리 만년마을에 입촌하였다. 김경의의 장남 4세 김찬(金瓚)과 차남 김필(金필)은 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학문이 뛰어났다. 김찬은 의성현감을 지냈다. 김필은 이조좌랑, 의정부사인, 사헌부집의, 성균관대사성, 경기도관찰사, 이조참판, 충청도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이곳 내동마을에서는 석정(石亭) 김괴(金塊 5세), 월봉(月峯) 김광원(金光遠 6세), 헌헌헌(軒軒軒) 김여중(金汝重 9세), 오남(吾南) 김한섭(金漢燮 18세), 인곡(仁谷) 김정채(金正采 19세) 등 학문이 뛰어난 인물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근래에는 제28대 검찰총장과 제48대 법무장관을 지낸 김태정(21세 1941년생), 제7대 경찰청장과 제12대 경호처장을 지낸 김세옥(22세 1940년생)이 이곳 태생이다.

   
 

부산면 내안리 산 65번지 수리봉 자락 당곡등(堂谷嶝)에는 이조참판을 지낸 설암(雪巖) 김필, 이조판서에 추증된 손자 월봉(月峯) 김광원, 쌍곡(雙谷) 김척 등 이하의 후손 묘 27기가 자리한 묘역과 인근에 묘각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1.묘역(墓域)
<설암(雪巖) 김필 선생 묘역 9기>

   
 

①묘역 상위에는 이조참판 김필(金필 4세)과 配 정부인 광주이씨, 정부인 상주김씨 합장 묘가 위치한다.
묘표(墓表) 전서(前書)는 嘉善大夫吏曹參判金필之墓 貞夫人廣州李氏 貞夫人尙州金氏라 새겼다.
묘갈명(墓碣銘) 전자(篆字)는 參判雪巖金公之墓碣銘이라 새겼다. 전서(前書)는 吏曹參判雪巖府君墓碣銘 並序라 새겼다.
1915년(乙卯) 8월 상순 김한익(18세 1863~1944, 장성군 황룡면 수산리 태생) 근찬(謹撰)하다. 김한희(18세 1890~1945, 장성군 황룡면 수산리 태생) 근전이서(謹篆而書)하다.
오석비(烏石碑) 전서(前書)는 嘉善大夫吏曹參判諱필之墓 配貞夫人廣州李氏 配貞夫人尙州金氏 祔 라 새겼다.
2005년(乙酉) 3월 15대손 김순식(19세 1929~2019) 삼가 짓고, 15대손 김여근(19세 1934년생) 삼가 세웠다.
②입구 좌측 하위에는 사간원헌납 김괴(金塊 5세)와 配 공인 단양우씨 합장 묘가 위치한다.

   
 

묘표(墓表) 전서(前書)는 奉直郞守司諫院獻納金公 恭人丹陽禹氏之墓라 새겼다. 오석비(烏石碑) 전서(前書)는 通善郞司諫院獻納諱塊之墓 配恭人丹陽禹氏 祔라 새겼다. 2005년(乙酉) 3월 15대손 김희수(20세 1932 ~2015) 삼가 짓고, 14대손 김여근(19세 1934년생) 삼가 세웠다.
③우측 중위에는 증통정대부 공조참의 김율(金慄 8세 ?~1600)과 配 숙부인 연안이씨와 숙부인 제주양씨 합장 묘가 위치한다.
④김필 선생의 아래, 좌측 상위에는 조봉대부 제용감첨정 김여숙(金汝璹 9세 1564~1648)과 配 영인 광산김씨, 영인 남평문씨의 묘가 있다. 이중 김여숙과 남평문씨는 합장되었고, 광산김씨는 우측에 위치하여 쌍분(雙墳)이다.
⑤우측 상위에는 증통정대부 좌승지겸 경연참찬관 김순(金洵 12세 1654~1703)과 配 숙부인 수원백씨의 쌍분(雙墳)이 위치한다.
⑥좌측 중위에는 증가선대부 호조참판 방호(放湖) 김희조(金喜祖 13세 1680~1752)와 配 정부인 기계유씨 합장 묘가 위치한다.
配 정부인 해남윤씨의 묘는 원모재 묘각 뒤 증조고 김척(10세 1597~1669)의 좌측에 자리한다.
⑦입구 우측 하위에는 소호(小湖) 김몽득(金夢得 14세 1712~1785)과 配 유인 문화유씨 합장 묘가 위치한다.

■ 김필(영광人 4세, 1426~1470) 선생 : 자는 화보(和甫) 또는 필옥(筆玉), 호는 설암(雪巖)이다. 父는 김경의(金敬義), 祖父는 김시(金時), 曾祖父는 장흥파 파조(派祖) 문경 김태용(金台用)이다. 配는 정부인 광주이씨와 상주김씨로 자녀는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김괴(金塊), 차남은 김몰(金圽)로 경주이씨 出이며, 삼남은 김극으로 상주김씨 出이다.

   
 

1447년(세종29) 22세 때 생원시에 입격하고 그해 식년시 문과급제 하여 예문관봉교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1452년 편수관 봉훈랑, 1453년 이조좌랑, 1454년 의정부사인, 1455년 평안도 귀성경차관 부정, 1456년 직수문전, 1457년(세조3) 32세 때 당사관 시험인 중시(重試)에 급제하고 1458년 사헌부집의, 1459년 경차관판군자감사, 지형조사를 지냈다. 1464년 호조참의, 1465년 이조참의를 지냈다. 1466년 경기도관찰사에 이어 1468년 경상감사, 1469년 중추부동지사 재임 때 예종이 승하하자 국장도감제조에 제수되었다. 이후 이조참판을 거쳐 1470년 가선대부 충청도관찰사겸 수군절도사로 재임 중에 병환으로 사임하고 장흥에 귀향하여 별세하였다. 기타 이조낭청, 사헌부감찰, 호조부정, 판사재감사, 성균관대사성, 찰리사 등 여러 등 관직 재임 기록이 확인된다. 특히 단종(재위 1452~1455) 때 1453년 계유정란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잠시 장흥에 내려와 은거하면서 정자를 짓고 후학들을 교육시켰다. 그 후 복직되어 17년 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45세에 병환으로 고향에서 여생을 마치자 후손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사인(舍人)’이란 벼슬 이름을 따서 사인정(舍人亭)이라 불렀다. 사인정은 장흥군 장흥읍 진흥로 891(송암리)에 위치하고, 1984년 12월 26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월봉(月峯) 김광원 선생 묘역 9기>
김필 선생 묘역에서 우측으로 250m 떨어진 능선에 월봉(月峯) 김광원 선생 등 이하의 후손 묘 9기가 자리한 묘역이 위치하고 있다.

   
 

①묘역 중앙에는 증이조판서 월봉(月峯) 김광원 선생과 配 정부인 경주이씨의 쌍분(雙墳)이 위치한다.
묘표(墓表) 전서(前書)는 成均生員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成均館祭酒五衛都摠府都摠管月峯金公墓表 贈貞夫人慶州李氏 祔라 새겼다.
묘갈명(墓碣銘) 전자(篆字)는 文簡公月峯金先生之墓碣銘이라 새겼다.
1803년(癸亥) 4월(孟夏) 문경(文敬) 송환기(은진人 1728~1807) 근찬(謹撰)하다. 1939년(己卯) 3월 상순 12대손 김한희(1890~1945) 근전이서(謹篆而書)하다. 12대손 김한성(1871~1941)이 세웠다.
오석비(烏石碑) 전서는(前書)는 贈資憲大夫吏曹判書諱光遠之墓 配貞夫人慶州李氏 雙墳이라 새겼다.
2005년(乙酉) 13대손 김해식(19세 1936년생) 삼가짓고, 13대손 김여근(19세 1934년생) 삼가 세웠다.
②월봉 김광원 묘소 뒤에는 장자 의금부도사 김귀년(金龜年 7세 1507~1597)과 부후(祔後)에 配 의인 청풍김씨 묘가 자리하고 있다.
③월봉 김광원 묘소에서 우측으로 50m가량 떨어진 아래에는 증손이자 김이(怡 8세)의 아들 장사랑(將仕郞) 김여진(汝珍 9세, ?~?)과 配 죽산안씨의 합장 묘가 자리한다.
④월봉 김광원 묘소 좌측 아래에는 의금부도사 김귀년의 넷째 아들 통사랑 김돈(金惇 8세 1537~1582)과 配 의인 수원백씨 묘가 위, 아래로 자리하고 있다. 묘표(墓表)는 崇禎後甲辰(1664년) 4월 24일 세웠다.
⑤통사랑 김돈 묘 아래에는 위, 아래로 묘가 자리하고 있으나, 비석이 없어 묘의 주인을 알 수 없다.

■ 김광원(金光遠 영광人 6세, 1478~1550) 선생 : 자는 언명(彦明), 호는 월봉(月峯)이다. 평강현감 김경의(金敬義)의 증손으로 祖는 이조참판 김필(金필), 父는 헌납 김괴(金塊)이며, 母는 참의 우효신(禹孝新)의 딸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조광조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1519년(중종 14) 생원ㆍ진사 양시에 입격하였으나 이해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화를 당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인 장흥(長興)으로 돌아왔다.
그 뒤 1521년(중종 16) 승문원습독관(承文院習讀官)으로 있으면서 안처겸(安處謙 1486~1521)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海南)에 유배되었다. 당시 기묘사화로 조정은 사림들을 몰아내고 오로지 남곤(南袞 1471~1527), 심정(沈貞 1471~1531) 등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안처겸은 시산부정(詩山副正) 정숙(鄭潚), 권전(權磌 1490~1521) 등과 함께 간신들을 제거하여 국세를 바로잡아 볼 것을 논의하였다. 이때 송사련(宋祀連 1496~1575) 등이 이를 듣고 밀고하여 일은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송사련의 밀고 문서에 습독관 김광원도 들어 있었으나 당시 조광조를 구하려하였던 정광필(鄭光弼)의 구원으로 해남에 유배되는 것으로 그쳤다. 그 뒤 1533년 유배에서 풀려나 벼슬을 그만두고 장흥으로 돌아와 후진교육에 힘썼다. 사후 1864년(고종1) 이조참판, 1867년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장흥군 예양서원(汭陽書院)에 배향되었다.

<당곡 종파 묘역 9기>
묘각 원모재 뒤편 산자락 30m 지점에는 쌍곡(雙谷) 김척(10세 1597~1669)과 配 보성선씨의 합장 등 이하의 직계 후손 묘 9기가 자리하고 있다.


2.묘각(墓閣)
부산면 내안리 497번지, 김필 선생 묘역 아래에는 묘각 원모재(遠慕齋)가 위치한다.

   
   
 

지금의 묘각은 1911년(辛亥) 내안리 내동마을 뒤 산자락에 있었던 서재 흥룡재(興龍齋)가 헐게되자 자재를 옮겨 5칸으로 중건(重建)하였다.

   
 

①원모재상량문은 1911년(辛亥) 5월 노포(老圃) 김정식(貞植 19세, 1858~1928) 선생 근지(謹識)하다.
②근제원모재운은 후손 춘파(春坡) 김정식(正植 19세, 1873~1960) 선생 근고(謹稿)하다.
③근차영모재운은 1969년(己酉) 7월 후손 귀암(龜庵) 김한상(漢相 18세, 1878~1974)과 후손 죽헌(竹軒) 김주환(周煥 20세, 1913~1996) 근고(謹稿)하다.
④월봉선생조시는 1961년(辛丑) 8월 후손 동곡(東谷) 김준식(俊植 19세, 1888~1969, 장성군 황룡면 수산리 태생) 선생 근서(謹書)하다.
⑤경차원운은 후손 초은(樵隱) 김익식(益植 19세, 1890~1968) 근고(謹稿)하다.
⑥경차원운은 후손 성헌(惺軒) 김승식(承植 19세, 1896~1979, 제2대 장흥향교 전교) 선생과 후손 화암(和岩) 김윤식(允植 19세, 1907~1995) 근고(謹稿)하다.
⑦근차원모재운은 1978년(戊午) 6월 중순 후손 서암(棲岩) 김화식(和植 19세, 1907~1983, 제21대 성균관유도회 장흥군지부회장) 근고(謹稿)하다.
원모재(遠慕齋)에서 매년 음 10월 15일 김필(金필), 김괴(金塊), 김광원(金光遠), 김귀년(金龜年), 김율(金慄), 김여숙(金汝璹) 등 6위 시제를 모신다.

영광김씨 당곡문중(종손 : 22세 김광전 1953년생)의 재원(財源)은 논 15두락, 밭 17두락, 임야 4.5정 가량이다. 장흥군 내 김필 선생 직계 후손들을 삼산파(부산, 어산, 건산)라 칭한다. 부산파종중은 부산면 내안리 내동ㆍ구룡리 용두ㆍ자미ㆍ용반리ㆍ장흥읍 향양리 월평ㆍ용산면 금곡리 태생이고, 어산파종중은 용산면 어산리 어동ㆍ인암리 태생이며, 건산파종중은 장흥읍 건산1·2구ㆍ영전리 영전ㆍ평화리 외평ㆍ평장리 금안 등 태생 후손들이 해당된다.

이밖의 김필 선생의 백부(伯父) 김경인의 묘는 실묘되어 강진군 도암면 덕년리 159번지 만년마을 팔랑산 아래 설단(設壇)하였다. 장흥 입향조인 부친(父親) 김경의와 백형(伯兄) 김찬(金瓚)의 묘소는 부산면 용반리 평강동(洞)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김경의 등 이하의 후손 23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 사우(祠宇)는 묘각 첨모재(瞻慕齋)와 용산면 모산리 12번지 용강사(龍岡祠)와 강당 월산재(月山齋)가 있다. 이중 월산재는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직계 후손들의 주요 세거지는 용산면 덕암리 원등마을, 모산리, 계산리 이다.

자문 : 관암(官巖) 김인환(20세 1932년생, 부산면 구룡리 자미마을 거주), 예산(禮山) 김기홍(21세 1939년생, 제11대 장흥문화원장, 부산면 내안리 내동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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