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언사운(七言四韻)Ⅲ                   /국역: 정민(한양대 국문과교수)

●삼우당을 찾아갔다가 주인은 못 보고 회포를 쓰다
尋三友堂不見主人書懷

먼 나그네 삼우당(三友堂)을 가만히 찾았더니 
遠客幽尋三友堂
주인은 외출하고 책상만 고요하다. 
主人初出靜書床
연꽃 방죽 비 씻기어 가을 그늘 깨끗하고 
荷塘雨洗秋陰淨
대밭엔 바람 높아 오후 볕이 서늘하다. 
竹場風高午景凉
옛날 너무 즐겁던 일 갑자기 떠올리매 
忽憶昔年歡意極
오늘 이별 아득함을 견디지 못하겠네. 
不堪今日別懷長
그래도 흰 머리의 거문고 노래 듣나니 
猶聽白髮琴姑唱
한때는 이원(梨園)에서 으뜸가는 꽃이었네. 
曾擅梨園第一芳
◀서울에서 떠돌다 호남까지 온 늙은 기생이 있었는데,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삽상하니 여태도 젊은 날의 흥취가 일어나는 지라, 내가 듣고 쓸쓸함을 달랬다.

●해령에 올라-부안에 있다
登亥嶺[在扶安

세모라 강성에서 사람은 근심 겨워 
歲暮江城愁殺人
서쪽 고개 멀리 올라 잠시 마음 달랜다. 
遠登西嶺暫娛神
바람 구름 눈에 가득 하늘 끝에 닿아있고
風雲滿朢通天極
연기 불 마을 잇고 바닷가를 치누나. 
烟火連村撲海濱
푸릇누릇 이삭 구름 사방 들에 가득한데 
稼雲靑黃堆四野
배가 오자 한 두 사람 동쪽 나루 드는구나. 
船來一兩入東津
돌아가 다시금 푸른 솔을 꺾으리니 
將歸更折蒼松樹
봉래산 향해 가서 친한 이를 만나리라. 
擬向蓬丘遭所親

●실상사 백운각에 제하다
題實相白雲閣

사방 산이 하늘 둘러 푸른 빛이 자옥한데
四嶂撓天簇簇靑
긴 시내 굽이굽이 붉은 기둥 둘러있네. 
長川曲曲繞朱楹
바위 구름 다 지나자 나무에선 바람 일고 
巖雲去盡風生樹
골짝의 비 막 내리자 잎은 뜰에 지는구나. 
洞雨鳴初葉下庭
이날에 호계(虎溪)에서 좋은 구경 다했으니 
此日虎溪窮勝賞
어느 때에 왕안석은 임경(林?)을 일으킬꼬.
何時安石起林埛
산승은 차 마신 후 잠이 한창 깊어 있어 
山僧茶罷方濃睡
시 짓느라 고생하는 날 또한 비웃으리.  
笑我思詩亦苦生

●입춘에 내린 눈-이십운배율
立春雪[二十韻排律

갑자년 해 바뀌어 오늘이 입춘이니 
甲子寅賓是立春
작은 창서 눈을 보고 이른 새벽 일어났지.
小牕看雪起凌晨
허공 멀리 제멋대로 은꽃 비녀 흩어지고 
連空恣散銀花鈿
동산 가득 바야흐로 백옥 방석 깔렸구나. 
滿院方鋪白玉茵
낙엽은 답 쌓여서 가벼이 볕 피하고 
落樹堆堆輕避旭
주렴 뚫고 부러 자주 사람을 찾아보네. 
穿簾故故巧尋人
토끼가 약 절구질 재촉하여 옥가루 무성하고
兎催藥杵繁香屑
용이 주궁(珠宮)서 싸우면서 흰 비늘 벗겨내는 듯. 
龍鬪珠宮剝素鱗
인간 세상 하루 아침 땅 잃었나 의심하니 
下界一朝疑失地
청도(淸都) 만리 길에 홀연 길을 잃겠구나. 
淸都萬里忽迷津
희디 흰 염전에 소금이 쌓인 듯이
皚皚淮甸堆鹽徧
아득한 시내 버들 솜을 털어 놓는 듯이. 
漫漫溪楊放絮均
눈 쌓인 대 그래도 마디 꺾임 견딜 생각 
壓竹猶思堪折節
솔가지도 하마 벌써 제 몸을 못 이길 듯. 
堆松已欲不勝身
깊은 강도 얼어붙어 유리세계 아득하고 
深江凍合琉瑀逈
뭇 묏부리 모가 뾰족 창검이 늘어선 듯. 
列岳稜尖劒戟陳
마을과 집들에선 개 닭 소리 끊기었고 
籬落于家鷄犬斷
시내 벌판 바라봐도 길이 모두 막히었네.
川原一朢道途陻
하늘이 욕심 적어 보석을 남겨준 듯 
圓靈少欲初遺寶
대지가 재주 많아 보배를 파는 듯이.
厚媼多才謾市珍
가랑비 먼저 옴은 풍년의 조짐이니
表瑞豐年先霢霂
백성들아 추위 빌어 얼굴 찌푸리지 말라. 
祈寒黎庶莫嗟嚬
강 매화는 믿음 있어 남쪽 가지 눈이 트니 
江梅有信南枝亞
바다 나그네 푸진 마음 고향생각 잦아진다. 
海客饒懷北首頻
패교(橋) 위서 나귀 타니 시가 막 되려하고 
上孤驢詩欲就
산음(山陰)의 작은 배는 흥취가 새롭구나. 
山陰小艇興方新
맑고 차니 차 달이는 물로 쓰기 알맞겠고  
淸寒好取煎茶水
얼고 떫어 술 거르는 두건 쓴다 꾸짖으랴?
涷澁將呵漉酒巾
자고새 향로 향 사르니 연기 글씨 향기롭고
香爇鷓鴣薰篆筆
앵무잔에 더운 술도 시인 입술 못 녹이네.
暖斟鸚鵡凍唫脣
햇볕 드는 매화 길엔 마른 이끼 안쓰럽고 
晴尋梅逕憐苔瘦
흰 빛 비친 거문고 술통 학발(鶴髮) 부모 위로하듯. 
白映琴樽訝鶴親
아스라한 산하는 분칠 그림 뽐을 내고
縹緲山河誇粉繪
들쭉날쭉 성궐에는 은구슬이 반짝반짝. 
參差城闕耀珠銀
군생(群生)들아 다시는 요염한 자태 다투지 말라
羣生不復爭妖態
만상은 마침내 참됨으로 돌아가네. 
萬象終歸混一眞
이로부터 현명(玄冥)은 옛 더러움 말끔 씻고 
自是玄冥除舊穢
태호씨(太昊氏) 좇아 보며 새로운 인(仁) 선포하리. 
從觀太昊布新仁
기쁘게 혼자서 유란곡(幽蘭曲)을 읊조려도 
夷猶獨詠幽蘭曲
가난한 살림이야 어찌해 볼 도리 없네.                    ▲/정리,편집=昊潭

▲영화 “천년학” 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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