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흥 ‘청태전’이 재조명 부각되니, 이른바 녹차(綠茶) 수도를 자칭하던 보성에서 갑자기 ‘뇌원차(腦原茶)’ 사각형 떡차를 운운한다. 그러나 ‘고려 뇌원차’ 원산지로 보성을 말해주는 역사기록은 전무하다. 유물 물증이 발견된 일도 없다. 유습 확인도 없었는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아 복원했다는 것. 일부 보성사람들은 “고려중기 이래, 조선시대 내내, 현 보성 웅치면과 회천(회령,천포)면이 장흥府에 속했었다”는, ‘웅점所, 가을평所’의 연원을 차마 밝히지 못하고, 마치 ‘웅점所, 가을평所’가 원래부터 보성 땅에 있었던 것처럼 호도하고 있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보성>에도 ‘웅점所, 가을평(갈평)所’가 없음은 물론이니, 장흥府 13茶所마저 부정하려드는 보성쪽 행태가 안타깝다. 그들 ‘뇌원차’ 어원풀이도 가히 보성적이다. “다소 ‘가을평所’의 ‘갈’을 ‘갈대 노(蘆)’로 받은 후에, 그 ‘노원(蘆原)’이 ‘뇌원(腦原)’으로 전이되었다”고 단정해 버린다. 살펴보면, 우리말 ‘가을<갈’/ ‘갈라지다<갈’을 한자어 ‘갈대 노(蘆)’로 받은 사례야 꽤 있지만, ‘한자어 노(蘆)’가 ‘뇌(腦)’로 전음(轉音)되기는 어렵고, 그런 사례도 없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 등에 ‘장흥부 13茶所’로 ‘東15리, 웅점所/ 東31리, 가을평所’가 따로 있었던 바에, 현 장흥에서 더 떨어진 ‘東31리, 가을평所’ 위치를 ‘東15리, 웅점所’로 짐작되는 ‘현 웅치 약산마을’로 당겨 비정할 수는 없을 터. 오히려 당시 ‘장흥府 회령방, 천포방’ 관내이거나, 현 고흥군 쪽 ‘두원현’의 ‘가을평향(鄕)’에 중첩될 가능성이 크다. 옛 시절 ‘두원(荳元)’ 역시 조선 세종 때 ‘흥양현(縣)’으로 이속되기 전에는 장흥府에 속하였다. <신증>에도 장흥府 5속현으로 ‘수녕, 회령, 장택, 두원, 도양’이 있었다. ‘뇌원차’는 고려초 문헌에 60여년간 나타났던 사각형 고형茶인데, 허흥식 교수는 “현 고흥군에 속한 ‘두원현’에서 생산되고, ‘뇌원(腦元)’은 ‘두원(荳元)’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뇌원’의 腦와 ‘두원’의 荳는 ‘머리腦/머리頭,荳’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는 ‘두원’ 茶所가 왜구 침탈에 밀려 ‘회령’을 거쳐 ‘장흥 보림사’ 쪽에 정착한 것으로 짐작한다. 그 어원을 ‘용뇌향(龍腦香)’에서 찾기도 하지만, ‘향가(鄕歌) 사뇌가(詞腦歌)’의 ‘뇌(腦)’처럼, 중국을 떠받들며 자신을 낮추는 사대적 표현으로 ‘동쪽지방, 향(鄕)을 의미하는 뇌(腦)’에서 유래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중국납공과 왕실의례 차원에서 고려 국산차인 ‘뇌원차’ 역할이 상실되면서 그 명칭만 고려초 문헌에 남게 된 반면에, 실제적 전통은 ‘청태전 돈차(錢茶)’ 떡차 로 우리 장흥府 현지에 오롯이 이어온 것이리라. 그런데 보성에서는 이제와서 ‘청태전’ 돈차에 유사한 사각 떡차로 이른바 ‘뇌원차’를 복원했다면서 ‘웅치면 약산 약(藥)찜이茶/약점차’로 포장하고 나선 것. 그러나 그럴 바에는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에 새겨진 ‘다약(茶藥)’ 부분과 장흥府 기록으로 확인되는 ‘장흥 웅치방 웅점所 다소’의 문화적 승계를 표방함이 솔직할 것. 부자연스러운 사정은 또 있다. 현 보성 ‘회천 양동’을 이른바 ‘포곡소’에 연결시키며 역시 ‘뇌원차’ 산지라 주장한다. 보성이 그간에 늘 자랑해오던 녹차(綠茶)는 발효차도 아니고 떡차도 아니다. 그 녹차밭 대부분도 1940년경 일본기업의 시배로 조성된 것이고, 심지어 ‘양동 마을 녹차’도 1969년경 소득증대사업으로 일본 ‘야부기다’ 품종을 수입하여 20헥타를 확장했다고 <보성군 마을유래지> 스스로 말하였다. 그 시절 사람들이 과연 ‘뇌원차’를 들어보기나 했을까? (기왕에 지적하면, ‘보성 포곡소’는 다른 지역에 있었을 것. ‘그 회천 지역이 장흥 땅이던 조선시절’에 작성된 <장흥읍지,정묘지>에 ‘회천 포곡소’는 물론 없었다)

2. 원래 말하려던 주제, 장흥 ‘청태전’과 茶, 전통 다전(茶田)에 관한 장흥 현지 기록은 어떠할까? 관련된 자료를 정리해본다. 식민시대 日人들의 조사기록에 상관없이, 장흥 詩人들은 ‘一串(한꼬치,한꾸러미)茶’와 ‘茶餠(떡병/裹(꾸러미포장과)’를 말했었다. ‘一串茶, 茶餠’은 ‘청태전’ 돈차의 표상적 표현일 것.

1)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 창성탑비(884년)/ “茶藥(다약)”
2) 원감국사(1226~1293)/謝금장대선(金藏大禪)惠新茶 (‘장흥 금장寺대선’에게)
3) 이색(1328~1396) /迦智英公(가지영공)惠茶 (‘장흥 가지寺’인지 확인 필요)
4) 유배객, 영천 신잠(1491~1554) / 투다(鬪茶), 다구(茶甌), 시다(試茶)
5) 前장흥판관, 취흘 유숙(1564~1636) - 贈別 金서촌이경之관산(冠山) (1612년, 신임 장흥부사에게) - 제9수(詠菜茶之法..) - 雨前(우전)須采滿山茶
6) 장흥 우거(寓居)인, 지암 박이달(1577~1621) - 啜(철)罷茶盃成午睡
7) <장흥지,정묘지, 1747> / 고읍방, 잡세, 雀舌茶/ 회령방, 민역(民役), 雀舌
8) 존재 위백규(1727~1798) - 茶罷(다파)晴窓醒午睡
9) 우곡 이중전(1825~1893) 茶歌 - 雀舌(작설)含香半吐開
10) 송포 정노수(1877~1965) - 頃以一串茶呈景晦 (‘경회 김영근’에게 준 시)
11) 경회 김영근(1865~1934) 惠茶 - 猥將茶餠(裹)餉殊隣 (‘송포’에게 답한 시)
12) 금계 이수하(1861~1931) 詠茶 - 金山靈茗勝金光 (‘장흥 금장산’의 靈茗)
13) 화산 이교석(1874~1945) 烹茶/ 성재 임태주(1881~1944) 訪茶田
14) 항와 문충렬(1878~1960) 和옥천자茶歌 -月下烹茶(팽다)
15) 최계원, <우리 茶 재조명(1983)>/ 내 고장 茶 향기(장흥문화 7호,1985)
16) 송용석, <보림寺 지역 土産 茶田과 전통다업 연구 (1989년, 석사논문)>
17) 김창윤, 잊혀져 버린 돈차, 청태전 (장흥문화 22호, 2000)
18) 김석중, ‘청태전’을 아십니까?(2006)
19) 위성, 장흥 단차(團茶)의 흔적 (장흥향토학연구 1호, 2010)
20) 허흥식, <고려 茶와 남전 불교,2017>, 장흥 보림사와 茶생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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