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伽倻次石川韻(재가야차석천운)/망우당 곽재우
긴 밤을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으니
누가 해 저물지 않게 할 수 있으리오
천지를 보려고 하면 속세 먼지 끊어야.
莫不苦長夜    誰令日未曛
막불고장야    수령일미훈
欲看天地鏡    須自絶塵紛
욕간천지경    수자절진분

시제는 석천 임억령의 운을 빌린다지만, 내용은 고고한 인격으로 천지를 바르게 바라보는 기질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는 작품의 면면들이 보인다. 하늘과 땅의 이치는 속세에 살면서 속세를 떠나지 않고는 바르게 볼 수 없단다. 하늘의 오묘한 이치, 땅의 거짓말하지 않는 이치를 알기 위한 한 몸부림이리라. 기나긴 밤을 괴로워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누가 뉘엿뉘엿 해를 저물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반드시 스스로 속세의 먼지를 끊어야 하네(在伽倻次石川韻)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로 조선 중기의 의병장이다. 1565년 13세부터 숙부 곽규에게서 춘추를 배우면서 학문을 닦기 시작했고, 이듬해부터는 성여신 등과 함께 제자백가서를 널리 읽었다. 1570년(선조 3) 18세 때부터 활쏘기, 말타기, 글쓰기 등을 고루 익혔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기나긴 밤을 괴로워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 누가 뉘엿뉘엿 해를 저물지 않게 할 수 있으리 // 천지의 맑은 거울을 보려고 한다면 / 반드시 스스로 속세의 먼지를 끊어야 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가야산에 있을 때 석천의 운을 빌려 시를 짓다]로 번역된다. 석천은 임억령으로 당대의 큰 문호였다. 석천집石川集에 전하는 시문의 운자인 [?(석양빛 훈)과 紛(어지러울 분)]을 빌려 시상을 일으켰다. 속세의 먼지를 끊지 않고는 천지의 맑은 거울을 바르게 볼 수 없다는 깊은 뜻을 담아낸 시문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시인은 천지의 맑은 거울 속에서 진정한 자리를 발견하려는 의지를 만나는 시상을 만져보게 된다. 긴 밤을 어찌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를 묻는 다음, 누가 해가 저물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란 재차의 질문을 던진다. 자연의 순수한 이치를 자연인이 거역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제를 먼저 일으킨 다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몸부림을 본다.
화자는 진정으로 천지조화의 원리에 의해 맑은 거울 위에 자기를 비춰보려고 한다는 가정 위에 자기를 돌아보려고 했다. 천지의 맑은 거울을 보려고 한다면, 반드시 스스로 속세의 먼지를 끊어야 하겠다는 철학적인 명제 앞에 그저 멍하니 자기를 냉정하게 내려다본다. 순수한 자기를 발견하려는 겸허함을 만나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긴 밤을 괴로워하니 저물게 할 수는 없고, 천지의 맑은 거울 보려하니 속세 먼지 끊으면서’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莫不: ~하지 아니할 수 없다. 苦: 고통스럽다. 長夜: 긴 밤. 誰: 누가. 令日: 해로 하여금. 사역의 의미가 들어있음. 未曛 : 저물게 하지 아니 하다. // 欲看: 보고자 하다. 天地: 하늘과 땅. 鏡: 거울. 須: 모름지기. 自絶: 스스로 끊어지다. 塵紛: 속세의 먼지. [粉]은 ‘가루’이지만 여기에선 ‘먼지’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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