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광복”의 시대는 언제인가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세와 함께 지난 8월 15일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가 화제다. 기념사의 내용을 둘러싸고 여야의 공방과 함께 관련 단체들의 성명이 줄을 잇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를 친일 행태를 언급하며 보다 강력한 친일 청산을 외친 김원웅의 기념사에는 과격함이 묻어있을지언정 광복절 기념사이기에 허락되는 부분도 있다.
“광복”은 사전에서 “잃었던 나라나 국토를 다시 회복함”이라고 그 뜻을 정의하고 있다. “광복”의 정의를 되짚어볼 때 등장하는 단어가 “해방”이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사전적 의미를 제시하며 “광복”과 “해방”에 능동적 수동적 의미의 차이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해방되었다”라는 표현이 “해방했다”라는 표현보다 친숙하고 어색함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게 이 단어의 성질을 가늠할 수 있다. 온전히 자력으로 어떠한 속박이나 굴레를 벗어던지고자 하는 과거 우리 민족의 노력을 “광복”이라 지칭하고자 하는 마음을 곱씹어 보면 “광복”이라는 표현의 무게감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그 옛날 “광복”의 발목을 붙잡고 더디게 했으며 현재도 그 뜻을 부정하려 하는 세력의 의도 또한 이 지점에서 명확해진다.

지극히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주권 회복을 위한 노력과 그 결과를 강조하는 “광복”의 참뜻은, 돌이켜보면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1981년  8월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연합국의 승리와 일본의 패전이라고 하는 민족외적인 상황이 8·15광복의 또 하나의 큰 결정적 요인”이라 하며 “우리 겨레 단독의 힘으로 해방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훨씬 더 비싼 대가의 지불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라며 “해방되었다”와 유사한 맥락을 암시하는 내용을 축사에서 언급했다. 1988년 제4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광복까지의 고난과 그 성취보다는 88서울올림픽 개최와 국민소득 1만 불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제시하는데 그쳤다. 

1993년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전 대통령 시대에 들어서야 “제2의 광복운동”이라는 표현으로 진지하게 “광복”의 의미를 짚어보기 시작했다. 문민정부야말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위해 중시한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가치를 이어받은 정부임을 강조하며 “변혁과 개혁”이라는 “제2의 광복운동”을 통해 과거와는 다른 대한민국으로의 변화를 주도, 민족사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제 대내외적으로 완전한 광복을 외쳐보자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복 이후 찾아온 민족의 비극인 “분단”과 남북한의 관계 개선을 통해 또 다른 “광복”을 꾀했다. 외부의 힘에 의한 분단이었기에 당사자 간(남과 북)의 적극적인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해결책임을 제시하고 또 실현하려 했다. 참여정부가 분단을 축으로 하는 광복의 의미를 재확인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의미의 범주를 확장하려 했다. 2003년 제5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광복의 뒤에 있는 슬픈 과거와 함께 “광복”을 둘러싼 기성세대의 부끄러운 행보를 반성함과 동시에 미래 세대를 위한 안보 정책을 제시했다.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를 구축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광복이라는 제언이 더해진 축사였다.

이렇듯 축소와 확장을 거듭해 온 “광복”의 개념이지만 이를 그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우리는 올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75년이 지난 지금에도 “친일 잔재의 청산”의 강한 외침이 또다시 대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발언이 일부 세력에게 공격받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
되돌아보면 광복을 자리라는 것은 말과 문장의 유희만 춤추었을 뿐 행동은 늘 결여되기 마련이었다.

75년이 지나도록 논란만 커져가고 광복절 행사 때만 되면 이슈가 되었던 광복, 광복, 광복! 광복절 노래에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했건만 우리가 우리의 자주적인 토양을 언제 가슴과 육신으로 만져볼 수 있었으며, 우리가 우리의 바다와 어울려 신명난 춤을 춘 기회가 있었던가. 75년의 광복절 날, 광복회장이 대한민국을 광복하라 외치니 또 사방에서 들리는 갖은 곡절과 음해와 귀곡성들에 진력이 난다.

일제잔재든 친일잔재든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을 딛고 일어나서 우리 대한민국을 광복하라 하며 거듭날 수 있는 그래서 당당하고 정연하게 세계를 향해서 35년 일제강점기 그 치욕의 역사를 차원 높은 색깔과 향기로 분출해 낼 시대와 기개는 없었을까. 그 시기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오늘 우리가 당당하면 가능하고 우리가 정연하면 가능하고 진정한 대한국민 국민이면 가능했을 광복을 또 주문처럼 거론하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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