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문학의 별 김석중 선생님 소천 소식을 듣고 눈앞이 막막합니다.
무엇이 바빠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연둣빛 봄날을 마다하시고 가십니까.
영혼의 모음 같다던 뻐꾸기 소리를 더 듣지 않으시고 가십니까.
선생님을 그리는 모두는 목이 메고 저도 목이 멨습니다.
선생님의 마지막은 이승의 옷을 벗고 미래의 새 옷을 입으셨습니다. 선생님찻물 올리고 향을 사르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죽음은 생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의 시작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선생님께서는 “온 몸으로 살고, 온 몸으로 죽어라”는 어느 중국 선사의 말씀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일생이 그러합니다. 선생님은 민주화 운동을 하시면서 등대지기가 되겠다는 꿈도 꾸어 보고, 30여년의 기나긴 세월동안 장흥문학의 탑을 손설 수범 세우시면서 인간 실존에 대해서 괴로워하셨습니다.
야속한 세상은 선생님이 살아야 하는 번지수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문학에 길을 걸으시면서 전국의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시면서 역경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절감합니다.
현대문학에 소설을 발표하시어 문명을 떨치시기도 하고,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한강, 김선두, 한일문화교류 등 문화인들과의 교류에 간여하신 공이 큽니다.
그런데 장흥의 문인들과의 사사로운 사건은 선생님이 사시는 동안 잠 못 이루게 합니다.
이기적이고 편파적인 덜 자란 참새 때들의 관념적인 짹짹 메아리는 선생님에게 단장의 아픔을 주기도 했지만 모두를 품고 생활하신 선생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답니다.
어떤 활동도 인격 형성의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려 봅니다.

문림의향 장흥의 앞날이 걱정도 됩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내면을 조금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영화 ‘서편제’를 보시면서 맑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소년기부터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고독을 견디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 고독을 거름 삼아 깨달음의 꽃을 장흥문학발전에 피우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더러 선생님을 수필 쓰는 문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에게 글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선생님께서 하루에 한두 시간 글 쓰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장흥의 문학발전을 위하여 정진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선생님이야말로 장흥인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말없이 보여준 분이라고 믿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맑은 모습 속에 장흥문학이 다시 태어나는 길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부끄러운 후배입니다.

다만,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후배의 모습을 보여 작가님의 가시는 발걸음이 가볍도록 발원하겠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우리들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미리 써 놓았던 유서 한 대목을 듣고 선생님의 인생사 정신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신을 한국의학발전을 위하여 전남대학병원에 연구용으로 기증하셨다는 누구도 힘든 결정을 생에 내리실 때의 심정을 어찌 글로 표현 될 수 있겠습니까? 죽음 앞전에서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루고 조문을 받지 말라고 하신 유언을 듣고 목이 메었습니다. 선생님을 아시는 모든 분들이 한없는 존경을 보냅니다.
내생에도 다시 태어나 장흥문학을 더 사랑하고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고 하셨으니 긴 세월이라도 기다리겠습니다.

선생님! 가시는 발걸음 부디 가벼우소서.
이청준 선생님도 만나시고, 착한 사람이 사는 별나라에 가시어 소원을 이루소서.
장흥에 다시 오시어 못 다한 일들 이루소서.
선생님의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고통이 사라진 그곳에선 행복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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