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이라는 지붕아래는 집행부와 장흥군 의회라는 두 가족이 살고 있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결코 나라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다. 역사 속 나라는 내부적으로 분열이 일어나는 대립사회로 인해서 무너지는 것이고, 그 때 외부로부터 공략이 시작되면서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정복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패권국가들은 먼저 일정한 기간 동안 그 대상 나라 등, 안으로 반간계(反間計)나 혼란 상황을 먼저 펼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내부 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면 제아무리 나라 밖의 원수들이 별짓을 다 한다할지라도 우리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라는 점이다.

 군민들은 집행부와 의회의 화합을 바란다. 강한 지방정부로의 길을 열기를 갈망하여 채찍과 당근의 전략도 구사한다.
자기 사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여전히 삶의 흐름은 정상적일 수가 없다. 잘 되어서는 안 되는 자들이 부귀영화를 계속 누리며 지역사회를 흔들어 댈 수도 있다. 잘 살고 잘되어야 하는 인물들이 여전히 힘을 갖지 못하고 길이 열리지 않으면 어떻게 장흥군과 의회와 함께 하는 군민들이 많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자치단체의 힘이 사회 곳곳에 실제적으로 미칠 수 있는가? 형식적으로 흐르고, 이것이 우리 사회 여전히 막히고 돌아가지 않는 현실 실체를 군수와 의원들의 통합된 합의속에 용트림하는 힘의 다스림으로부터 나오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분열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브라함 링컨이 1858년 상원의원에 후보시절 연설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말이다.
그는 1860년 미국대통령에 당선된 후 1863년 11월 케티즈버그에서 노예해방을 선언하면서 약2분의 연설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아직도 민주주의의 지침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고 하지만 다수결이 틀릴 때도 많다. 우리는 이것을 대중성동적 중우주의라고도 한다. 100명이 모여도 한 사람의 선각자보다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소수의견은 항상 다수의견에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로 알고 실행하고 있다. 소수의견의 가치와 보호방법을 다수가 찾아야 하는데도 다수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많다. 다수는 소수 의견을 설득하여 이해시키고 화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소수는 민주주의 의결수단인 표결에 따르는 것이 순리다. 모두들 힘은 쓰라는 것이지만 나누라는 요소를 잊으면 문제해결이 어렵게 된다.

장흥군이나 장흥군의회는 ‘분열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는 명언을 깊이 새기고 부족한 점을 살펴 군정을 이끈다면 더욱 발전할 것이다.
장흥군은 군수와 실ㆍ과장 팀장 팀원 간 불협화음은 장흥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군수는 부하직원 통설은 덕치로 리드해야 한다. 조직에서의 불화는 대부분 맡은바 직분을 다하지 못한 직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이들이 분열의 씨가 되고 있으니 반성하고 각성해야 조직도 자기도 살 수 있다. 하나 된 조직사회로 가는 길에 나의 희생과 봉사정신을 길러야 한다.
일사천리는 장ㆍ단점이 있지만 결정된 정책은 협심 단결하여 한마음으로 추진하면 성과도 좋고 발전도 뒤 따를 것이다. 장흥군 공직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장흥군의회를 보자. 7명 의원으로 구성된 장흥군의회를 두고 일곱 빛 갈 무지개라고들 한다. 7명 모두의 의견은 사안별로 다른 것은 당연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후반기 의장 선거의 보복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일, 동료의원과의 속 다르고 겉 다른 행동과 언행불일치도  있지만 토론문화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싶다. 찬ㆍ반에는 명확한 논리도 중요한데 객관적이고 검증되지 않는 논리로 집행부를 감시ㆍ견제하려다 보니 명분도 약하고 군민의 비난도 받는다.
집행부나 의회가 합심하여 잘하고 있는 일도 많지만 언론의 특성상 비난의 붓을 들다보면 서운한 점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장흥군이나 장흥군의회나 군민의 입장에서 보면 한 지붕 한 가족이다. 지금처럼 집행부와 의회가 협상테이블을 멀리한다면 앞에 언급한 ‘분열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라는 링컨 대통령의 말씀처럼 장흥군이 바로 설 수 없다. 피해는 군민의 몫이 된다. 정치를 가능성의 기술이라고 하는가 하면 불가능의 기술이라고 주장하는 정치가도 있다. 장흥군과 장흥군의회의 화합을 군민이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재정자립도 최하위의 장흥군이라 하더라도, 좋은 정치와 좋은 장흥을 꿈꾸며 배고파하는 이들에게 허기를 잠시 때우는 양식이 되는 정치보다는 미래 희망의 정치를 펼쳐 소멸위기의 장흥이 아닌 성장도시 장흥을 소망한다. 지금은 군민들이 워낙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 "집행부와 의회는 이 시기에라도 연대와 협력을 보이는 것이 국난 앞에 신음하는 장흥군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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