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대 대통령 선거의 열기가 한층 뜨겁던 시절 드라마 작가 신봉승 씨가 기상천외한 책 한 권을 상재했다.
「세종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다」가 그 제목이었다. 책명의 호기심에 끌려 펼쳐 봤더니 내용이 매우 흥미롭고 공감이 갔다.

조선 왕조 5백년 동안 모두 27명의 임금과 그 임금을 보좌한 7백명 안팎의 고위 공직자가 있었는데, 이들을 한국의 현실정치 한가운데로 불러낸 상황 설정이다. 소설 속에 또 하나의 가상 세계를 설정하고 이 가상을 실제 역사의 현실과 일치하도록 꾸민 서사 전략인 셈이다. 이로써 작가는 가상과 현실의 그림을 다양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세종에게 대통령직을 주고, 명현으로 이름 높은 선비들을 각기 행정부의 수반으로 임명한 것이다.
세종에게 대통령을 맡긴 것은 어느 모로나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 행적이 익숙지 않은 이들도 보인다. 책에서는 왜 그가 거기에 적합한 인재 인가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평가가 수반되어 있다.

국무총리는 세종 치세의 황희가 아니라,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이르는 왕 밑에서 영의정을 지낸 오리 이원익이다.
기획재정부에 퇴계 이황, 행정안전부에 율곡 이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연암 박지원, 지식경제부에 다산 정약용이 뽑혔다. 외교통상부에 개화승려 이동인, 통일부에 화친파 지천 최명길이 이름을 올렸다.
특임장관 백사 이항복, 검찰총장 정암 조광조, 감사원장 남명 조식 등의 면면을 보면 저자 혼자만이 그냥 알고 있는 대로 불러올 수 있는 인물의 등용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빈곤했던 조선 왕조가 5백 년 동안 왕권을 유지한 힘은 양식을 지닌 지식인들이 나라를 경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30여년의 세월을 두고 조선 왕조의 역사를 연구하고, 10여년이 가깝도록 「조선왕조실록」을 등록 하였으며 그 5백년 전체를 조명하는 대하 TV 장편드라마 「조선왕조 5백 년」의 집필자 이기에 가능한 인사 실험이다.

저자는 이 가상 정부 인물들의 공통점을 두고, 모두 왕의 잘못에 대해 목숨을 걸고 직언을 했던 올곧은 선비정신의 소유자라고 덧붙였다. 가까스로 돌이켜 보면 현재 영어의 몸이 된 실패한 한국의 두 전직 대통령 휘하의 각료들이 들었을 때 부끄럽고 아픈 추억이 아닌가?
한 문필가가 역사의 기록과 그 기록에 남긴 선현들의 행장을 바탕으로 보여준 이 드림팀의 조각(組閣)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 방향에 유익한 본 보기가 될 만하다. 그런 취지에서 감히 문재인 대통령께 대체 역사의 교훈이 될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역대 정부에서 언제나 겉치레 다짐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인사 스타일 역시 그 속성의 그믈을 벗지 못하고 별반 달라진 게 없어 참신했던 촛불정신의 기대를 실망시켰다.

군주는 인재를 정확히 쓰려면 업적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특정인을 편애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을 편애하면 백 사람이 멀어지는 이치다. 작금의 한국 정치현장에 별종 친문 친노 라는 세력들이 설치는 역겨움을 목도하는 것도 식상이고 피곤하다.
더불어 정부 고위관료 임명에 앞서 후보자의 옥석을 가리겠다는 국회 인사 청문회가 시종일관 감싸 돌고 트집잡는 공방의 싸움터로 본질을 흐리게 하여 그 뒤끝마다 허탈하다.
거기다 한 발 더 나가 위법한 장관의 재판 결과를 놓고 사법부의 정의마저 부정하며 정치권력의 무기로 재단하겠다는 사법개혁의 발상 또한 아전인수요 넌센스다.

지도자의 근본을 세종 에게서 배워야 한다.
고 신봉승 작가의 고향은 그의 행보와 어울리는 선비의 고장 강릉이다. 강릉하면, 예로부터 효자 효부는 물론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 허균, 허난설헌 등 문장과 덕행이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전통 있는 고장이다.
그런 토양과 정서의 영혼을 녹여 후세들을 깨우치게 하려는 집념을 보였던 원로 역사학자인 그는 애석하게도 이 책을 펴낸지 불과 5년 후 2016년 82세의 생을 마감하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어쩌면 현실에 의미 있는 질문만을 던져놓고, 아직 다 꺼내지 못한 만 권의 전설을 묻혀 버린 것 같은 아쉬움을 남긴 채.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