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萬歷庚申春 余屨及此 有僧道慧其名者 乃重創主也 謂余曰 金華冠乎浮槎 上菴甲於此山 昔廢今成 庶息遊士 禪宮銷歇之歎 以竹爲盖 可見騷人 因過半日之閑 記成敗之由 爲後人之鑑如何 曰記也者 必是文價雷鳴 製作神明 詞承韓柳 筆師王趙然後發俊彩於言下 挑勝狀於筆頭 悅人之耳目 淸人之意思也 如不然 則何以記爲 曰凡於人事 貴名實之相符 善文質之得宜 記者 記其事蹟而已 何必以驚風之筆 泣鬼之詞 浮譽於其間哉 於是辭不獲已 乃曰大塊弘莽 人物駢闐 成則有毁 毁則有成 成是毁兆 毁乃成萠 然則成亦一無窮也 毁亦一無窮也 成敗之所以固難得以形容矣 但以山金華而菴額上者 金本貴而添花 則取其山之明秀也 菴不下而加上 則以其菴之最高也 門對蒼江 扁舟徃復於朝暮 軒臨白雲 猿鶴爭喧於午夜 山間四時變態兮 彷彿東林之勝槩 天外千峯嵯峨兮 可配南山之諸域 雲多地靜 水澗人稀 閑中日月 物外乾坤 樂吾樂而逍遙 盡吾生以徜徉 舍此奚適也
 
출전⟦詠月堂大師文集⟧

❍금화산 상암기

만력 경신년(광해12년1620) 봄에 나는 짚신을 신고 이곳에 이르자 그 이름이 도혜(道慧)라고 하는 납승이 살고 있었으니 바로 중창 주(重創主)였다.
나에게 일러 말하기를 ‶부사(浮槎 전라도 낙안)에서는 금화산이 으뜸(冠)이고 이 산에서는 상암(上庵)이 첫째(甲)다.″ 라고 하며 옛날에 무너진 암자를 이제야 완성해 많은 여행자들이 결딴이 난 절간에서 쉬어간다고 탄식했다. 대나무를 덮어씌워 시인(騷人)들이 볼만 하다고 했다.
이곳에 들러 납자를 만나 얘기하다 덧없는 인생은 반나절의 한가로움을 얻어서 성패(成敗)의 유래를 기록하여 후인들의 거울로 삼고자하니 어떠한가.
기록한 사람은 말하노니 반드시 이 문장의 가치는 천둥소리가 요란해서 신명나게 만들 터이니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의 문장을 계승하고 필사(筆師) 왕희지(王羲之)와 조맹부(趙孟頫)의 뒤를 이어 언하(言下)에 뛰어난 채색으로 드러나서 붓끝이 아름다운 풍경을 도출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기쁘게 하고 기분을 시원하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기(記)를 썼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말하기를 무릇 인간사에 있어서 명칭과 실재가 서로 부합됨을 귀하게 여기고 문채와 본바탕이 마땅함을 얻으면 좋게 여기니 기(記)라는 것은 그 사적(事蹟)을 기록할 뿐이다.
하필 거침없이 붓을 들면 귀신을 울린다는 문장으로 그 사이에서 헛된 명예를 얻어야만 되겠는가.
이 때문에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침내 말하기를, 큰 땅덩어리에 무성한 풀이 우거지자 인물들은 나란히 모여들었다.
이루어지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이루어져 이루어짐은 무너짐의 징조고 무너지면 바로 싹이 성장하니 그렇다면 이루어짐도 하나의 무궁한 것이요 무너짐도 하나의 무궁한 것이니 성패는 진실로 얻기가 어렵고 형용하기도 어려운 이유이다.
다만 금화산(金華山) 상암(上庵)에 편액을 내거는 자는 본래 금(金)을 귀하게 여기고 꽃(華)을 더했으니 이 산의 밝고 빼어남을 취했다.
암(庵)에는 아래(下)가 아니고 위(上)를 더했으니 이 암자를 최고로 여긴 탓이다.
문을 마주한 푸른 강에 아침저녁으로 작은 배는 오가고 마루는 흰 구름을 굽어보고 한밤중이면 원숭이와 학이 다투어 울어대니 산간의 사계절 바뀌는 모습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빼어난 경치와 방불하다.
하늘 밖 높고 험준한 봉우리는 남산의 모든 지역과 짝할 만하니 구름은 많아도 대지는 고요하고 산골짜기 물가에 인적은 드물고 한가한 가운데 해와 달은 세상 밖의 천지로구나.
나의 낙을 즐기며 소요하니 내 생이 다하도록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되지 여길 버리고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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