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인상을 만드는 디자인

필요한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긴급한 상황은 아니기에 현관문을 열기 전 어느 가게로 향할까 잠시 생각했다. 사거리에 있는 가게 하나가 떠올랐다. 심플한 내부 인테리어가 참 괜찮다고 생각하던 곳이었다. 꼭 그 가게에서 사지 않아도 되지만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공간에서 쇼핑하는 것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이기에 3분 정도 더 걷기로 했다.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가게 선반에는 내가 사고 싶은 상품이 여러 종류 진열되어 있었다. 늘 그렇듯 성분, 원료, 원산지, 기능, 무게, 제조기업, 가격 등등을 비교했다. 대부분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서 결국 괜찮아 보이는 디자인의 것을 사기로 했다.

선택에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하는 무언가가 없을 때 우리는 늘 디자인이 괜찮아 보이는 것을 고른다. “왜 이거 샀어?” 라는 가족과 친구의 질문에 딱히 이거다 싶은 이유가 없을 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디자인이 좋잖아.” “왜! 예쁘잖아” 이렇듯 디자인은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우리의 지갑을 열게 한다. 옷, 가방, 구두와 같은 패션 소품은 물론 가전제품 또한 멋진 디자인으로 무장해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최근에는 식품 또한 멋진 디자인으로 포장된 제품이 많다. 둘 다 신선하고 맛있다면 누구라도 깔끔한 포장 디자인의 제품을 바구니에 넣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것을 고를 때 디자인은 더욱 중요해진다. 상품의 성능이나 맛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데 좋아 보이는 디자인을 고르는 이유는 뭘까?

사람의 첫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첫인상이 결정되는 시간은 고작 5초. 5초 만에 굳어진 첫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60번 정도의 만남을 거듭해야 한단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첫인상이라면 제품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건 무엇일까? 더 이상 비교할만한 부분이 비슷비슷한 제품 둘을 두고 고민하는 누군가가 첫인상으로 결정내리겠다 마음먹으면 그때의 첫인상이란 디자인이 아닐까? 그렇다면 장흥군은, 그리고 우리 장흥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어떤 첫인상을 소비자에게 안겨줄까?

●도시디자인 도입으로 장흥의 이미지를 확고히 해야 할 때

둘러보면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상품 제작의 범위를 넘어 다양한 장면에서 사용되고 있다. 도시 디자인이라는 표현도 그 중 하나다. 흔히들 도서관이나 공원과 같은 공공시설의 위치부터 시작해 건물의 크기와 건축 양식 등을 계획하는 것을 도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공간을 배치하고 가꾸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찾아오는 이에게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것 또한 도시 디자인의 한 측면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지역의 특징과 이점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도시 디자인이라 하겠다.

2013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는 광주만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제품 패키지(쌀)부터 쓰레기봉투에도 광주만의 색을 덧 입혔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모두 다 상용화된 것은 아니지만 도시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도라 할 수 있다.

쓰레기봉투에도 디자인을 입히려는 발상! 지금의 장흥에 이런 과감함이 필요하다. 강렬한 첫인상을 확립하는 동시에 장흥만의 색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도시 디자인의 도입은 그 무엇보다 절실하다. 우리군의 기본 디자인을 정하고, 이를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공서의 안내판은 물론 시내에 설치된 안내판과 책자에도 기본 디자인을 적용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디자인을 기본 바탕으로 여기에 여러 요소를 더하면 전체적인 디자인에 일정한 형식과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디자인은 보는 이에게 안정감과 정돈된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하면 처음 장흥을 방문하는 누군가가 각기 다른 모양새의 안내판을 마주하는 것보다 기본 디자인을 바탕으로 하는 안내판과 표지판을 접할 때 그 공간에서 느끼는 안정감이 더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디자인의 중요성은 기업가는 물론 소비자도 알고 있는 기본 상식 중 하나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이 기존의 디자인을 더 나은 것으로 쉽게 바꿀 수 없는 이유는 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방의 작은 기업일 경우 그 부담은 더 커진다. 장흥군만의 기본 디자인을 제작해, 이를 기본 골격으로 제품 패키지나 포장지 디자인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비용 문제로 디자인 패키지를 제작하지 못했던 기업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기본 디자인으로 통일된 패키지(포장) 이미지는 장흥군이라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기준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과거를 떠올려 보자. 합리적인 경제적 이유보다 다른 것보다 포장지가 예쁘다는 이유로, 또는 익숙한 브랜드 로고라는 감각에 의존해 결정짓곤 했던 우리의 선택 그 한 가운데 늘 디자인이 존재했다. 감각이 이끄는 선택의 순간을 떠올리기 힘들다면 옛 조상들의 한 마디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보기 좋은 떡”이라는 첫인상을 발판으로 “먹기 좋은 떡”이라는 위상을 구축하기 위한 장흥군의 과감한 디자인 행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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